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8

2006.10.31

‘영국 민주주의’ 아하 이렇구나!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10-25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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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민주주의’ 아하 이렇구나!
    1990년대 진정한 민주화 길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권교체기와 선거 때마다 숱한 민주주의 관련 이슈를 만들어냈다. 툭하면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논란과 정당의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최근엔 대권 후보를 국민이 뽑는 오픈 프라이머리제까지 등장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민주주의 제도를 찾기 위해 아직도 논란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의회민주주의의 시원(始原)으로 여겨지는 영국 의회정치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라운더바우트를 도는 산적과 말도둑’은 웨스트민스터 모델로 불리는 영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비롯, 헌법과 국회의 역할, 의회의 구성과 활동,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와 내각, 영국 정당의 변천사, 의회선거의 특징 등을 살피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모델은 영국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핵심이다. 영국 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의 이름을 딴 영국식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다수당 의원들로 구성된 행정부(내각), 야당,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양원제 입법부(상원의원은 지명), 상징적 국가 수반, 불신임을 통한 하원의 행정부 통제, 의회의 자체 해산과 그에 따른 총선거 실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

    흔히 ‘영국에는 헌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1215년 대헌장이 선포된 이래 약 8세기에 걸쳐 헌법적 원리, 즉 계약으로 천천히 만들어 왔고, 이 원리들이 하나의 문서로 정리돼 있지 않을 뿐이다. 영국 헌법은 성문법과 불문법이 뒤섞인 복잡한 정치적 약속이며,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의 독특한 역사적 전통을 반영하는 사회계약의 소산이다.

    오늘날 영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국가기관은 ‘군주의 대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총리와 중앙정부다. 총리가 어떤 지위를 갖고 있고 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관한 법조문은 거의 없다. 1721년 이래 지금까지 285년에 걸쳐 받아들여진 정치적 관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총리는 원칙적으로 국왕이 뽑아 임명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 당이 하원 선거에서 승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정당은 보수당이다. 영국 신문은 토리(Tory)라는 말을 즐겨 쓴다. 토리와 휘그(Whig)는 1679년 요크 공작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의회 내의 찬반 세력들이 서로 경멸하며 불렀던 욕이다. 즉 토리는 ‘아일랜드 산적’이고 휘그는 ‘말도둑’이라는 뜻이다. 19세기 중반 들어서면서 토리와 휘그는 보수당과 자유당으로 당의 명칭을 바꾼다. 자유당의 자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노동당이 차지했다. 현재까지 영국의 정당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거리의 원형교차로를 라운더바우트라고 한다. 그곳에는 신호등이 없다. 어디에서 진입하든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원하는 길로 빠져나가면 된다. 속도는 느리지만 약속을 지키는 운전자들 덕에 신호등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안전하다. 오른쪽으로부터 원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 라운더바우트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영국 정치는 라운더바우트를 닮았다. 오래도록 누적된 약속 덕택에 이들은 설령 갈등과 대립이 날카로워지는 상황일지라도 의회정치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민주제도를 발전시켰다. 계약 또는 약속의 전통은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자연스런 규범으로 뿌리내렸다.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선거철만 되면 ‘철새’가 날아다니며, 신뢰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정치는 과연 원조 민주주의 영국에서 무엇을 배울지 궁금하다.

    김웅진 외 지음/ 르네상스 펴냄/ 23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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