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7

2006.10.24

伊 오페라 올가을 감성 자극하네

돈 카를로, 토스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 수준 높은 작품 무대에 올라

  • 노승림 음악칼럼니스트

    입력2006-10-18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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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伊 오페라 올가을 감성 자극하네
    1997년은 한국 공연예술계에도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특히 자본력에 심하게 좌지우지되는 오페라계는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민간 오페라단은 무려 60개에 육박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한 손에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만큼 ‘소멸’돼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위기는 방만하게 팽창만 하던 속 빈 강정의 오페라계에 자정의 기회를 주었다. 살아남은 소수 정예들이 새롭게 체계를 재편하는 동시에 천편일률적인 무대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하면서 21세기 한국 오페라계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공연의 중심도 성악가에서 연출로 옮겨져 가수들의 노래자랑이 아닌 ‘볼 만한 무대’가 추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함으로써 때론 공연 매진 사례를 기록할 만큼 한국 오페라 공연은 성장했다.

    예술의전당 10주년 기념으로 공연

    오페라 전용극장도 부족하고, 매일 오페라 아리아를 공연한다고 해도 객석을 매회 다 채울 만큼 한국에 오페라 관객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 오페라가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번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를 가져봄직한 가을이다.

    올가을 오페라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후기 작품에 집중되어 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공연은 베르디의 ‘돈 카를로’(11월7~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로, 1996년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한국 공연장 최초로 자체 기획 오페라 시대를 열었던 예술의전당이 10주년 기념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이소영은 예술의전당 자체 기획 오페라 ‘라보엠’을 통해 국내 무대에 처음 알려졌으며, 2005년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와 구노의 ‘파우스트’를 성공적으로 공연함으로써 입지를 굳혔다. 타이틀 롤인 테너 김재형 또한 예술의전당에서 발굴한 대표 신예로, 자체 기획 오페라 ‘카르멘’으로 데뷔했다.



    이소영의 연출 스타일로 미뤄 보건대, ‘돈 카를로’에서 기대되는 재미는 역시 탁월할 정도로 강렬한 무대의 색채감과 등장인물 간의 심리 대결일 것이다. 종교개혁의 폭풍우에 휘말린 1560년대 스페인 왕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한 여자(왕비)를 사랑하는 아버지(필리포 2세)와 아들(돈 카를로), 그런 왕자와 왕비의 관계를 알고 질투에 눈이 먼 왕의 정부(에볼리), 왕과 왕자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자 애쓰는 충신(포사 후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실질적인 사건보다는 내면의 갈등 묘사가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룬다. 특히 ‘돈 카를로’는 ‘남자들의 오페라’라고 할 만큼 남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이다. 극중의 각종 아리아와 이중창들은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빼어난 기량을 지녀야만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해외의 유명 성악 콩쿠르에 필수과목으로 애창되고 있다. 3막에 펼쳐질 화형 장면 또한 색채 상징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출가가 어떤 방법으로 스펙터클하게 표현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민간 오페라단으로 출범해 해외 유학파 신예들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젊은 무대’를 이끌어온 한국오페라단은 이번 가을무대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를 선보인다(11월9~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예술의전당의 ‘돈 카를로’에서 젊은 해석을 기대할 수 있다면, 한국오페라단의 ‘토스카’는 그 반대로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1900년 1월14일 푸치니가 직접 공연 연출을 맡았던 이탈리아 로마의 콘스탄치 극장 무대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오리지널 토스카’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스카’는 일단 하드웨어 측면에서 눈길을 끄는 바가 많다. 로마극장에 보존되어 있는 푸치니의 친필 서명이 적힌 무대가 공수돼 오고 의상, 소품, 조명 등이 100년도 넘는 시간을 초월해 그대로 재현된다. 공연 연출을 맡은 마우리지오 마티아는 ‘토스카’ 전문 재현 연출가로 활동하다가 몇 년 전에 사망한 마우로 보로니니의 후계자다. 희대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가 입었던 토스카 무대의상도 공연장에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일흔 살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 내한

    외양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번 ‘토스카’에 애호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진짜 이유는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 때문이다. 스카르피아 역을 맡은 올해 일흔 살의 이 이탈리아 거장은 내면적 깊이가 돋보이는 성악가로, 레오 누치와 함께 바리톤 부문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거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에 캐스팅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하지 못한 만큼, 이번 공연은 그의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수준 높은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1월18~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를 올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은 외환위기의 철퇴에 가장 심하게 충격을 받은 시립단체다. 독자적인 재단으로 발족해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멸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었는데, 공연 소식이 들려와 더욱 반갑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가 담긴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오페라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혈전이 주요 내용이다. 줄거리는 거칠고 장면은 유혈이 낭자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삽입된 음악들은 따로 떼어놓아도 좋을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산투차 네가 여기에’ 등을 주목해 들으면 좋겠다. 소프라노 박정원과 김인혜, 테너 이정원과 한윤석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견 성악가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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