주간동아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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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통 세운상가 ‘철거 별곡’

서울시, 녹지축 조성 위해 철거 추진 … 대부분 상인 반발하며 리모델링 주장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7-04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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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전통 세운상가 ‘철거 별곡’
    “세운상가 한 바퀴만 돌면 미사일은 물론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이 말은 서울 종로 세운상가의 ‘폭’과 ‘깊이’를 상징한다. 세운상가는 전자상가가 중심이긴 하지만 공구·기계·인쇄·스포츠용품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팔았다. 신제품을 싼값에 살 수 있고, 신상품 같은 ‘후끼’한 중고제품도 많이 갖추고 있어 늘 사람이 들끓었다.

    ‘없는 게 없던’ 만물상 역사 속으로?

    그 와중에 3층 보도 데크에는 불법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가게들이 생겨나 성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인 유하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세운상가 키드’라고 불렀다.

    ‘네가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줄 거야/ 환한 불빛으로 세운상가는 서 있고/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다가간다 잡힐 듯 달아나는/ 마음 사막 저편의 신기루를 향하여/ 내 몸의 내부, 어두운 욕망의 벌집이 웅웅댄다.’ -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2’ 일부



    이런 세운상가가 용산 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청계천 복원공사 등으로 상권이 축소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5월28일 서울시가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도심의 남북 녹지축을 조성하기 위해 세운상가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 서울시는 종로4가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종로 세운상가, 청계대림, 풍전상가 등 일대 43만8560㎡(13만2664평) 규모의 노후 건축물을 없애고 2015년까지 폭 90m, 길이 1km의 대규모 녹지대를 만들 계획이다. 1단계 사업으로 종로4가 도로에 접해 있는 현대상가(1149평)를 철거해 2008년 12월 말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사업 추진과 관련해 서울시 균형발전추진본부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사업으로, 노후 건축물을 철거하고 도심에 녹지대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에 비견될 정도로 어렵다. 규모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큰 사업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먼저 1000억원을 투입해 1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이후 건축물 철거와 녹지축 조성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운상가에 인접한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자에게 부담시킬 계획이다. 재개발 차익을 공공시설 부담금으로 내놓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3단계까지 보상과 사업비를 포함해 총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상가 철거가 발표된 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은 이곳 3000여 상인들. 현대상가 상인들의 모임인 종로세운상가협의회(회장 신정성) 204개 점포 상인들은 “40년 전통의 세운상가를 보상 이전 대책 없이 철거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버티고 있다. 서울시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 취득·보상법 시행규칙’에 따라 임차 상인에게 최고 3개월 영업이익과 이사비 정도를 보상비로 책정하고 있다.

    보상금 제시안도 상인들과 큰 차이

    그러나 상인들이 주장하는 보상금은 4억6000만원. 산출 근거는 이렇다. 권리손실금 1억5000만원,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영업손실분(월 500만원) 2억1000만원, 세운상가 브랜드 가치 1억원 등이다.

    40년 전통 세운상가 ‘철거 별곡’

    건물 철거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세운상가 외벽.<br>철거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인들.<br>상가 1층 내부(사진 위부터).

    종로 세운상가 나머지 2분의 1과 청계천~을지로 구간 폭 90m, 길이 290m 구간에 대한 녹지화는 2012년까지로 계획돼 있다. 이 구간 상인들 모임인 세운상가시장협의회 정광길 회장은 “오세훈 시장은 2006년 5월 선거기간에 곽영훈 정책본부장을 보내 자신의 세운상가 녹지화 공약에 대해 상가 소유주, 세입자 등 권리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며 일방적인 사업시행은 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속했다”면서 일방적인 정책 발표를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균형발전추진본부 관계자는 “후보 시절 문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상인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서울 시민이 이 사업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5월29일 언론보도 이후 상인들이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시민들의 뜻을 알기 때문 아닌가”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의 상권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본다. 더욱이 청계천 주변 상인들이 장지동 단지로 입주하면 더 슬럼화될 가능성이 높아, 도심의 피폐화된 상권을 되살리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이미 1995년 2월 세운상가 용지 공원화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만 해도 상권이 살아 있어 이 계획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세운상가 건물주와 상인들은 대부분 리모델링을 선호한다. 이들은 60년 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는 일본 전자시장의 메카 아키하바라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번 개발지구 중간쯤 있는 풍전상가는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여서 상인들이 철거에 반발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전공)도 리모델링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원칙적으로 녹지화에는 찬성하지만 현재는 개발 논리가 지나치게 개입돼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개발을 위해 무늬만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꼴이라는 것이다.

    “김수근 씨가 세운상가를 설계할 때 주상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습니다. 즉 도시를 규격화된 기계처럼 설계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적응해 합리적으로 사는 것을 꿈꿨던 거죠. 다만 설계자의 생각이 다 반영되지 못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지금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도심의 새 랜드마크로 쓰고, 서울 도심의 개발 압력이 줄어들 때쯤 뜯어내 녹지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정창무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세운상가가 김수근 씨의 걸작품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걸작품이라 해도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상인과 건물 소유주들에게 합리적으로 보상하고 대책을 수립한 뒤, 서울 도심에 꼭 필요한 녹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바람대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큰 공사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을까, 아니면 상인들의 요구처럼 리모델링을 통해 세운상가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까. 결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시가 8월 중에 보상계획을 공고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세운상가 탄생에서 몰락까지

    건축가 김수근 작품으로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 부부도 참석


    40년 전통 세운상가 ‘철거 별곡’
    세운상가의 역사는 한국 근대화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후 서민의 복잡한 삶의 자리를 근대화라는 ‘불도저’로 밀어붙인 현장이었으며, 지금은 그런 근대화의 모습만큼이나 외관도 낡은 모습이다.

    6·25전쟁 이후 1968년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 일대는 판잣집으로 가득했고, ‘종삼’ 또는 ‘서종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한 사창가도 자리잡고 있었다. 66년 서울시장에 갓 부임한 김현옥은 종로~필동 사이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민간자본을 들여 건물을 짓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이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전 시장은 당시 국영기업이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부사장인 건축가 김수근을 찾아가 설계를 부탁했으며, 김수근은 초현대식 건축기법을 동원해 설계를 완성했다. 사업 시공권은 현대 대림 삼풍 풍전 등 6개 업체와 토지소유자 모임 등 8개 업자에게 돌아갔다.

    김수근은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필로티 양식을 도입했다. 이는 건물 1층에 통행로를 설치해 사람과 자동차가 오갈 수 있게 하고, 거주자와 상가는 그 위를 사용토록 하는 방식으로 요즘엔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거창한 계획은 당시 시공능력과 맞지 않아 실제 시공단계에서 많이 축소됐다. 종로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인공 데크는 건물마다 형태가 다르게 갖춰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었고, 인공대지 개념도 실현되지 못했다. 일제식 건물, 전통 가옥, 서구식 건물이 혼란스럽게 엉켜 있던 서울에 또 하나의 조화롭지 못한 건물이 들어섰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총공사비 44억원이 투입된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당시로선 드물게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장안의 명물이었다.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석해 테이프까지 끊을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

    초기 다수의 상류층 인사가 이곳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고, 세운상가 가운데 진양상가 쪽 5개 층엔 국회의원회관도 들어섰다. 상인들은 80년대까지 국내 최대 전자상가였던 이곳에서 좋은 시절을 보냈다. 세운상가에서 40년 가까이 전자제품 가게를 해온 터줏대감 김운민(72) 씨는 “술집에서 맥주 한 병에 70원 할 때 하루 7만원도 벌었다. 지금은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세운상가는 반평생을 함께한 곳이기도 하지만, 정말 제대로 지은 건물이다. 살려 쓰는 것이 좋다”면서 최근의 철거 논란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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