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슬슬 무르익는 ‘적과의 동침’

한나라당-민주당 공조 막후 밀사 활동 … 정계개편 경우의 수 대비 적극 모색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9-21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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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무르익는 ‘적과의 동침’

    9월11일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한나라당 내 의원 모임인 ‘국민생각’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9월11일 한나라당의 중도 성향 의원 모임인 ‘국민생각’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이 옳으면 같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커밍아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조하는 이른바 한-민 공조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한나라당이 적극적이다. 민주당을 뒤에서 감싸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및 호남정서와의 접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2007년 대선 비책 및 승리방정식과 관련해 “호남에서의 두 자릿수 득표율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강재섭 대표는 과거 어느 대표보다 ‘광주’에 관심을 보인다. 광주지역 사업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예산을 따주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조만간 전남의 한 폐교를 매입, 당 연수원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모두가 서진(西進)정책의 일환이다.

    한나라당의 ‘밀사’들이 민주당과 동교동을 향해 각개격파식으로 접근하는 흔적도 포착된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동선(動線)이 있다. 한나라당 고위관계자와 민주당 고위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가진 회동이 바로 그것이다. 20여 년 넘게 정치권에서 얼굴을 맞댄 두 인사의 밀담은 한-민 공조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후문이다.

    양당 관계자 가능성 부인하지 않아



    최근 논의된 문제는 권력체계 변화에 대한 양당의 입장. 민주당 측은 개헌을 선호한다는 후문이다.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모든 계파가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정치에 녹아 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약속한 지분을 요구하는 일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측은 권력체계의 변화를 통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한다. 민주당 측이 선호하는 권력체계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경우에 따라 내각제로의 전환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 문제를 2007년 대선 전에 매듭짓고 싶어하는 눈치다. 가급적 명문화해 ‘국민들과의 약속’으로 만들고자 한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내각제를 고리로 다른 정당 및 정파의 지지를 유도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집권 후 개헌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의 밀실흥정과 실패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반면교사가 된다.

    반면 한나라당 측은 이런 절차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 입장이다. 개헌에 필요한 물적 여건과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 이런 한계를 전제한 한나라당은 먼저 한-민 공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이 문제를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야만 국민 및 여당의 저항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양당의 인식 차가 당장 좁혀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회동을 중단하는 일도 없을 듯하다. 당장 답을 얻자는 회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말 정국은 정계개편 등으로 인해 시야가 제로 상태에 가깝다. 양당은 이 정국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금 그 낭패를 피하기 위한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여의도 인근 밤섬을 돌고 도는 한강유람선처럼 한-민 공조도 연신 간 길을 오간다.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한 양당의 밀사들은 요즘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여의도 주변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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