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존경받는 퇴임 대통령은 언제쯤…

  •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2006-11-20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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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받는 퇴임 대통령은 언제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광주를 다녀왔고 부산도 방문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단독으로 회동했다. 여권에서도 DJ를 의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는 이러한 움직임을 내년 대선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을 두고 정치공학, 낡은 시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동안 정치적 움직임을 자제해온 DJ가 미묘한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는 사실은 세간의 구구한 억측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최근 활동이 북한의 핵실험 이후 곤경에 처한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DJ의 활동 재개가 내년 대권경쟁 구도와 무관하게 햇볕정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민주화의 역사가 짧은 탓이기도 하지만 퇴임 이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전임 대통령을 우리는 그동안 가져보지 못했다. 미국의 많은 대통령들이 퇴임 후 정치에서 거리를 둔 채 국내적, 국제적으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곳을 찾아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존경받는 모습을 우리는 부럽게 지켜보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빈곤가정에 새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아프리카를 다섯 차례나 방문해 에이즈 퇴치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왔다. 전두환, 노태우 등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화 이후 나라를 이끌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적어도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처럼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파적 입장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른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김 전 대통령의 움직임은 적어도 카터나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김 전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책의 지속 여부를 퇴임한 대통령이 외치고 다니는 것은 적절한 처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정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책 노선은 변화되게 마련이다. 새 환경에 대한 평가와 그로 인한 정책의 지속 여부는 내년 대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알아서 결정할 몫이기도 하다. 햇볕정책 수호를 위해서라는 김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내년 대권구도와 연관시켜 추측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DJ 바쁜 행보 보니 옛 정치인들의 집념 떠올라



    사실 햇볕정책의 지속 여부와 무관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역사적이라고 할 만한 큰 업적들을 남겼다. 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호남의 정치적 소외감과 한을 해결함으로써 지역감정 문제 해결을 위한 물꼬를 텄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분단 이후 남북한 사이에 새 시대를 열었다. 자신의 임기 중 이룬 업적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말 그대로 역사가 평가하도록 남겨두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김종필 씨와 함께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낡은 정치 청산과 정치개혁이 화두가 됐던 것은 DJ를 비롯한 소위 ‘3김 시대’를 이제는 뛰어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의 표현이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의 행보가 탐탁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40대 기수론 이후 수십 년간 오로지 권력만을 향해 달려온 옛 정치인들의 집념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세간의 오해를 살 수 있는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옳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은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을 갖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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