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1

2007.01.30

웃음보 터진 리모델링

아파트 단지 전면 개조 고급 주거지로 변신 … 재건축 뛰어넘는 환경 인기 예감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1-2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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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보 터진 리모델링

    리모델링 예정 아파트 단지의 현재 모습(작은 사진)과 조감도. 도곡동 동신아파트(왼쪽), 잠원동 신반포13차아파트.

    주차난에 허덕이던 낡은 아파트 단지가 널찍한 지하주차장을 갖춘 고급 주거지로 변신.’

    ‘쌍용 예가클래식’(이하 방배 예가)으로 개명한 옛 방배 궁전아파트가 화제다. 1월9일 준공식을 치른 방배 예가는 국내에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리모델링한 첫 번째 사례. 낡은 배관과 난방시설 등을 뜯어고치는 수준을 넘어, 세대별 증축뿐 아니라 지하주차장과 각종 편의시설 신설, 녹지공간 확충 등 단지 전체가 전면 개조에 가까운 변신을 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방배 예가를 시공한 쌍용건설을 포함해 리모델링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설업체들은 “방배 예가는 신호탄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리모델링 역사는 매우 짧다. 방배 예가 이전에 단 4건이 있었을 뿐이다. 대림산업이 시공한 마포 용강아파트(2003년), 압구정 대림아크로빌(2004년), 용산 로얄맨션(2005년), 삼성건설이 맡은 방배 삼호가든아파트(2005년) 등이 그것. 이들 ‘제1기’ 리모델링 아파트는 단지 전체가 아닌 1개 동만 고쳤으며 세대별 증축 또한 제한적이었다.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숙원’인 지하주차장 신설도 없었다.

    그러나 방배 예가를 시발점으로 앞으로 등장할 ‘제2기’ 리모델링 아파트들은 1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리모델링을 보여줄 전망이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지하주차장 신축은 기본에 속한다”면서 “재건축 아파트를 뛰어넘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속속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하주차장·녹지공간 확충



    현재 서울 지역에만 40여 개 아파트가 단지 전체의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확정된 5곳을 중심으로 고급 주거지를 지향하는 제2기 리모델링 아파트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잠원동 신반포13차아파트(180세대·행위허가 취득) △당산동 평화아파트(284세대·행위허가 취득) △도곡동 동신아파트(384세대·건축심의 완료) △응봉동 대림아파트(855세대·조합설립인가 신청 완료) △옥수동 극동아파트(900세대·내달 조합설립 예정) 등은 모두 시공사 선정을 끝냈고 구체적인 청사진도 나온 상태.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에 신반포13차, 평화, 동신 아파트 등이 착공에 들어가며 2009~2010년 본격 입주할 예정이다.

    웃음보 터진 리모델링

    2기 리모델링 아파트는 고급 주거단지를 지향한다. 삼성건설이 옥수동 극동아파트 리모델링에 도입하는 필로티.

    이들 리모델링 예정 아파트는 우선 각 세대별 면적을 30%까지 늘렸다. 2005년 개정된 주택법시행령이 허용하는 증축 가능 범위의 최대치인 30%(전용면적 기준)를 모두 적용한 것. 이에 따라 24평형은 32평형, 31평형은 43평형, 41평형은 57평형, 50평형은 70평형으로 늘어난다. 이는 방배 예가의 평균 증축률 25%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하주차장 신설로 가구당 주차대수도 크게 늘릴 예정이다. 방배 예가는 지하1층 주차장을 신설해 가구당 주차대수를 0.96대로 늘렸다. 리모델링 예정 단지들은 한 술 더 떠 지하2층까지 주차장을 만들 예정. 그럼 가구당 주차대수는 1.5~2대 수준이 된다. 신반포13차 시공사인 동부건설의 리모델링팀 김문기 팀장은 “지하주차장 신설로 주차 가능 대수가 172대에서 361대로 늘어 가구당 주차대수가 2대가 된다”면서 “1.5~2대인 재건축 아파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하2층까지 주차장을 늘리는 이유는 아예 지상 주차공간을 없애기 위해서다. 지상 공간은 전부 쾌적한 녹지공간으로 꾸며진다.

    필로티(건축물의 1층을 기둥만 서는 공간으로 하고 2층 이상에 방을 짓는 방식)는 더 이상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리모델링 예정 단지들은 모두 필로티를 도입한다. 2005년 주택법시행령 개정으로 리모델링 아파트 또한 필로티를 도입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1층을 필로티로 만드는 대신 최상층 1층을 더 신축한다.

    이 밖에도 리모델링 아파트들은 지상 녹지공원화, 야간 경관조명 설치, 피트니스센터·골프연습장·유아놀이방·세대별 로커 등 편의시설 확충도 도입된다. 2002년 가락동 동부센트레빌에 처음 선보여 좋은 반향을 얻었던 야간 경관조명과 옥상 정원이 신반포13차아파트에서도 선보일 예정. 응봉동 대림아파트 시공사인 대림산업은 부엌이 남향으로 설치된 62평형 150세대에 LDK 확장평면을 적용, 온 가족이 식탁에 마주 앉아 한강과 서울숲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LDK 확장평면이란 리빙(Living), 다이닝(Dining), 키친(Kitchen) 공간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 옥수동 극동아파트 시공사인 삼성건설은 옥외 공간에서 무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감성 정원’ ‘꽃의 정원’ 등 테마별 녹지공간과 지압보도 등을 설치한다. 삼성건설 박정일 리모델링팀장은 “리모델링 아파트에도 재건축 아파트에 도입되는 모든 요소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이 앞으로 등장할 리모델링 아파트의 트렌드”라고 강조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수명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50년이다. 따라서 20~30년 된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재건축은 자원낭비이자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각종 규제로 재건축 시행이 어려운 것 또한 현실적 장벽. 따라서 리모델링은 노후 아파트의 ‘슬림화’를 막는 재건축의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에 정부는 준공 후 20년에서 15년으로 리모델링 가능 연한을 낮추는 등(올해 1월1일부터) 제도 완화를 통해 리모델링을 권장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 슬림화 막는 대안

    물론 리모델링의 단점도 있다. 아파트 앞면과 뒷면에 증축건물을 붙이는 방법으로 평형이 늘어나기 때문에 집이 길어진다. 이 때문에 20평형대 중 일부는 ‘8’자형으로 설계안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재건축 아파트에 비해 좋은 점도 많다. 우선 리모델링은 사업 추진이 수월하다. 재건축에 비해 절차가 간소하고 소형평형 및 임대아파트 의무 건설, 개발이익 환수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공사기간 또한 재건축보다 6개월가량 짧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재건축에서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전환한 첫 사례가 도곡동 동신아파트. 동신아파트는 2003년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이후 각종 재건축 규제안이 발표되자 2004년 8월 재건축조합을 해산하고 리모델링조합을 창립했다.

    쌍용건설 리모델링사업부 양영규 차장은 “개인적 선호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층화를 피하고 현재 층수를 유지한다는 점도 리모델링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건물 높이에 비례해 동간 거리가 결정되지만 사람들은 고층 단지가 저층 단지보다 더 빽빽하다는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아파트 층수가 낮을수록 거주환경이 자연친화적인 것은 물론이다. 12층 규모인 동신아파트 정용기 조합장은 “재건축을 하면 20층 이상의 타워형 건물로 건축돼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남향에서 동향으로 바뀐다”면서 “리모델링을 하면 현재의 남향을 100% 유지할 수 있는 데다 고층 아파트가 되지 않아 좋아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재건축보다 공사비가 저렴한 것도 리모델링의 장점. 그러나 고급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을 꾀하다 보니 현재 추진 중인 제2기 리모델링 아파트의 공사비는 재건축 못지않은 수준이 됐다. 재건축 비용이 평당 350만~370만원이라면 리모델링은 평당 300만~340만원 수준. 특히 지하주차장 신설이 리모델링 비용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건설 박정일 팀장은 “공사 시작 전까지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리모델링 내용과 비용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1260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인 반포동 미도1차아파트를 비롯해 1970~80년대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들이 속속 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선임연구위원은 이러한 증축 중심의 리모델링이 2015년까지 대세를 이루다가 이후에는 ‘대보수’ 리모델링이 주요 흐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10년 후 신도시를 중심으로 지하주차장이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리모델링에 나설 시점이 되는데, 이 아파트들의 용적률은 이미 높을 대로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증축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윤영선 위원은 “아파트 리모델링이 고소득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재건축의 대안이자 노후 아파트의 슬림화를 막는 주거 관리 수단으로 리모델링이 확산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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