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7

2006.10.24

현대사회와 인간소외

  • 입력2006-10-23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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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호에는 ‘현대사회와 인간소외’를 다룬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를 소개합니다. 현대인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소외감과 인간성 상실 등의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현대인이 처한 삶의 위기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해봅시다. <편집자>
    [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보는 소외는 거의 전면적인 것이다. 현대의 소외는 사람의 일, 소비하는 물건, 국가, 동료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인간은 그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스스로 창조했다. 그는 그 자신이 만든 전문적인 기구를 이끌어갈 복잡한 사회기구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 모든 창조물은 이제 그의 위에 서 있다. 그는 스스로를 창조자와 중심체로서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만든 세계의 심부름꾼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서 놓여난 그 힘이 강력해지고 거대해질수록 인간으로서의 자신은 더욱더 무력해짐을 느낀다. 그는 자기가 창조함으로써 구체화되었으면서도 자신으로부터는 소외된 자신의 힘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의 창조물의 소유가 되어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권마저 잃어버렸다.

    [나] 인간은 자기 자신이 시장판에 매매하기 좋게 내걸린 어떤 물건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니까 인간은 스스로를 적극적인 행위자 또는 인간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경험하지 못한다. 그는 이 같은 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그저 시장에서 자기 자신을 성공적으로 팔리게 한다는 데 있다. 그의 자아의식 역시 사랑하고 생각하는 그런 개인으로서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그의 역할에서 비롯된다. (중략)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당신은 누구냐?” 하고 묻는다면 그는 “나는 제조업자입니다”, “나는 사무직원입니다”, “나는 의사올시다” 또는 “나는 결혼한 사람입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올시다”라고 대답한다. 즉, 그의 대답은 기계들이 응답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과 공포와 확신, 의심 등을 가진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체제에서 어떤 기능을 충족시키고 있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과는 소외된 텅 빈 존재로서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 그의 가치 관념(價値觀念)은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즉 자신을 후한 값에 팔 수 있는가, 자신을 당초와 비교해서 더 비싼 값에 내놓을 수 있는가, 요컨대 자신이 성공적인 존재인가의 여부에 가치 기준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그의 밑천이며, 인생에 있어서 그가 하는 일이란 이 밑천을 유리하게 투자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획득하는 데 있다. 우정, 예절바름, 친절함 등 인간의 품위는 상품으로 탈바꿈하여 인간 시장에서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퍼스낼리티의 포장’이라는 자산 구실을 한다. 만약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유리하게 투자하지 못하면 그는 패자요, 그렇지 않고 잘되면 그때에는 승자로 자부한다. 확실히 가치 관념은 항상 그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고 외부적인 요인, 즉 시장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상품 가격이 결정되듯이 자기 자신의 가치도 결정한다. 사용가치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의 교환가치에 관계되는 한 안 팔리는 물건과 마찬가지로 무가치한 것이다.

    [라] 팔려고 내놓은 이 같은 소외된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문화에서조차도 인간의 특성이라 했던 인격의 존엄성을 몽땅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는 거의 모든 자아의식과 유일무이한 실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아의식은 ‘나의’ 경험,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결심, ‘나의’ 판단, ‘나의’ 행동의 주체로서 자신을 경험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의 경험은 나 자신의 것으로 소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질에는 자아가 없다. 물질화되어버린 인간도 자기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마] 입센이 ‘페르 귄트’에서 자아 상실을 현대인 비판의 중요 테마로 했던 19세기 당시 이래 자아의식이 얼마나 급격히 퇴보했는가! 작품 ‘페르 귄트’에 등장하는 주인공 페르 귄트는 물질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그는 끝내 자기 자신을 상실해버리고 알맹이는 없이 껍질만 겹겹이 싸인 양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입센은 페르 귄트가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을 때 허무라고 하는 ‘쇠로 만든 국자’ 속에 던져지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기를 원할 정도의 인간적인 파국에 직면한다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허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것인가를 나타냈다. 자기를 경험함과 동시에 동일화(同一化)의 경험은 사라지는데 이렇게 되면 ‘2차적인 자아의식’을 획득하여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 인간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2차적인 자아의식을 갖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남한테서 인정을 받고 이 사회에서 가치를 가지며 성공하고 있고 유용하다고 하는 사실, 다시 말해 현대사회의 틀에 잘 맞는 존재라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 팔기 좋은 상품으로 경험해야 한다.



    [바] 현대생활의 특수한 측면, 즉 틀에 박힌 ‘일상성’과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자각하기 힘들게 억압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는 소외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서 인생의 보편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사람은 매일의 식량을 벌어야 하는데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가 몰두해야 하는 작업이다. 사람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일상생활의 일도 처리해야 하며, 그래서 이 같은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일정한 일상성에 얽매이게 된다. 그는 사회질서, 풍습, 습관, 관념을 만들어내어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마찰을 최소한으로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계(自然界)에 무엇인가 첨가하는,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든 인공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모든 문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사실과 접촉을 가지며 자기 존재의 고독함과 단편성이라는 비극적인 사실과 함께 또 사랑하고 있고 함께 어울려 있다는 기쁨을 경험할 때에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일상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에만 완전히 얽매여 있다면, 그리고 이 세계의 인위적이고 상식적인 부분밖에 볼 수 없다면 그는 자신과 세계와도 접촉을 잃고 이해마저 상실하게 된다.

    -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논술로 대학 가기

    1. 위 글에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3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 현대사회에서 소외는 거의 전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를 바탕으로 소외 극복의 방안을 4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보기)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각 단락의 소주제문

    [가] 인간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만들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만든 세계에 의해 소외당하고 있다.

    [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본질적인 면보다는 사회체제 안에서 자신이 충족시키고 있는 역할을 통해 인식하며, 자신의 힘에 대해서도 소외되어 있다.

    [다] 개인의 가치 관념은 자신의 본질적인 면이 아니라 시장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라] 물질화되어버린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주체로서의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마] 현대사회에 이르러 자아의식이 급격히 퇴보했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개인은 사회에서 성공하고 유용하다는 사실로 가치를 얻고자 한다.

    [바] 인간이 일상성과 인공성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아 회복을 위해서는 인간 존재의 근본과 세계에 접촉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글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은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가이자 사회사상가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론을 자유주의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현상에 응용하여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진단하는 동시에, 인간성에 입각한 ‘건전한 사회’의 실현을 지향했다. 그는 산업사회의 인간소외라는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본래 소유하고 있는 창조적 활동이나 사랑이 작용해야 한다고 했다. ‘건전한 사회’는 그의 대표적 저작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속편 격으로 여기에서도 역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주요한 쟁점으로 삼고 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본능론과 개인적 심리학을 비판하고, 인간의 성격은 사회적·문화적 요인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또 개인의 성격보다 특정한 사회의 성원에 공통된 성격에 주목해 ‘사회적 성격’을 주창했다. 프롬에 따르면 근대인은 중세 사회의 공동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개성을 발달시키는 자유를 얻었으나, 반면 고독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결과 근대인은 그런 고독이나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꾀하는데, 이 같은 근대인의 사회적 성격이 권위주의적 성격의 온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발췌 부분에서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소외 양상 중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가 어떻게 초래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현대사회와 인간소외
    예시 답안

    1. 현대인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만들었으나 이제 자신이 만든 세계에 의해 소외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인간적 품성이나 본성과 같은 자신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 사회적 역할에 의해 개인의 가치가 평가되며,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시장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인간은 물질화되고, 물질화된 인간은 존엄성을 상실하며, 결국 주체로서의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현대인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의해 소외당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현대인들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의해 소외당하고 있다. 즉, 관료제와 분업화된 생산체계 속에서 인간은 하나의 부속품으로 기능하게 됐다. 또한 개인의 고유한 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이러한 사회체제 속에서 개인은 소외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외 현상을 극복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인간적인 교류를 통한 가치 회복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는 시의 구절처럼 인간은 그 자체로는 온전한 섬이 될 수 없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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