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교도소 캠퍼스는 ‘조폭천하’

인권위 조사결과 학생대표 맡고 장학금·표창 등 혜택 독차지 … 재소자 방 배정에도 관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11-15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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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 캠퍼스는 ‘조폭천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소속의 조사관 2명이 지난해 3월부터 수개월간 순천교도소 등 전국 4개 교도소 내 교육시설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직폭력사범에 대한 관리에 구멍이 뚫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가 지난 9월29일 국회 법사위 이상경 의원(열린우리당)실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순천교도소 청암대학 선평캠퍼스 2005년도 1기생 학위수여식에서 최우수상, 우수상, 지방교정청장상 등 9개 상을 6명의 조폭사범과 그 추종자들이 싹쓸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에 입학한 2기생도 상황은 마찬가지. 2기생에는 5명의 조폭사범이 선발됐고, 이들이 학생대표와 총무 등 대표성 있는 직책을 모두 맡았다. 이는 ‘조폭사범은 재학생의 반장이나 총무 등 대표성 있는 직책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법무부령으로 정한 ‘조직폭력사범 수용관리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2기생에게 수여된 장학금도 대부분 조폭사범에게 돌아갔다. 학교에서 학기마다 3명에게 지급하는 성적장학금을 2004년 1학기에는 1명, 2학기에는 3명의 조폭사범이 받았다. 나머지도 유사수용자가 차지했다. 교도소에서 수여하는 수용자정신교육 우수자 또는 독후감 우수자 표창장 등도 대부분 조폭사범이 받았다. 이상경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장학금이나 포상을 받으면 행형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4급에서 3급 또는 2급으로 올라가 일명 ‘신분장 세탁’이 이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한 재소자 출신 “알파벳도 모르면서 1, 2등” 진술



    조폭사범들은 또 재소자들에게 방을 배정하는 것(배방)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재소자를 같은 방에 두고 온갖 수발을 들도록 하기 위한 것. 겨울철이면 조폭사범들은 젊은 재소자들이 라면물 온수통에 덥혀 가져다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젊은 재소자들이 조폭사범들에게 일명 ‘건달징역’이라는 것을 당한 것.

    ‘조폭사범 수용관리지침’에는 행동대장급 이상 조폭사범에 대해서는 독거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조폭사범들은 교육생 재소자들의 배방에도 관여해 교육생 사동의 별도 거실에 조폭사범들이 나눠서 방을 배정받았으며, 일반 재소자들에게 시중을 들게 했다.

    인권위의 조사결과, 조폭사범들이 교도관의 계호 없이 혼자 장소를 이동하는 ‘독보(獨步)’ 행위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도관들이 조폭사범들의 수용관리지침을 위반하는 행위를 묵인, 방치한 셈이다.

    교도소 캠퍼스는 ‘조폭천하’

    국회 법사위원들이 지난해 9월29일 순천교도소 내 청암대학 선평캠퍼스에서 재소자들이 구운 빵을 시식하고 있다.

    인권위는 국정감사 자료에서 “조폭사범 수용관리지침은 사소한 규율 위반이라고 해도 묵인, 방관하거나 임의로 훈계조치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감독자에게 보고한 후 조사부에서 등재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암대학 측의 학사 관리에도 문제가 지적됐다. 시험을 볼 때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은 것. 순천교도소를 직접 조사했던 인권위의 진 모 조사관은 “조사 당시에도 시험을 치를 때 아무도 감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돼 최소한 교도관이라도 입회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이상경 의원은 인권위의 자료와 함께 순천교도소 청암대학 선평캠퍼스 관광호텔조리과를 졸업하거나 중도에 그만둔 재소자 3명의 진술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중 입학 1기생인 A씨의 진술이 가장 적나라했다.

    A씨의 눈에 비친 선평캠퍼스는 조직폭력배(조폭) 사범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휴양시설이었다”고 말했다.

    순천교도소가 재소자들을 위한 교정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년 전문 학사과정을 운영하는 선평캠퍼스를 만든 것은 2003년 3월. 전국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모집정원은 한 학년에 40명씩 모두 80명이다. 수업료 300여 만원 중 절반은 학교에서 부담하고, 절반은 재소자가 직접 내야 한다. 여기에 책값 등을 포함해 매월 20여 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수강할 수 있다.

    A씨에 따르면 1기생 38명 중 조폭사범은 유사수용자를 포함해 모두 6명. 유사수용자란 수사기관과 교정당국에 의해 조폭사범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조폭이거나 조폭에 복종 또는 조폭과의 친분을 이용해 세를 과시하는 수용자를 가리킨다. 조폭사범은 개인 신상을 기록한 ‘신분장’에 ‘조’라고 표시돼 있다.

    선평캠퍼스에 모인 조폭사범들은 먼저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하고 세를 과시했다. 학생대표는 조폭사범의 몫이었다. 또 장학금, 표창, 귀휴 등 모든 혜택이 그들에게 돌아갔다.

    조폭사범 중 1등에서 10등까지 차등해서 주는 장학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1학기 때 32등을 했던 조폭사범이 2학기 때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수석을 차지했다. 나중에 부정물품 반입 등의 이유로 제적당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조폭사범이 그의 뒤를 이어 2등을 했다. A씨의 이야기다.

    “20여 일을 밤새워 공부한 사람은 22등을 했는데, 알파벳도 모르는 조폭들이 1, 2등을 하니 억울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에서 시험볼 때 백지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만 3일간 독방신세를 졌고, 반성문까지 써야 했다.”

    교도소 측 “학사관리 문제 없었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했다. 컴퓨터 수업시간에 조폭들은 리니지와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었다. 교도소 내에서는 금지된 행위들이 수업시간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 학사 관리도 엉망이었다. 학과시험을 볼 때 커닝은 기본이었다.

    교도소 캠퍼스는 ‘조폭천하’

    2003년 2월 청주교도소 내 주성대학 흥덕캠퍼스 첫 졸업식에서 윤석용 학장이 한 졸업생과 악수를 하고 있다.

    A씨가 보기에 조폭사범들이 전문 학사과정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최고 수준의 강의실 환경 때문이다. 컴퓨터실에는 한여름에 에어컨이 나오고, 강의실에는 음식 조리와 보관을 위한 전자레인지와 냉장고 등도 갖춰져 있다. 덕분에 한식조리실습, 제빵실습, 양식조리실습, 제과실습 등의 수업과정을 통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2004년 2기생으로 입학해 3학기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둔 B씨와 C씨의 진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경 의원은 이들의 진술내용과 인권위의 조사내용을 근거로 지난 10월30일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무부장관에게 “철저한 자체감사 결과와 그에 따른 조치결과를 보고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순천교도소와 청암대학 측 관계자들은 인권위의 조사내용과 이 의원이 제시한 재소자들 진술 내용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순천교도소의 한 관계자는 “학생대표로 조폭사범이 뽑힌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조폭사범이 배방에 관여하거나 건달징역을 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용납도 할 수 없다. 컴퓨터 게임도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청암대학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제기된 후 자체 조사한 결과 학사 관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부정행위도 없었다. 교도소와 협의해서 시험은 강당에서 치르고 비디오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무부 교육교학과 김진구 사무관은 “광주지방교정청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는데, 1년 반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쉽지 않았다. 조사결과 문제가 확인된 부분도 있고,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관련자에 대해서는 문책을 한 상태다. 또 순천교도소, 청주교도소, 천안소년교도소 등 교육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교도소에 교육생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조폭사범에 대한 문제는 비단 순천교도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위는 전문 학사과정을 운영하는 청주교도소와 출역공장을 운영하는 원주와 공주교도소 등에 대해서도 같은 시기에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인권위는 나머지 3개 교도소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인권위 1년 반 지나도록 결과공개 안 해

    청주교도소는 2001년 3월부터 주성대학 흥덕캠퍼스에 컴퓨터 프로그래밍학과를 운영 중이다. 정원은 춘천교도소와 마찬가지로 한 학년에 40명씩 모두 80명. 이곳의 학생대표도 조직폭력사범 출신이었고, 건달징역에 시달리는 일반 재소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인권위의 조사 결과다.

    진 조사관은 “조폭사범이 학생대표로 선발된 것도 문제지만 조폭사범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건달징역 행태들이 발견됐다. 다만 학사 관리에서는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성대학의 한 관계자는 “성적 관리뿐 아니라 시험감독도 아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부정행위는 있을 수 없다. 단, 학생대표는 자발적인 투표를 통해 선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주와 공주교도소의 출역공장은 학교와는 조금 다른 세계다. 인권위의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조폭사범과 일반 재소자 간의 위화감이 무척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폭사범들은 위계질서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90도로 인사함으로써 일반 재소자들에게 위화감을 주는가 하면, 일반 작업대 뒤쪽에 별도의 작업대를 배치해 사용하고 있었다. 출역공장에도 건달징역에 시달리는 일반 재소자들이 적지 않았다.

    진 조사관은 “여러 곳의 교도소를 조사한 결과 건달징역은 대부분의 교도소에서 나타났다. 조폭사범들에 대한 교도소의 관리 수준에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직권조사를 실시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최종 조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업무가 폭증한 데다 올해 초 갑작스레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게 인권위 측 해명이다.

    인권위 침해구제2팀 홍세현 팀장은 “지난해 조사했던 4개 교도소 조직폭력사범 관리 실태가 그동안 어떻게 개선 또는 변화됐는지 확인 중”이라면서 “이달 말 조사위원회에 상정한 뒤 결정이 나는 대로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김 사무관은 “인권위에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1년 반이 지나도록 매듭을 지어주지 않아 안타깝다”면서 “조사결과가 나오면 확인절차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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