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달착지근한 된장이 맛있습니까?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9-21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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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착지근한 된장이 맛있습니까?
    개념이란 사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개념이 경우에 따라 전혀 엉뚱한 형식으로 정립되어, 단어가 가리키는 사물에 대해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된장’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메주로 간장을 담근 뒤에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라고 적혀 있다. ‘메주’는 “콩을 삶아서 찧은 다음 덩이를 지어서 띄워 말린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된장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콩으로 만든 그 무엇’이라는 개념을 가진다.

    그런데 식품에 대한 규격을 정해놓은 ‘식품공전’에 실린 된장의 정의는 다르다. “된장이라 함은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주원료로 하여 식염, 종국을 섞어 제국하고 발효 및 숙성시킨 것 또는 콩을 주원료로 하여 메주를 만들고 식염수에 담가 발효하고 여액을 분리하여 가공한 것을 말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를 다시 두 가지 식품유형으로 구분해서 ‘한식 된장’은 “한식 메주에 식염수를 가해 발효한 뒤 여액을 분리하거나 그대로 가공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며, ‘된장’은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주원료로 하여 제국한 뒤 식염을 혼합하여 발효 및 숙성시킨 것 또는 메주를 식염수에 담가 발효하고 여액을 분리해 가공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우리 머릿속에 있는 된장이라는 개념에 대해 ‘식품공전’은 ‘한식 된장’이라고 국한시키고 있는 데 비해 ‘된장’은 의외로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콩에서 콩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 등으로 만들어진 것도 포함하고 있다.

    콩 외 쌀, 보리 등 다른 재료 들어가 진짜 된장 밀어내



    달착지근한 된장이 맛있습니까?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씨와 그의 장독들.

    자, 그럼 지금 주방으로 가서 된장통에 적혀 있는 원료를 한번 살펴보자. 대부분 콩 이외에 여러 곡물이 표기되어 있을 텐데, 그중 제일 많은 것이 밀이나 탈지대두다. 이번에는 집안 식구들에게 “된장을 무엇으로 만드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질문해보자. “바보 아냐?”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나처럼 음식 칼럼을 쓰는 이진랑 씨가 두 해 전 전국의 ‘한식 된장’ 제조자를 취재한 뒤 ‘된장의 달인들’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그의 취재 뒷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그가 최근 들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다들 힘들다고 난리예요. 비싼 국산 콩 사다가 메주 쑤고 수십 단지 담가 봤자 팔리질 않으니까. 식품 대기업들이 된장 전쟁이라며 덤 마케팅이다 뭐다 해서 막 뿌려대는 바람에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고 있어요. 달착지근한 공장 된장에 한번 맛들이면 한식 된장은 자연히 멀어지고…. 이러다 진짜 된장은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에요.”

    ‘식품공전’에 나와 있는 된장의 정의를 누가 내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콩 이외의 다른 재료로 만드는 된장이 돈이 되다보니 그 돈을 벌려는 사업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고 짐작할 뿐이다(된장에 들어가는 ‘밀 가공품’의 가격이 1kg에 200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국산 콩 1kg은 요즘 도매가로 2500원 정도 한다).

    내가 된장의 개념을 정립한다면 이렇게 하겠다. “된장 : 콩으로 만든 메주에 식염수를 가해 발효한 뒤 여액을 분리하거나 그대로 가공한 것을 말한다.” “된장 맛 소스 : 콩 이외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원료로 하여 제국한 뒤 식염을 혼합해 발효 및 숙성시킨 것을 말한다.”

    몇 년 전 김치의 세계식품규격(Codex)을 놓고 일본과 한판 힘겨루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김치의 제조법에서 젖산이니 구연산이니 하는 것을 첨가해도 된다고 합의해 ‘순수 발효식품’으로서의 김치에 흠집을 냈다. 된장도 세계식품규격을 정해야 할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식품공전’을 앞에 놓고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된장은 콩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나? 일본 미소와는 뭐가 다르지?”

    며칠 전 이진랑 씨와 ‘한식 메주’를 만드는 고려전통식품(www. ksdo.co.kr, 061-383-6209)의 기순도 씨를 찾아뵙고 된장의 앞날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 그 걱정의 시초에 ‘식품공전’이 있지 않나 싶어 식품업계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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