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2006.12.05

두드리면 열리는 불안 극복의 길

불안장애 자가진단 & 극복 가이드|내 안의 괴물 ‘불안’을 날려라!

  • 박용천 한양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입력2006-12-04 14: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두드리면 열리는 불안 극복의 길

    공황장애 환자들에겐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기억이 특별히 많다. 사진은 중국의 ‘미아찾기 카드’.

    불안 극복의 첫 번째 과제는 불안의 정체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자신만 불안하다고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동물도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위험한 곳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생명을 유지한다. 불안을 느끼지 않고 용감하게 고양이에게 대적한 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인의 경우 신호위반, 음주운전, 과속 등의 단속에 불안을 느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불안을 느끼지 않아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단명하여 일찍 도태됐을 것이고, 불안을 쉽게 느껴 위험으로부터 보호한 사람은 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자손 번식을 잘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논리가 비약됐을지는 몰라도, 불안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본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불안으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한 경우다. 생명을 유지하여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안인데, 이것이 지나쳐 고통을 준다면 불안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상태가 오래되어 나타나는 증상이 불안증 또는 불안장애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병적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불안 극복의 최종 단계인 죽음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불안의 목표가 생명 보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즉, 불안의 궁극적인 모습은 죽을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문제는 겁이 적당히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많아 고통스럽고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려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했다. 그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죽는 시기가 다를 뿐 대부분 100세 이전에 다 죽는다. 이것은 진리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불안을 덜 수 있다.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말도 있다. 또한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더 내디뎌라’는 지혜도 있다. 이것은 서양의 행동치료 중 ‘홍수법’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환자를 63빌딩 꼭대기로 데려 20~30분간 머물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맥박이 뛰고 숨이 차고 곧 쓰러질 것 같던 환자는 20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즉, 극심한 공포를 겪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을 경우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극단적인 사람은 이렇게 불안하고 괴로울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차피 죽을 텐데 그렇다면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식의 생각은 자연의 섭리를 모르는 소치다. 동양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완전연소에 비유한다. 초가 마지막까지 다 타서 완전히 연소하듯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실 불완전 연소하면 공해도 생기고 보기에도 흉하다.

    두드리면 열리는 불안 극복의 길
    세 번째 과제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사실 어렵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생사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관습이나 문화라는 환경의 무의식적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문화와 지역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살면서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차원의 영향, 서울·경기 등 활동 지역의 영향, 조상들의 관습 등에 의해 가치관이 정해진다. 따라서 그런 지역 및 문화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불안을 느낀다.

    예를 들어 2002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뻐했을 것이고, 16강에서 탈락했다면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 사람이라면 그런 사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지역이라는 테두리에서 애국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교야구가 유행하던 시절, 자신의 출신 고등학교가 경기를 하면 그 결과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에서 보면 어떤 학교가 우승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본다면 지역 연고팀의 성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편 노부모를 모시지 않아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보편적으로 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은 부모를 의당 양로원에 모시고도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며 행복하게 산다.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아 불안해하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들뿐이고, 외국에선 오히려 노인이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즐거워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관습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불안은 그 사회와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고신호로, 그 집단에서 요구하는 규칙을 잘 지키도록 도와준다. 불안이 적당히 있을 때는 사회적으로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불안이 지나쳐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생각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쩌다 고기반찬을 먹고 있을 때 손님이 오면 얼른 감췄는데 이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고기반찬을 먹을 때면, 손님이 와서 못 먹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갖게 된다.

    이렇게 문화라는 틀 때문에 갖게 되는 불안은 외국인이나 타 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때로는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동물들의 습성을 보면서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을 때도 있다. 먹이사슬에 의한 약육강식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보편적인데, 우리는 가끔 강대국이 약소국을 도와줄 것이라는 착각을 갖고 있으며 강자나 강대국의 횡포에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런 자비심을 기대할 수 없다. 스스로 힘을 키우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는 또한 인류의 역사적 사실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이다.

    네 번째 과제는 이러한 시간과 지역을 관통하는 시각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차차선책으로 고려해볼 방법이다. 즉, 자기 자신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이는 서양에서 노이로제 환자 치료에 쓰는 가장 수준 높은 방법이다. 정신분석에서는 현재의 불안이 현재의 위협에 대한 것이 아니고, 과거의 경험에서 느꼈던 불안이 현재도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을 노이로제라고 한다. 근본 뿌리인 불안이 형태를 달리하여 나타날 때마다 증상에 따라 병명이 다양하게 붙는다.

    급성적으로 불안이 와서 신체적으로 죽을 것 같은 상태에 이르면 공황장애라고 하고, 전반적으로 늘 불안하며 지금은 왜 불안해지지 않나 걱정되면 범불안장애라고 한다. 또 불안한 것을 없애려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강박장애라고 한다. 불안증이나 불안장애의 근본 뿌리는 불안이다.

    두드리면 열리는 불안 극복의 길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불안을 느끼는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을 역동적으로 설명하는 말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불안은 어머니와의 분리다.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것부터가 어머니와의 이별이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머니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을 때가 어머니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보통 기억에 남는 것은 본의 아니게 어머니와 헤어질 때의 고통이다. 시장에서 어머니를 잃고 새파랗게 질려 울부짖는 아이들을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황상태이며, 어른에게 공황발작이 일어났을 때의 신체상태가 이때와 동일하다. 공황장애 환자들에겐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기억이 특별히 많다. 공황발작을 일으킨 환자의 자유연상을 추적해보면 대부분 어머니와 이별하게 됐을 때 고통스러워하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의 느낌은 뇌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특히 변연계에 기억되기 때문에 의식에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 느낌이 남아 있다. 변연계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없어서 어린 시절의 느낌을 마치 현재 겪은 일처럼 그대로 떠올린다. 어렸을 때는 혼자 남겨지면 당장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혼자서도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어린 시절의 느낌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즉, ‘시대착오적’인 느낌인 것이다. 이를 깨닫는 길은 불필요하고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불안을 벗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불안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무의식에서 오는 불안을 막을 수 없다. 무의식에 있는 불안의 정체를 깨닫고 그것이 현재는 필요 없는 과거의 느낌이라는 것을 의식에서 판단해야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이상의 대책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안을 피하지 말고 인정하자. 불안에도 장점이 있다. 둘째, 불안의 궁극적 관심은 죽음이다. 죽음에 연연하지 말되 완전연소하는 죽음을 추구한다. 셋째, 윤리·도덕·관습을 떠난 제3의 시각으로 새롭게 불안을 보자. 넷째,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인식해 시대착오적인 불안을 파악하자.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이해가 된다면 불안 극복의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