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8

2006.10.31

韓藥, 너의 진실을 알려다오

수지침학회 “효과 미미 80~90% 부작용” vs 한의협 “터무니없는 비방, 용서 못해”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10-25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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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藥, 너의 진실을 알려다오

    수지침학회 유태우 회장이 최근 발간한 책 ‘한방약 부작용의 실상’을 둘러싸고 수지침학회와 대한한의사협회의 정면 충돌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의약계는 한약의 독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체질 탓이라며 그 책임을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한약은 2000여 년간 전설적인 효과만 믿고 이용돼 왔으며, 한 번도 인체 임상실험을 과학적으로 실시한 바가 없었다. 이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건강관리와 질병을 치료하는 데 한방약은 효과도 미미한 데다 80~90% 이상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방약 부작용의 실상’(부제 ‘친생명의학의 탄생’, 고려수지침학회 펴냄)이라는 책에 실린 파격적인 주장들 가운데 일부다. 편저자는 고려수지침요법학회(이하 ‘수지침학회’) 유태우(61) 회장. 유 회장은 1970년대 초반 고려수지침요법(일명 ‘서금의학’)을 창안하고 관련 서적을 60여 권 이상 집필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수지침학회 회장직과 의료 전문지인 ‘보건신문’의 발행인을 겸하고 있다.

    부작용 설문조사 실시가 발단



    최근 유 회장의 이 책을 둘러싸고 수지침학회와 (사)대한한의사협회(회장 엄종희·이하 ‘한의협’)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480쪽이 넘는 책 분량의 상당 부분이 ‘한약은 효과가 미미하고 되레 부작용이 심해 위험한 약’이라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어 이에 발끈한 한의협과 전면전 조짐을 보이는 것. 특히 유 회장은 이 책에 전국의 수지침학회 회원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약 부작용에 관한 두 차례의 설문조사 결과를 실은 데다, 지금까지 나온 한의학 석·박사 논문들이 한의학 고서에 명시된 약효의 검증에만 치중한 결과 동물실험이 아닌 인체 임상실험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한약의 효과성을 단정지어 왔다고 정면 비판했다.

    수지침학회와 한의협의 이 같은 ‘불화’는 사실상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지침학회가 4월29일 광운대학교에서 연 ‘제18회 한일고려수지침학술대회’의 참석자 831명(남녀)을 대상으로 한약 복용 후의 효과와 부작용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게 발단이 됐다.

    韓藥, 너의 진실을 알려다오

    대한한의사협회가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설문 대상자의 87.1%가 한약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된 것. 더욱이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 회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보건신문이 5월에 한약 부작용 관련 기획기사까지 내보내자 한의협은 “한약의 효능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며 보건신문과 수지침학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당초 한의협은 유 회장과 보건신문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을 검토했으나, 보건신문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중재안을 양측 모두 수용함으로써 파문은 일단락됐다. 당시 언론중재위는 “문제의 설문조사는 수지침학회 학술대회 참석자들만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실시한 것이어서 객관성이 의심된다”는 한의협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결국 설문조사의 표본집단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보건신문 윤백헌 전무는 “의료 전문지로서, 널리 쓰이는 약물의 부작용을 보도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존중 차원에서 지극히 당연하지 않으냐”며 “설문조사 결과가 예상보다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결코 한약이나 한의사들을 음해하기 위해 보도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동안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두 단체는 9월5일 한의협이 유 회장을 ‘표시 및 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함으로써 또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고소장에 따르면, 유 회장이 6월20일자 ‘전통의학신문’에 자신이 발행한 ‘서금요법 개론’ 책자를 광고하면서 ‘한약 사용 주의하세요’라는 제목하에 한약재 80% 이상이 효과가 불확실하고 건강에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해서 사용하라는 등의 문구를 씀으로써 한약 및 한의사들을 비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회장은 수지침학회를 통해 앞서 언급한 책 ‘한방약 부작용의 실상’을 10월10일 발행함으로써 맞불을 지폈다. 특히 4월 실시한 설문조사의 후속 격으로 5월15일부터 6월22일까지 한약 복용 경험이 있는 전국의 20대 이상 남녀 일반인과 수지침학회 회원 1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차 설문조사 결과(설문 대상자의 91.4%가 한약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응답)를 책에 게재함으로써 한의협과의 ‘2차 대전’에 돌입했다. 이 책에는 또한 한약 부작용 사례와 유형, 수지침학회 차원에서 한약의 부작용을 직접 실험한 내용까지 실려 있다.

    유 회장이 한의협의 강도 높은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책을 펴낸 것은 적지 않은 파장을 감수할 각오 없이는 힘든 일이다.

    객관적 검증, 과학화는 반드시 필요

    “나는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한약이 몸에 좋은 것으로 알고 많이 복용해 왔다. 1984년부터 20년간 관인 향군한약학원의 원장으로서 한약의 장점을 가르치기도 했다. 미국에서 동양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한약의 부작용이 크다는 새로운 사실을 이제 깨달아 이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려 책을 출간했다.”

    10월18일, 일본 출장 중이던 유 회장은 ‘주간동아’와의 국제통화에서 “수지침학회가 자체 분석해 본 결과 한약재에서 농약이나 중금속이 검출된다는 기존의 사실 이외에도 한약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자연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큰 짐을 지게 된 것 같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한약 부작용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의협은 유 회장의 ‘한약 부작용’ 주장이 터무니없는 비방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의협 최정국 홍보이사는 “4월 실시된 수지침학회의 한약 부작용 설문조사 결과가 실린 신문기사를 대한개원의협의회(양방)가 전국의 내과와 소아과에 게시하기 위해 포스터로 제작해 배포 직전 단계까지 가는 등 ‘악용’된 사례마저 생긴 일이 있다”며 “한의사가 아닌 비전문가인 유 회장과 임의단체인 수지침학회가 음양맥진법이나 서금의학 같은 그들만의 이론으로 한약의 부작용을 검증했다는 주장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은 것이며, 단지 한약을 폄훼하고 한의사들을 모함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단호히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의협 산하 ‘한의학 발전과 국민건강수호위원회’는 10월18일 유태우 회장의 책 발간에 대해 “악의적인 한약 폄훼 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국내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방약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객관적 검증, 표준화와 과학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수지침학회와 한의협의 대립이 불러온 한약 부작용 문제의 공론화는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의료 소비자들로서는 일견 반갑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두 단체의 ‘진실 게임’은 어떻게 귀결될까.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한약 부작용 문제가 ‘독성 위험 한약재 및 중독우려 품목’ 등을 의제로 10월23일 열릴 식품의약품안전청 국정감사와 맞물려 두 단체에 각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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