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조리법 따라 변화무쌍 … 꼬불꼬불한 맛의 세계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11-15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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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법 따라 변화무쌍 … 꼬불꼬불한 맛의 세계
    1. 일본에는 ‘일본 라면’이 없다

    라면은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라면 식당이 간판에 ‘일본 라면’이라는 말을 적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 가면 라면은 온통 ‘중화 라면’뿐이다. ‘일본 전통 라면’은 없는 것이다. 즉, 라면에서 전통은 ‘중국식’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등에는 라면이 중국 건면에서 유래했으며 이것이 기름에 튀긴 유탕면으로 변화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스턴트 라면에만 해당할 뿐이다. 일본 라면은 원래 생면으로 조리한다. 진한 고기국물이나 구수한 된장국물, 깔끔한 소금국물에 가느다란 생면을 말고 그 위에 고기조림, 야채, 김 따위를 올려 먹는 음식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중국 음식을 찾자면 우육탕면이 있다. 인스턴트 면만 따지기보다 국물과 고명 등의 스타일까지 감안한다면 라면의 원조는 중국의 우육탕면이 분명하다.

    얼마 전 동경 뒷골목에서 라면을 먹다가 이런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한국에 동경식 라면집을 내면서 일본에서처럼 ‘중화 라면’이라고 간판을 달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본 라면이 중국에 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온 라면’ 정도로 여기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다른 음식에도 적용해보면 퍽 흥미롭다. 자장면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한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최근 일본에서도 자장면이 인기다. 일종의 한류인 셈이다.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들은 한국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었기 때문에 한국 음식인지 중국 음식인지 헷갈릴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와본 적 없는 일본인들은 일본의 한국 식당에서 자장면을 먹을 것이니 간판에 ‘중화’라고 적어놓지 않으면 이를 한국 음식으로 여길 게 분명하다.



    자장면이 일본에서 대중화된다면 일본의 라면집이 대부분 ‘중화 라면’이라고 간판을 달아놓았듯이 ‘한국 자장면’이라고 적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장면은 일본인들에게 한국 음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라면을 일본 음식으로 여기듯이 말이다.

    2. 한국인 주식은 라면?

    20여 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 여부나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다. 너무 그럴듯하고 실감이 나서, 풍문이라고 해도 라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어떤 고고학자가 난지도를 조사했대. 난지도는 대한민국 서울의 쓰레기장이잖아.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난지도를 조개무덤쯤으로 여기고 발굴조사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후손 입장에서 난지도를 뒤진 거야. 그럼 20세기 후반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이 나오지 않겠어? 20세기 후반 서울 사람들의 주식이 뭐로 나온 지 알아? 라면이야. 음식과 관련된 쓰레기 중에 라면봉지가 제일 많았나 봐. 음식쓰레기는 다 썩었으니까….”

    3. 라면에 달걀 푸는 법

    나에겐 자식이 셋 있다. 똑같은 모유와 밥을 먹고 자랐는데도 이놈들의 입맛은 제각각이다. 첫째는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둘째는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푸성귀는 싫어한다. 막내 이놈이 가장 독특하다. 어릴 때부터 간장게장, 백김치 같은 ‘노친네 음식’을 즐긴다.

    집에는 라면을 사두지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줄이기 위한 방책이다. 그러나 애들은 아무리 말려도 안 된다. 라면을 먹고 싶다고 졸라대면 그때 먹을 양만 사오게 한다. 어느 일요일 점심때의 일이다. 특식으로 라면을 먹자며 난리였다. 라면 맛본 지 몇 주나 되었다고 하기에 승낙했다. 한 냄비 끓여 다 같이 먹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집사람이 막내의 라면을 먼저 끓여주고 그 다음에 첫째, 둘째의 라면을 각각 끓이는 것이 아닌가. 같은 브랜드의 라면이어서 더욱 의아해하던 나에게 던진 아내의 푸념.

    “입맛이 제각각이라 라면에 달걀 푸는 법이 다 달라요. 첫째는 라면이 다 끓고 난 다음에 달걀을 넣는데 노른자를 깨뜨려서는 안 되고, 둘째는 라면이 끓을 때 다른 그릇에 푼 달걀을 천천히 부으면서 휘휘 저어야 해요. 그리고 셋째는 다 끓고 난 다음에 달걀을 넣고 젓가락으로 깨뜨려야 해요.”

    인스턴트 라면에 달걀을 넣는 방법만으로도 맛 차이가 난다는 게 나로서는 무척 신기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라면 요리법을 검색해보면 인스턴트 라면으로 얼마나 다양한 ‘장난’을 치는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입맛을 강제하는 만큼 먹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맛의 세계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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