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7

2006.10.24

직장 여성의 적은 여성?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8명 여직원 간 갈등 인정 대부분 경쟁의식에서 촉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10-18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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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여성의 적은 여성?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는 오은미(가명·27) 씨는 지난여름 여자 과장 두 명의 ‘살벌한 최후’를 목격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 중 한 명이 해외유학을 떠나면서 다른 한 명에 대한 험담을 가득 담은 장문의 e메일을 부하직원들에게 ‘단체 발송’했기 때문이다. “둘이 워낙 사이가 나쁘니까 후배 여직원들도 자연스럽게 두 패거리로 갈렸어요. 다른 패거리하고는 밥도 같이 안 먹을 정도로 우스운 분위기였죠.”

    올봄 결혼한 한 시중은행의 대리 김정미(가명·30) 씨는 얼마 전 기혼의 여자 선배에게 “살림하면서 회사 다니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여자 선배가 주변 남자 직원들에게 다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아직 애도 없으면서 결혼했다고 징징댄다는 게 이해 안 된다”라고 말한 것. “선배는 아이 둘에 시부모까지 모시고 사는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같은 여자로서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말이죠.”

    지난해 대기업에 취직한 차승현(가명·26) 씨는 몇몇 직장선배에게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다”는 말을 했다가 같은 부서 여자 과장에게 불려가 호되게 혼이 났다. 과장은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 해줬는데 부서를 옮기고 싶어하느냐.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라며 차 씨를 다그쳤다. “과장님이 이것저것 세심하게 신경 써준 것은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왜 배신으로 치부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차 씨는 지금도 억울한 기분이다.

    아줌마 선배·노처녀 상사 ‘제1호 기피대상’

    여성 취업자 1000만 명 시대가 가까워졌다. 10월4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여성 취업자는 966만 명. 특히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3년 61.49%에서 2006년 8월 64%로 높아졌다.



    직장 여성이 크게 늘면서 기업 내 여직원들 간의 갈등 문제가 새로운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료 여직원들 사이, 그리고 여자 선후배 사이의 사내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것. 9월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여성 직장인 145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 이상(86.5%)이 ‘직장 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에 공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컨설팅업체 인사이트그룹의 오승훈 대표는 “과거에는 공장 여직원 사이의 갈등 해소방안에 대한 의뢰가 대부분이었는데, 5년 전부터는 대졸 여직원 사이의 갈등 해소방안에 대한 기업들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가 서울 소재 기업에서 일하는 대졸 여성 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여자 대 여자 갈등의 실체를 짐작케 한다(표 참조). 직장 여성들은 여자 상사는 워커홀릭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여자이지만 여자 상사보다는 남자 상사와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부하직원의 경우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편하다고 한다.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보다 여자 부하직원에게 좀더 까다롭게 구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는 여성도 상당수다.

    직장 여성 간의 갈등은 많은 부분 경쟁의식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은’ 직장 내 분위기 탓에 여성은 다른 여성을 경쟁 상대로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모(28·여) 씨는 ‘홍일점’이던 여과장이 퍼뜨린 헛소문에 대해 귀띔했다. “남자 임원 한 분이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다른 여성을 과장으로 스카우트했어요. 그 임원은 자기가 스카우트한 인력이니까 살갑게 챙겨줬죠. 사내에서 ‘둘이 사귀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다들 옛날에 홍일점이었던 여과장이 퍼뜨린 소문이라고 여겼어요.”

    직장 여성의 적은 여성?

    취업 면접 강의를 듣는 여대생들.

    경력 4년차의 신모(30·여) 씨는 “과·부장급 여자 선배들끼리 인간적으로 친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서로를 깎아내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신 씨는 그 이유에 대해 회사 내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진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간관리자까지 진급한 여직원들이 꽤 되니까 조만간 최초의 여상무가 탄생할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명 정도만 그런 ‘은혜’를 입겠죠. 그러니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해요.”

    요즘 신세대 직장 여성들은 “남자보다 두 배는 열심히 일해야 성공한다”고 강조하는 ‘전사’모드의 여선배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선배들이야 산전수전 다 겪고 그 자리에 올랐겠지만, 저희는 입사동기 중 절반이 여자거든요. 제가 임원으로 승진할 때가 되면 성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IT 업체에서 일하는 강모(28·여) 씨의 말이다.

    “승진 기회 적은 것이 구조적 원인”

    ‘아줌마 선배’ ‘노처녀 상사’ 또한 직장 여성들의 기피대상이다. 아줌마 선배는 가정사를 핑계로 일을 후배에게 미루고, 노처녀 상사는 퇴근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심모(28·여) 씨는 “아들 생일잔치 때문에 자기 업무인데도 출장을 못 간다고 버티는 여자 선배 때문에 누가 대신 출장 갈 것인지를 놓고 긴급회의가 소집되기도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안모(29·여) 씨는 “부장이 38세 노처녀인데, 그다지 바쁜 업무가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야근을 유도하기 위해 종종 오후 5시30분에 피자를 배달시킨다”고 했다. 안 씨는 “그 부장이 ‘자기 오늘 또 데이트 있는 거야?’’ 그거 남자친구한테 선물받은 거야?’ 등등을 물어올 때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직장 여성의 적은 여성?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적으로 예민하다는 특성은 여직원들 간 갈등의 한 원인이다. 아데코 한국지사장 등 지난 16년간 헤드헌터로 활약해온 인터링크서치 최정아 대표는 “여성들은 업무상 만난 사이라도 인간적으로 통하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싫다는 느낌이 들면 그런 감정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편 오승훈 대표는 “여직원 간 갈등을 여성의 특성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오해”라며 “아직까지는 직장 내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남성에 비해 적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여직원 간 갈등의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주변 부서’에 근무하는 여자 선배가 ‘핵심 부서’에 근무하는 여자 후배를 깎아내리거나 질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는 여성의 경우 부서 이동, 직무 변경의 기회가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직장 내 여직원끼리의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서울시 및 청와대 비서관, KT 상무 등을 역임하고 현재 미니게이트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차영 씨는 “상대가 특히 여성이라면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나로 인해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최정아 대표는 “중간관리자까지는 여성끼리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임원으로 승진하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닌 남성, 특히 사내 정치에 능숙한 남성이다”라며 그에 대한 대비를 주문한다.

    오 대표는 직장 내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것 △해결되지 않는 것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구분한 뒤 “호불호(好不好)의 감정은 해결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도저히 함께 근무할 수 없을 정도라면 사표를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인사책임자가 다른 부서에 근무하게 하는 등 조정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 여성의 적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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