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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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겉과 속

  • 박진열 도서출판 늘품미디어 상임연구원

    입력2006-12-04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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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세계화, 지구화라는 말은 대체로 세계시장의 거대한 힘이 범지구적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각 민족국가들이 자국의 주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물결은 이제 거의 모든 나라를 뒤덮고 있어 어떤 국가도 이 물결에서 빠져나가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은 미국의 입장에서 그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범지구적으로 확대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세계화 시대에 그 나라 고유의 주권을 장애물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경제, 무역, 사회정책, 통화정책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와 관련된 규칙이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미국 워싱턴의 정치가와 그들의 자문가들뿐이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그런 줄 모른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식민지 종주국의 막강한 힘도 군사력의 우위도 아닌, 단지 미국 경제의 막강한 규모 자체가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화 시대에 유일한 세계질서의 유지자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다) 이런 까닭에 마지막 순간에 가서 미국이, 그리고 미국 정부가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최초의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식 모델, 즉 모든 것을 시장의 힘 아래로 종속시키는 것이 다른 어디보다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나 유럽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대한 국가의 후퇴 내지 무기력함이 결국 자기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내일 당장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해둘 것은, 오늘날 세계경제화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압살되고 있는 복지국가도 맨 처음 미국에서 정착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1930년대에, 다시 말해 당시 가속화되던 세계경제의 범지구화가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막을 내리게 됐을 때,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는 뉴딜정책을 통해 현대적인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이미 격언같이 돼버린 미국식의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장만능주의가 다시 그만큼 갑작스럽게 도그마처럼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라) 바로 이 때문에 유럽 정치가들이나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메리카여, 너는 과연 전진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 대부분의 유럽은, 미국식 모델이야말로 무한 시장경쟁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도저히 해소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역대 미국 정권은 경제의 세계화 속도를 늦추자거나 아니면 경제의 흐름을 다시금 국가적 통제 아래로 잡아두자는 어떠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거의 유일한 범지구적 정부 간 협력기구인 선진 7개국 정상회담조차도 매번 아무런 결실이 없는 탁상공론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예컨대 1996년 6월 말에 선진 7개국 정상들이 프랑스 리옹에서 만났을 때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통제된 세계화’ 개념을 제시하여, 제 살 깎아먹기 식의 맹목적인 조세경쟁을 종식하고 세계 금융시장을 좀더 강력하게 통제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과 영국은 이러한 제안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단지 이듬해에 새로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OECD 산하에 위원회 하나를 설치하는 정도로 이 문제를 마무리짓고 말았다.

    (마) 지금도 미국 의회나 클린턴 행정부는, 유엔 기구들을 적극 활용하여 시장과 민족국가들을 다시 제대로 통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는 모든 제안에 대해 고개를 흔들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정치가들은 유엔을 쓸모없는 무능한 관료주의의 화신이라고 비난하고 있을 정도다. 연간 24억 달러 정도의 빠듯한 예산 중에서도 70% 이상을 인도주의적 목적이나 평화유지군을 위해 쓰고 있는 약 9000명의 유엔 사람들을 미국은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의 이러한 비난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대표들은 언제나 평화유지군의 파견이나 난민구제 활동 등에 대한 제안은 잘하지만, 막상 미국 정부는 일종의 시민권적 의무마저도 저버리면서 유엔 회비 납부를 하지 않는다.

    이미 그 미납금은 13억 달러에 이를 정도다. 이런 식으로 유엔 조직은 갈수록 재정 능력이 떨어지고 있어, 그 산하 조직은 점점 더 일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미국이 이와 같이 우익 대중주의나 대중 선동주의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한, 우리는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한테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 대신 이제는 유럽이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유럽이 나서서 세계경제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과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유럽연합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 한스 페터 마르틴 ‘세계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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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의 내용을 3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 이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시오.(400자 내외)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 개방하자는 주장은 마치 마차가 지나가고 손을 흔드는 격”이라며 “하지 말자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 한미 FTA가 외국의 압력에 의한 제2의 을사늑약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지금은 변하지 않으면 변화당하는 시대다. 구한말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다 을사늑약으로 변화당했다”며 “우리 경제의 앞날을 같이 걱정하고 힘을 합쳐야 할 시기에 터무니없는 말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단락의 소주제

    (가)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범지구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나) 경제, 무역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다.

    (다) 미국은 세계경제화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복지국가의 개념이 압살되고 있다.

    (라)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마) 이제는 유럽이 나서서 세계경제가 나아갈 진정한 길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글에 대하여

    세계화의 겉과 속
    ‘세계화의 덫’은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세계화의 실상과 그 위험성을 경고한 대표적인 저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화는 소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사회를 재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진단하는 21세기 인류는 20대 80의 사회로 급속히 재편돼 20%의 소수 생산적 노동자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부에 빌붙어 먹고살아야 하는 80%의 비생산적 계층으로 변화될 것이다. 사회는 생존경쟁으로 처절한 시장경쟁 원리만 지배할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하나의 대원칙 아래 모든 국가가 따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질적인 문명 간의 대립 역시 심화될 것이다. 세계화는 가난한 자국 기업을 붕괴시키고 환경오염을 야기하며 자국문화의 전통까지도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화된 위기’를 예방하고 ‘삶의 질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경쟁력 향상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던 인류가 경제와 경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주체와 객체의 전도현상’, 기업의 경쟁력과 이윤 증대를 위해 온 생태계가 고유의 건강성을 잃어버리고 일그러지는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전도현상’ 등을 바로 세우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예시 답안

    세계화의 겉과 속
    1. 세계시장의 거대한 힘이 범지구적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을 뜻하는 세계화는 실상은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범지구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경제·무역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 기구들을 적극 활용하여 시장과 민족국가들을 다시 새롭게 제대로 통치하자는 유럽의 주장에 반대한다. 미국은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 세계화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모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유럽이 나서서 세계경제가 나아갈 진정한 길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2. 의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지금은 변하지 않으면 변화당하는 시대’이며,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 개방하자는 주장은 마치 마차가 지나가고 손을 흔드는 격’이라고 하면서 미국과의 적극적인 FTA 협정 타결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의 FTA 협정 타결을 통해 한국의 산업과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온 생각이다. 양국의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철저히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쪽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패권국가라는 것을 생각할 때, 미국과의 협정이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FTA 협정이 몰고 올 파장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섣부르게 타결에 이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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