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6

2006.10.17

달랑 두 줄? 우리 아이들 ‘편지 문맹’

편지 제대로 쓰는 초등학생 찾기 어려워 … 엽서가 뭔지 모르는 학생도 부지기수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10-1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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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랑 두 줄? 우리 아이들 ‘편지 문맹’
    “안녕하세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심○○입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잘 못 쓰겠어요. 편지 쓰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 빨리!”

    “친구에게 편지 쓰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편지는 사교적인 글이기 때문에 처음 ‘쫛쫛에게’로 시작해서 글 본문에는 안부 인사와 왜 편지글을 쓰는지 이유와 목적, 그 외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쓰고 마지막으로 끝인사와 쓴 날짜, 누가 썼는지를 쓰면 됩니다. 친구에게 쓰는 편지를 선생님이 봐도 괜찮다면 한번 글을 올려주세요. 선생님이 보고 평가해줄게요.”

    9월12~13일 한 학습 관련 사이트에 오른 학생과 교사 간 상담 내용이다.

    편지를 쓸 줄 모른다? 이것이 비단 심 군에게만 해당하는 ‘드문 현상’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편지 쓰기에 관해 철저히 ‘문외한’이다. “영악하다”는 말까지 종종 듣는 그들로선 기막힌 아이러니다.

    디지털 시대 길게 쓰기 실종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편지를 써보라고 하면 ‘부모님께, 안녕하세요?’라고 두 줄만 달랑 쓰고 마는 애들이 한 학급 25명 중 4분의 1이나 됩니다. 편지글 형식을 제대로 갖춰 쓴 뒤 봉투에 주소를 쓰고 220원짜리 우표까지 직접 사서 붙여 편지를 보내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예요. 그렇지 않으면 애써 편지 쓰기를 가르쳐도 귓가로 흘려듣습니다.”

    34년간의 교직생활 내내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 교육을 실천해 ‘편지 대장’으로 불리는 주은희(53) 교사(충남 연기군 서면 봉암리 연봉초교)의 말이다.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주 교사는 “1학년이든 6학년이든 편지를 제대로 쓸 줄 아는 학생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고 털어놓는다.

    편지 쓰기가 초등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없는 것은 아니다. 국어 시간과 특별활동 시간, 재량활동 시간에 편지 쓰기 교육이 이뤄진다. 형식에 맞춰 편지글을 쓰는 것은 전 학년 시험에도 출제된다. 또한 말하기, 읽기, 쓰기 시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국어 수업에서 쓰기 시간의 4분의 1은 편지글 쓰기에 할애된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한 달에 한 시간 남짓이 고작이다.

    게다가 편지글 쓰기에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직접 우표를 사서 편지를 부치는 단계까지 가는 경우는 생활교육 차원에서 교사가 일부러 시키지 않는 한 매우 드물다. 말하자면, 단순한 편지글 쓰기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로 편지를 부쳐보는 일은 담임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과제물과 독후감까지도 편지글로 쓰게 한다는 주 교사는 “개인적으로 학부모들에게도 편지를 빠짐없이 쓴다. 예전 같으면 반 이상의 학부모가 답장을 보내왔는데, 지금은 세 분쯤 될까 말까 한 정도”라며 “맞벌이의 확산과 교사에 대한 거리감이 그 원인이 아닐까 짐작된다”고 했다.

    달랑 두 줄? 우리 아이들 ‘편지 문맹’
    사실 편지 쓰기는 일기 쓰기와 함께 초등학생의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편지를 쓰는 행위는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하고 글쓰기 능력과 자신의 주관에 대한 표현력을 길러준다. 더욱이 편지는 편지 이상의 감동을 준다.

    깊은 마음 드러내는 표현에 미숙

    그럼에도 일선 교육현장과 학부모들의 편지 쓰기 교육에 대한 관심 부족은 ‘디지털 혁명’으로 e메일과 휴대전화 SMS(문자메시지)에 친숙해진 세태 변화와 맞물려 ‘육필(肉筆) 편지 한 통 쓸 줄 모르는 미래의 주역들’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e메일과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지는 10년도 채 안 된다. 하지만 편지 쓰기에 대한 학생들의 무지(無知)는 상상을 넘는다.

    (사)한국편지가족(상자기사 참조) 박은주(56·대전 서원초교 교감) 회장은 “편지 쓰기 경진대회 때 참석해보면 참가 학생 중 일부, 그것도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우편번호 기입란에 뭘 써넣어야 하느냐, 전화번호를 쓰면 되느냐, 우편번호가 무엇이냐는 등 기막힌 질문을 하는 경우마저 있다”며 “‘선생님께’라고 하는 대신 ‘선생님 앞’이라고 쓰는 학생들을 보면 편지 쓰기가 습관화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구나라는 의무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엽서가 뭔지 모르는 학생도 많다. 보내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학교에서도 ‘엽서라는 게 있다’는 이론적 지식은 가르치지만, 손으로 만져보고 엽서를 직접 써보게 하는 체험교육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라지는 ‘편지 문화’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우정사업본부가 1년에 두 차례 개최하는 국민 편지 쓰기 대회다.

    10월에 열리는 ‘가을맞이 편지쓰기 대회’는 만 18세 이상 성인이 참가대상이지만, 5월에 개최되는 ‘보은의 달 편지쓰기 대회’는 초·중·고생도 참여할 수 있다.

    올해 5월 ‘보은의 달 편지쓰기 대회’ 참가인원은 5만여 명. 이 중 4만여 명이 초·중·고생이었다. 편지글을 쓰고 봉투까지 쓴 다음 우편으로 응모하면 심사 후 입상작을 결정한 뒤 응모자가 기재한 수취인의 주소로 편지를 배달해주는 행사다.

    편지 쓰기 대회를 홍보하고 있는 우정사업본부 산하 우정사업진흥회 윤현복 편지쓰기 담당은 “요즘 학생들이 간결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채팅에 익숙해서인지, 응모한 편지글을 보면 어리광을 부리거나 표피적인 내용이 많고, 자신의 깊은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방식에 미숙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가을은 정녕 ‘편지의 계절’일까. 윤 담당은 “매년 10월에 열리는 ‘가을맞이 편지쓰기 대회’의 참가자격을 성인으로 제한한 이유는 이 시기가 학년 말로 접어드는 때여서 학생들의 참가를 유도하기 힘든 때문”이라고 밝힌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노래 ‘가을 편지’의 가사는 이제 바뀌어야 할 듯하다. 쓰는 사람도, 그래서 받는 기쁨도 점점 줄어만 가는 편지의 숙명이 추풍(秋風)에 흩날리는 낙엽 같기만 하니….

    한국편지가족은

    ‘매월 22일 편지 쓰는 날’ 정해 편지 쓰기 장려


    달랑 두 줄? 우리 아이들 ‘편지 문맹’
    1999년 발족한 ㈔한국편지가족(www.letterfamily.or.kr)은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하는 전국 규모 편지 쓰기 대회의 입상자 모임이다. 회원은 1000여 명. 전국에 8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편지 쓰기의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 때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무료로 ‘편지 쓰기 캠프’를 여는데, 올해의 경우 7월24~26일 우석대 수련원(전북)에서 200명이 편지 쓰기 강좌와 인성 지도, 효행 교육을 받았다.

    한국편지가족은 편지 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매월 22일을 ‘편지 쓰는 날’로 정했다. 22일을 택한 이유는 ‘둘이 사이좋게 편지를 써서 하나가 되자’는 의미라고 한다. 이밖에 1년에 한 번씩 회원들의 편지글을 모은 책 ‘편지로 여는 세상’도 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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