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마마보이와 마마걸 “결혼은 엄마 하기 나름”

만남에서 혼수 결정까지 치맛바람 절대권력 … 희생인가 월권인가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9-21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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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마보이와 마마걸 “결혼은 엄마 하기 나름”
    명문가 자제들이 웨딩드레스를 맞추는 곳으로 유명한 서울의 한 웨딩부티크. 쌍춘년 마지막 결혼 대목이라 거의 매일 예약이 있지만, 이날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았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맞춘 신랑, 신부가 결혼을 일주일 남기고 파혼을 결정해 사주와 함으로 주고받았던 예물을 부티크 대표의 입회 아래 이곳에서 ‘환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먼저 신랑 어머니와 운전기사가 도착해 신부에게 사주었던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와 5부 다이아몬드 귀고리, 진주 보석세트, 명품 핸드백과 현금 200만원, 코트 등을 챙겨갔다. 신랑 어머니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리가 주례를 ‘높은 분’께 부탁했기 때문에 아들 장래를 위해 파혼만은 피하려 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1시간 후 신부 어머니와 신부가 나타났다. 모녀는 2200만원짜리 시어머니 밍크코트, 롤렉스 남녀 시계, 시어머니 악어핸드백, 시누이 백, 수표 3000만원을 일일이 확인한 뒤 차에 실었다. 신혼집에 넣은 1억원가량의 가구와 전자제품도 환불하는 중이라고 했다. 신부 어머니는 “우리 딸이 미국 최고 명문대를 나와 디자이너로 돈도 잘 번다. 최고 신붓감이다. 신랑 월급이 우리 딸 용돈만큼도 안 되는데, 엄마 치마폭에 싸여 나오질 못한다. 예물도 후지다. 요즘은 이혼이 흠도 아닌데, 파혼은 열 번이라도 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비신부도 2년 동안 열렬하게 연애했다는 상대와 바로 어제 파혼한 사람 같지 않게 담담했다.

    “아무래도 엄마가 세상 물정에 밝으시니까요. 지금까지 엄마 말대로 해서 후회한 적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성격 차이와 집안 차이가 많이 나서, 잘 헤어진 거 같아요.”

    모녀는 기분 풀러 쇼핑이나 가야겠다며 부티크를 나갔다. 양가의 약혼과 파혼을 지켜본 부티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반대로 결혼 직전 파혼 사례도

    “오랫동안 혼사를 봐왔지만, 요즘은 특히 젊은이들 결혼에 양쪽 어머니들의 간섭이 심하다. 예물은 물론이고 웨딩드레스에서 예식 순서, 신혼여행지, 신혼집 인테리어까지 모두 어머니가 지시하고 요구한다. 그래서 30대 중반의 신랑, 신부들조차도 어머니의 결정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결혼정보업체에도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오거나 아예 어머니가 와서 대신 등록을 하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서 자식을 ‘소황제’로 떠받드는 부모들이 아들딸 사진을 들고 길거리를 헤맨다는 얘기가 해외토픽만이 아닌 것이다.

    22살 음대 학부생인 딸의 배필을 찾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는 이모 씨는 “주변 사람과 결혼정보회사 등을 통해 이미 분석을 끝냈다. 명문가에선 여자 혼자 외국유학 생활을 하면서 석사, 박사 학위 받은 일을 쳐주지 않더라. 험한 사회생활 하게 해 딸 고생시킬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시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딸의 의사는 어떤지 묻자 “딸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말한다.

    결혼정보업체 커플매니저들은 “요즘은 부모가 반대하면 대부분 신랑, 신부들이 결혼을 포기한다”고 말한다. 결혼고시의 가장 높은 고비는 배우자의 부모인 셈이다.

    마마보이와 마마걸 “결혼은 엄마 하기 나름”

    조기유학에서 취직까지 ‘희생적’으로 자식을 키운 한국의 어머니들은 결혼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경험이 있는 김희영(29) 씨는 “세 번인가 데이트를 하고 들어온 날, 남자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내게 얼마나 해올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불쾌하기도 했고, 남자가 바보처럼 보였다. 이후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서는 맞선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결혼고시에 나선 Y세대의 부모는 한국의 첫 번째 베이비붐 세대다. 대부분 전쟁 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이루었다. 그중 일부는 80~90년대 강남 부동산 붐을 통해 일확천금을 벌었고 한국의 상류사회를 형성했다. 이들은 비록 자신은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지만, 자식은 조기교육과 과외를 통해 대학과 외국 유학까지 보냈다는 점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다.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목고에 입학한 아이들의 내신이 불리해지자 시위를 벌이고 자퇴를 시켰던 부모들이 결혼고시의 출발선에 서서 다시 한번 이를 악무는 것이다. 이들은 경험적으로 자신의 처세가 옳다고 확신하고, ‘내 아이는 다르다’는 광고 카피에 절대 공감한다.

    “아유, 속상하고 힘들어요. 우리 딸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내가 운전해서 학교, 학원 데리고 다녔어요. 매일 차 안에서 김밥 먹고, 학원 등록시키려고 학기 초마다 학원 앞에서 밤새워서 번호표 받아왔죠. 전국의 유명하다는 절, 점쟁이는 다 찾아다녔고요. 엄마로서 마지막 고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집 보내는 게 입시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매일 선 자리 받아 옷 사 입히고 마사지, 메이크업 시켜서 맞선 자리에 내보내요. 돈도 학생 때보다 더 들어가요. 그런데 도대체 보람이 있어야죠. 과외 시키면 성적은 올라가던데….”

    “어떻게 키웠는데 … 결혼이 입시보다 더 어려워요”

    마마보이와 마마걸 “결혼은 엄마 하기 나름”

    ‘가문의 위기’ 중 한 장면.

    27세 딸을 둔 주부 오모 씨의 말이다. 오 씨 또래의 어머니들은 평론가들로부터 ‘건국 이래 최대의 자식 결혼 조작사건’으로 맹비난을 받은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열혈 마니아들이다. ‘하늘이시여’뿐 아니라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극성스럽고 억척스럽게 가정을 지키고, 자식의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해 횡포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른다. 어머니들은 이런 캐릭터를 보면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오 씨 역시 ‘희생적’이고 열성적인 자식 뒷바라지를 통해 대학, 대학원 입시와 바늘구멍 취업에서 자식을 합격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제 결혼고시에도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에 가깝다. 어머니들은 자기 희생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으며 봉건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식의 자유로운 연애에 대해서는 지극히 ‘진보적’인 이중성을 보인다.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여자들도 전문직 갖고, 연애도 많이 해봐야죠. 동거도 하고, 이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 출세시키고 자식을 좋은 대학과 직장, 혼처에 보내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얻으려는 어머니의 의식과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여성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정보가 한 몸 안에서 섞여 독특한 한국의 어머니상 -10년 전쯤 ‘아줌마’ 담론을 처음 낳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식민 지배와 압축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가 ‘한국적 젠더’를 생산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어머니의 (가정 내) 지위가 높아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일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다는 점이다. 그가 “우리의 교육 문제는 자녀를 통해서만 여성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한국사회의 암묵적 합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결국 젠더 문제”라고 지적했듯, 결혼고시의 이상(異常) 열풍은 어머니와 여성의 분리를 거부한 왜곡된 가정구조로부터 뜨겁게 불어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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