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화려한 패션계, 피말리는 생존경쟁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9-21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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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패션계, 피말리는 생존경쟁

    이탈리아 브랜드 ‘아프레 미디’ 부스에서 한 여성이 핸드백을 선보이고 있다

    가을을 맞은 파리는 여름만큼 분주하다. 각종 전시회 및 엑스포가 끊이지 않고 열리기 때문이다. 9월 첫째 주부터 나란히 시작된 패션전시회 ‘파리 프레타포르테 살롱’과 인테리어박람회 ‘메종·오브제’를 비롯, 모토쇼 등 국제적인 대형 행사들이 줄지어 있다. 파리는 여름엔 관광객으로, 관광 비수기인 가을에는 각종 국제 행사로 주머니를 채우는 셈이다.

    파리 남쪽에 위치한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9월1일부터 4일까지 열린 ‘파리 프레타포르테 살롱’은 바이어와 브랜드 담당자 등이 참여하는 수주 전문 행사다. 전 세계에서 1000개 이상의 브랜드와 다양한 바이어들이 참여하다 보니 무작정 둘러보다간 몸살이 날 정도로 큰 규모.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여행용 가방을 끌며 작정하고 둘러보는 ‘프로’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전시회는 ‘아트모스피어’관을 메인으로, 4개 존으로 구분돼 패션의 향연을 펼쳤다. 개인적으로는 차세대 패션을 이끌어갈 젊은 디자이너들의 창의력과 스트리트 트렌드가 어우러지는 ‘후즈 넥스트’와 ‘프리미어 클라스’를 눈여겨봤다.

    화려한 패션계, 피말리는 생존경쟁

    ‘후즈 넥스트’와 ‘프리미어 클라스’에 참여한 브랜드들의 국적을 재미있게 표현한 게시물.

    이 전시관 내의 브랜드들은 각각 부스를 꾸며 상담 및 전시행사를 벌인다. ‘쥬시 쿠튀르’처럼 이름난 브랜드들은 부스 둘레에 높은 벽을 세워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디자인을 스케치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중국의 의류 공장 관계자들이 들어와서 독특한 디자인을 베껴 먼저 시장에 내놓는 바람에 동양인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심한 편이다.

    이곳에서 내년 봄여름에 시장에 나올 상품을 미리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단 남성복, 여성복에 공히 나타나는 슬림 팬츠의 인기는 계속될 듯하다. 데님은 물론 새틴 또는 오가닉 면 소재로 된, 몸에 착 달라붙는 스타일의 바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웬만큼 몸매가 되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군살을 빼기 위한 많은 이들의 눈물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



    캐주얼한 의상에서는 금속의 액세서리, 프린트 티셔츠 등으로 상징되는 로큰롤 스타들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링이 엿보였고, 여성용 원피스에서는 프릴·물방울 무늬 등을 이용한 로맨틱한 의상이 많이 눈에 띄었다. 여성들은 여전히 큰 사이즈의 가방을 들고 굽이 낮은 슈즈를 신게 될 것 같다. 알록달록하고 다소 유치하기도 한 패션 액세서리들도 인기를 이어갈 듯싶다.

    프레타포르테 살롱에 내년 봄여름 상품 벌써 등장

    이탈리아 밀라노의 액세서리 브랜드 ‘아프레 미디’는 앤티크 단추를 이용한 반지, 스시 모양 브로치, 발레리나를 모티브로 한 목걸이 등으로 시선을 끌었다. 또 이미 청담동 일대에서 인기를 누렸던 구두 브랜드 ‘슈콤마보니’가 처음으로 참가, 원색의 에나멜 슈즈 등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끌었다.

    올해는 특히 한국 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40여 명의 외국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모티브로 한 원단으로 만든 각종 패션 아이템으로 전시관 한가운데서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신인들이 많이 참가하는 ‘후즈 넥스트’관의 경우는 디자이너가 나와 부스를 지키는 경우가 흔하다. 본인이 디자이너이자 매장 운영자인 경우도 많다. 이들의 부스를 둘러보면서 비장하기도 하고 절박하기도 한 눈빛을 느꼈다. 파리라는 패션 메카에서 국제적인 브랜드들과 경쟁하기 위해 승부수를 둔 이들에게는 이곳에서의 성공 여부가 앞으로의 진로를 점쳐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파리와 패션은 화려하다. 하지만 승부는 냉정하다. 이곳에 두 번째 참가한다는 이탈리아의 한 신인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파리는 4월 같다. 아름답지만 잔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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