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2007.02.13

한 컬렉터의 눈으로 본 민중미술

  • 김준기 미술비평가 www.gimjungi.net

    입력2007-02-07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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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컬렉터의 눈으로 본 민중미술

    신학철, ‘대지’, 1984

    민주화 20년을 기념해 청관재 조재진의 컬렉션 15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민중미술의 대표작을 분별하여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한 컬렉터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인 조재진 씨는 오랫동안 민중미술 작품을 수집해온 독보적인 컬렉터다.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현실주의적 표현기법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불기둥 같은 형상 속에 담아낸 거장 신학철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굵은 줄기를 이룬다.

    이어서 강요배, 김정헌, 민정기, 이명복, 이종구, 황재형 등 ‘현실과 발언’ ‘임술년’ 등에서 그룹 활동을 했던 주요 작가들의 밀도 있는 작품들이 민중미술의 전개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부미 포대에 농부의 얼굴을 그린 이종구와 태백 탄광촌으로 들어간 황재형은 작품 속에 진한 삶의 리얼리티를 담는다. 특히 도시락을 먹는 광부의 모습을 월급봉투에 찍은 황재형의 판화 ‘월급봉투’는 삶의 현장과 결합하는 예술가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게 한다.

    ‘광자협’에서 출발해 ‘민미련’이라는 전국 단위의 미술운동 조직을 꾸렸던 홍성담의 저 카랑카랑한 오월 판화 7점도 컬렉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박불똥의 콜라주, 이철수의 초기 목판화 작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중진 작가들의 초기작들이 민중미술의 살아 있는 역사를 증언한다. 70년대부터 80년대 민중미술이 태동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 선구자 역할을 했던 오윤도 있다. 임옥상의 작품들 가운데 1997년 그린 ‘불’을 비롯해 잘 알려진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직접 쓴 도록 서문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조재진 컬렉터가 민중미술을 아끼고 후원하면서 인연 맺어온 사연을 소개하고, 민중미술 운동의 최전선에 있어온 미술평론가 최열은 긴 호흡으로 민중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되짚고 있다. 출품작들 자체의 매력이야 두말할 필요 없을 테고, 이 전시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술 권력과 시장에서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민중미술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한 컬렉터의 작품들을 통해 일별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20여 년 전 자생적인 미술운동을 통해 이룩한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성과를 재평가해보는 일. 늦었지만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일이다. 민중미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중국 현대미술 작품이 저토록 강세를 보이지 않는가. 2월19일까지, 가나아트센터,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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