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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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휴가 주는 게 아깝다고? 당신은 구시대 경영자!

창의성 키우기 낯선 시간 만나야 가능 … 이젠 기업도 직원들 일과 삶 조화 배려할 때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입력2007-06-13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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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휴가 주는 게 아깝다고? 당신은 구시대 경영자!
    가을에 농부 두 사람이 벼를 벤다. 한 명은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반면 다른 한 명은 틈틈이 논두렁에 앉아 쉰다. 저녁이 되었다. 서로 쌓아놓은 볏단을 비교해보니 이상하게도 틈틈이 쉰 농부의 볏단이 훨씬 많았다. 쉬지 않고 일한 농부가 화가 나 물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나보다 어째서 자네가 더 많이 수확했는가?” 틈틈이 쉰 농부는 말했다. “난 쉬면서 낫을 갈았거든.”

    한국인은 무딘 낫을 휘두르고 있다.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낫이 무뎌지고 녹슬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밀어붙이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시대가 바뀌면 노동의 패러다임도 바뀌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다. 과거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방식으로 미래에도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의 사회적 맥락이 바뀌었다. 노동자도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 세상이다. 21세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무딘 낫을 휘둘렀던 농부처럼.

    50년 동안 휘두른 한국인의 낫 무뎌질 대로 무뎌져

    20세기 후반, 전 세계에서 한국처럼 성공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서양인이 300여 년에 걸쳐 이룬 근대화 과정을 불과 50년 만에 해치웠다. 독일의 라인강 기적이나 일본의 경제성장에 빗대 우리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들과 비교하는 것은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다. 비행기, 잠수함, 탱크를 만들던 기술력이 있는 나라다. 반면 우리는 보릿고개를 겨우 넘던 나라다. 한국은 아무것도 없는 제로상태에서 오늘날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제는 낫이 무뎌졌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올라서기가 힘든 까닭도 낫이 무뎌진 까닭이다.

    21세기 경쟁력은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창조경영, 창의적 사고 등을 강조한다. 옳다. 문제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창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경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전 경영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여전히 근면 성실이 우선적 가치다. 틀렸다. 창의성과 근면 성실은 정반대 과정이다. 사람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하는 것이 가능할 때만 근면 성실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면서 근면 성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녀가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쥐어박는 부모처럼 한심한 경우는 없다. 열심히 한다고 창의적이 되는 경우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남의 돈 먹기 힘들다”는 회사 잘될 턱이 있나

    미국의 논리철학자 퍼스는 ‘아마도’와 ‘혹시’라는 질문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늘 성실하게, 사례에서 법칙으로 또는 법칙에서 사례로의 동일한 사고과정을 반복할 뿐인 연역적 사고, 귀납적 사고와 구별해 이 창의적 사고과정을 그는 유추법(abduction)이라고 정의한다. 유추법이 가능해지려면 절대로 성실해서는 안 된다. 논두렁에 앉아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아마도’와 ‘혹시’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가능해진다. 내면의 낫을 갈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이 있을 때 창의적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여유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즉 삶의 근원적 재미의 발견이 창의적 사고의 필수조건이다.

    서구 선진기업들이 최근 채택하고 있는 트렌드에 인적자원관리(Human Resources Management) 제도가 있다. ‘일과 삶의 조화(Work-Life Balance)’ 정책이다. 직원들의 일과 각 개인의 삶에 대한 배려 없이는 탁월한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인 삶에 대한 배려의 구체적인 제도는 휴가, 여가, 경력관리, 가족에 대한 배려 등이다. 이런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룰 때만 일에 몰입하는 내적 동기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 달 휴가 주는 게 아깝다고? 당신은 구시대 경영자!
    2006년 필자는 동료 연구원들과 문화관광부의 의뢰를 받아 일과 삶의 조화와 생산성의 관계를 전국의 직장인 99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일과 삶의 조화’ 변인을 ‘일과 가족의 균형’ ‘일과 여가의 균형’ ‘일과 성장의 균형’ 등 세 가지로 나누고 생산성 변인을 회사만족도, 이직 의도, 소속감, 직무 몰입, 스트레스, 삶의 만족도의 다섯 가지 요인으로 나눠 두 변인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결과는 예상대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일과 삶의 조화 수준이 높은 집단일수록 회사만족도, 소속감, 직무 몰입,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일과 삶의 조화 수준이 낮은 집단일수록 반대 경향이 나타났다(표와 그래프 참조). 직원들의 삶의 만족과 재미, 즉 일과 삶의 조화와 노동생산성은 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직원들의 삶의 만족과 재미를 배려하지 않는 회사는 망하게 돼 있다. 직원들이 매일 아침 “남의 돈 먹기 정말 힘들다”며 출근하는 회사가 어찌 잘될 수 있을까. 회사에서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창의적 노동이 확보되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한심한 경우는 없다. 노동의 맥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보장받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맨땅에 헤딩’은 이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훨씬 잘한다. 사람도 바뀌었다. 회사일을 집에 가서까지 마무리해주기를 원하는 경영자에게 직원들은 속으로 그런다. “좋습니다. 집에 가서도 회사일 하겠습니다. 그럼 회사에서도 집안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직원들에게 불굴의 투지로 버틴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동시키려는 경영자의 뒷모습은 참 슬프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은 이미 다 있는 것, 다 아는 것을 새로운 맥락에 가져다놓는 능력이다. 너무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를 ‘낯설게 하기(Verfremdung)’라고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노동환경이 어떻게 바뀌는 줄도 모르는 이들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삶을 낯설게 만드는 일이다. 아주 낯선 상황, 낯선 시간에서 삶과 일의 의미를 반추할 기회를 주는 것이 21세기 휴식의 진정한 의미다.

    ‘낯설게 하기’가 가능한 최소한의 기간이 한 달이다. 노동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며칠간의 한풀이식 휴가 방식으로는 내적 동기화에 근거한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동해와 서해를 오가는 단 며칠간의 휴가로는 내 삶의 반추가 불가능하다. 적어도 삶의 쳇바퀴에서 한 달은 벗어나봐야 알 수 있다. 내 노동과 직장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나를 둘러싼 모든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최소한 한 달은 벗어나봐야 안다. 내 삶의 진정한 기쁨을. 그저 멍하니 논두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노동의 의미는 새로워지고, 내 삶은 기쁜 일이 된다. 창의적 인재에 목마른가? 먼저 경영자 스스로 한 달간의 휴식을 가져보라. 그럼 알 것이다. 휴식의 의미를.

    ▼ 일과 삶의 조화 수준 고/중/저 집단에 따른 생산성 관련 변수간 차이 (100점 만점)
      회사만족도 이직 의도 소속감 직무 몰입 스트레스 삶의 만족도
    저 집단 48.8 58.2 51.1 64.6 65.2 48.8
    중 집단 55.0 47.4 54.6 65.5 49.9 55.7
    고 집단 61.2 39.1 59.2 68.9 40.8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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