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2006.12.05

애경의 공격경영 기대 반 우려 반?

생활용품·화학·유통 삼각편대로 재편 … 신사업에 거침없는 행보 재계 관심 집중

  • 황재성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sonhng@donga.com

    입력2006-11-30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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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경의 공격경영 기대 반 우려 반?

    애경화학 임성주 대표와 김태환 제주도지사, 양우철 제주도의회의장(왼쪽부터)이 2004년 12월16일 제주도청에서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협약서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왼쪽). 애경이 인수한 삼성플라자 건물.

    비누, 세제류 등 생활용품 전문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애경그룹의 행보에 요즘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해 6월 국내 최초의 정기 저가 항공사를 설립하며 항공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11월 초에는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물산 유통사업부문을 넘겨받았다. 11월21일에는 그룹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인사를 하면서 그룹을 생활용품-화학-유통 부문을 축으로 하는 삼각편대로 재편해 나가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또 내년 1월부터는 계열사를 차례로 상장할 예정이다. 현재 18개 계열사 가운데 상장회사는 애경유지 한 곳뿐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경그룹의 최근 행보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항공사업 등 애경그룹의 기존 사업과 전혀 무관한 신사업에 ‘겁없이’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애경그룹 측은 “제주항공과 같은 저가 항공이 항공산업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말하지만 대한항공 등 기존 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도대체 애경그룹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재계의 관심과 우려를 한꺼번에 받는 걸까.

    비누회사에서 중견 그룹 성장

    올해로 창립 52주년을 맞은 애경그룹은 연간 매출 2조원을 올리는 중견 그룹이지만 일반인에게 여전히 비누, 치약, 세제류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기업으로만 각인돼 있다. 이는 그룹의 모태인 애경(옛 애경유지)의 성공에서 비롯됐다. 애경은 1954년 설립된 뒤 58년 국내 최초의 미용비누인 ‘미향’을 출시하면서 생활용품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크린업, 스파크, 퍼펙트, 트리오 등 소비자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인기 브랜드를 잇따라 내놓으며 생활용품업계에서 LG생활건강에 이어 2인자 자리를 굳혔다.



    매출 기준으로 보면 애경그룹은 화학전문 기업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지난해 1조8000억원의 매출액 가운데 51%가 애경유화, 애경화학 등 화학 관련 계열사 몫이었다. 생활용품은 25%에 머물렀고, 유통과 레저 부문이 24%를 차지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플라자 인수로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유통부문에서 차지하게 된다.

    애경의 공격경영 기대 반 우려 반?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왼쪽)과 채형석 총괄부회장.

    그동안 애경그룹은 기업 경영에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72년부터 고(故) 채몽인 창업주를 대신해 그룹을 이끌어온 장영신 회장과 2002년부터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장 회장의 장남 채형석 부회장의 튀지 않으려는 성격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그룹 내부의 평가다.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18개 계열사 가운데 올해 영업을 시작한 제주항공과 현재 건설공사가 진행 중인 평택역사 백화점(2009년 완공 예정)을 제외한 16개 계열사가 모두 지난해 흑자를 냈다.

    애경그룹은 11월21일 채형석 부회장을 총괄부회장 겸 그룹 CEO로 임명하는 것을 포함해 그룹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인사를 했다. 이와 함께 그룹 계열사를 △생활·항공 △화학 △유통·부동산 개발 등 3개 사업부문으로 재편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전까지 애경그룹은 △생활용품 △화학 △유통·레저 △항공 △해외사업 등 5개 사업부문별로 운영돼왔다.

    일각에서는 조직 개편이 계열사 분리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부문별 최고경영자 가운데 유통·부동산 개발에 장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부회장이, 생활·항공 부문에 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이 임명된 탓이다. 애경그룹은 이에 대해 “신사업 발굴과 사업부문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또 “70년 채몽인 창업주가 타계한 뒤 증여가 완료됐고, 앞으로 계열분리나 지분구조의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애경그룹은 그룹 운영체제를 삼각형 구도로 재편한 뒤 새로운 사업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 상태에서 외부에 공개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 지난해까지 발표해온 그룹 운영 계획을 보면 5년 이내에 20% 이상 신장을 목표로 한다고 돼 있다. 이를 위해 ‘네트워킹 경영’에 초점을 맞춘다는 세부 방침도 제시했다. 한 기업이 모든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애경그룹과 파트너가 되는 회사가 다 같이 윈-윈 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찾자는 의미다. 예를 들어 ‘복합 쇼핑몰’을 지향하는 애경백화점에 대형 서점(북스리브로), 극장(CGV), 대형 슈퍼마켓(LG슈퍼마켓) 등 전문성을 갖춘 사업 파트너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당분간 이 같은 사업 운영 방식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3개 사업부문 가운데 생활·항공 부문은 애경과 에이텍, 애경PNT, 제주항공, 네오팜 등 5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그룹의 모태가 되는 사업부문이자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직원들이 갖는 애정이 남다르다. △세탁세제 ‘스파크’와 ‘퍼펙트’ △주방세제 ‘트리오’와 ‘순샘’ △중성세제 ‘울샴푸’ △치약 ‘2080’ △프리미엄 샴푸 ‘케라시스’ 등이 핵심 브랜드다. 또 아토피 피부염 치료 의약품 제조 전문업체 ‘네오팜‘은 내년 초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다.

    우애로 똘똘 뭉친 2세들의 조화

    화학부문에는 애경유화, 애경화학, 애경PNC, 애경정밀화학, 코스파, 애경소재 등 6개 회사가 포함된다. 올해까지 애경그룹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2005년에 전년 대비 매출이 10% 이상 늘었을 정도로 성장세도 좋고, 경상이익은 50% 가까이 신장했을 만큼 내실이 튼튼하다. 특히 도료, 안료 등의 원료인 PA(무수프탈산)와 PVC 등에 사용되는 가소제를 주력으로 하는 애경유화는 2005년 ‘2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애경그룹은 자랑했다.

    유통·부동산 개발 부문은 애경유지공업과 DP·E,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ARD홀딩스, 애경개발, AK네트워크 등 7개사가 포진해 있다. 애경그룹 미래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맡을 곳으로 점쳐지는 분야다. 이번 인사에서 유통·부동산 개발 부문 최고경영자로 임명된 채동석 부회장은 삼성플라자 인수 직후 가진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2010년까지 유통부문 매출을 3조원으로 늘리고, 유통업계 3강에 진입하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힌 상태.

    애경그룹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형제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 회장은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은 그룹 운영을 총괄하고 있고, 차남인 채동석 부회장은 최근까지 백화점 사업 운영을 전담했다. 막내인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은 50만 평, 18홀 규모의 경기 광주시 중부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딸인 채은정 씨는 애경 마케팅 지원본부 상무로 활약 중이다. 안용찬 애경그룹 생활·항공 부문 부회장은 채 상무의 남편이다. 채형석 부회장과 안 부회장은 대학 때부터 친구 사이로 지내다 처남-매부 관계로 이어졌다.

    장 회장은 현재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고 이들이 서로 협의 조정하면서 애경그룹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들의 경영 성적표는 A+에 가깝다. 화학과 생활용품 등 기존의 2개 사업 영역에서 유통과 항공, 부동산 개발 등 새로운 분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플라자 인수에 성공하고, 제주항공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점도 가점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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