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짝 잘 잡아 팔자 고치자! 청춘남녀 결혼고시 도전기

직업·재력·학벌 등 기대 수준 ‘한도 없이’ 영어연수·성형 등 자기 투자 ‘아낌없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9-21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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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잘 잡아 팔자 고치자! 청춘남녀 결혼고시 도전기
    “맞선 한 번 보는 데 40만원 정도 내는 셈인데, 아무 전략 없이 나가서 성과 없이 돌아오면 아깝고 비합리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정보회사에 제가 원하는 조건을 꼼꼼하게 얘기하고, 패션이나 연애에 관한 책도 읽어요. 인터넷으로 데이트 코스, 드라이브 코스도 다 찾아보고요. 요즘 차 없으면 결혼은커녕 애프터도 못해요. 고시공부 다시 하는 기분이라니까요.”(결혼정보회사 가입 공무원 남성·31)

    전략과 공부 필수 … 결혼정보회사 만남의 장 ‘북적’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 ‘누구는 강남 60평에 사는데 누구는 전세 산다’ 같은 얘기를 하다 보면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이 나와요. 당장 전세 사는 친구가 결혼을 후회하고 있어요.”(대학 강사 여성·30)

    “회원님께 조심스럽게 성형수술을 권유했는데 견적이 1000만원 나왔다더군요. 결혼 잘하면 금세 본전 뽑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수술하셨어요. 지금 회원님은 훨씬 좋은 상대를 만나고 계십니다.”(결혼정보회사 매니저)

    결혼이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보다 더 어려운 국민적 고시(考試)가 됐다. ‘화려한 싱글’은 어쩔 수 없이 징용된 ‘솔로 부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게 대부분 싱글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요즘 결혼에는 ‘전략’과 공부가 필요하고, ‘정답’과 ‘성적’에 따라 ‘등수’도 나온다.



    ‘3년 취업고시 보고, 그때부터 자리잡고 집 마련하는 데 3년 잡아 결혼은 30대 중반으로 미뤘다’ ‘난 자격 미달이라 아예 결혼 포기했다’는 싱글들의 말은(인터넷 다음 ‘나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싶다’ 토론) 요즘 취업시험보다 더 절실하고 어려운 것이 ‘결혼고시’임을 잘 보여준다.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열린 한 결혼정보회사 ‘노블 클럽’의 회원 파티. 의사, 교수, 대기업 연구원 등 전문직 종사자인 남녀 회원 각각 30명이 참석해 식사와 와인 파티를 즐겼다. 한 테이블에 남녀가 각각 5명씩 앉게 되므로 여섯 번을 반복해 “안녕하세요. 저는요…”란 말로 자신을 소개한다. 초면인 남녀의 서먹한 맞선 자리가 아니라 활기찬 면접장 분위기다.

    겸손하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보여줄 것. 남자 회원은 단정한 정장 차림, 여자 회원은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에 원피스가 ‘정답’이라는 게 행사 매니저의 조언이다. 활발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금물. 그보단 신중하고 조신하게 보이는 편이 낫다. 이것이 결혼고시 첫인상 면접시험에서 합격하는 비결이란다.

    쌍춘년 대목을 맞아 결혼정보회사에서 웨딩컨설팅업체까지 결혼산업은 날로 커지고, 매스컴에서도 날마다 결혼 관련 정보를 내놓지만, 정작 결혼적령기에 놓인 싱글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결혼할 상대가 없다!’

    이건 정확히 말하면 ‘내 수준에 맞는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는 결혼 상대의 조건에서 부동의 1위로 여전히 ‘성격’이 오르지만,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장현정 커플매니저는 “성격은 기본”이라고 잘라 말한다. 또, 미팅 행사장에서 만난 한 여성은 “결혼할 때가 되면 성격은 다 좋아진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투자 없인 성과 없다 … 결혼은 ‘婚테크’

    짝 잘 잡아 팔자 고치자! 청춘남녀 결혼고시 도전기
    그렇다면 ‘결혼 상대가 없다’는 말은 곧 직업과 경제력을 써넣는 서류 전형과 외모를 평가하는 면접에서 ‘수준에 맞는’ 결혼 상대자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한 미혼 여성은 “나도 전문직에서 일하고 ‘열쇠 한 개’ 정도는 해갈 생각이라 의사나 판검사하고만 맞선을 본다. 그런데도 남자 쪽에선 노골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결혼적령기에 놓인 이들은 1972~82년에 태어난 이른바 Y세대. 이들은 80년대 이후 물질적 풍요를 맛보았고, 88올림픽 이후 개방화에 힘입어 감각적 세련을 배웠으며, 치열한 대학 입시에 합격한 것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탈정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사회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부모 세대처럼 전세방에서 숟가락만 갖고 시작한다는 건 꿈도 못 꿔요. 구질구질하게 결혼하느니 차라리 싱글이 낫다는 거죠. 싱글 친구들 중에 ‘독신주의’를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우연희 씨·31)

    결혼 뒤에 경력과 경제력을 쌓는 것은 원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으므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키워 더 좋은 상대에 도전한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결혼을 서슴없이 ‘혼(婚)테크’라 부르는 Y세대는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영어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땄던 것처럼, ‘결혼고시’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국가고시를 보고 성형수술을 받으며 연애 기술을 공부한다. 싱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 ‘32세, 남편을 찾아라-하버드 MBA식 결혼전략’인 것을 보면 ‘결혼=고시’임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직장생활 5년차인 조영희 씨는 “양쪽 다 두세 번쯤 ‘결혼 재수’를 해서 감정적으로 성숙한 편이 낫다. 그래서 연애전략서를 많이 참고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현재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김모(31) 씨는 “처음엔 내가 결혼 상품이 되는 듯해 주저했지만, 과 동기들 중 4명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결혼에 성공한 것을 보고서 최근 등록했다. 한 번 파티에 나갔는데 커플 매칭이 됐다. 한 번 파티에 2~3명 정도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택 기준은 외모”라며 “이번에 만난 상대와 데이트를 하더라도 계속 소개를 받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심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남성들이 직장과 경제력을 갖추고 연애 기술까지 갈고닦아 30대 초~중반에 결혼 고시장에 들어서면, 최소 4~8세 연하의 여성을 원한다고 한다. 매스컴을 통해 남성 재벌이나 CEO, 남성 연예인들이 12살 아래 ‘띠동갑’과 많이 결혼한다고 알려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매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부유한 집안에 대학원, 유학, 직장 경력 등을 쌓고 결혼고시에 나선 30대 여성들 역시 1~2세 연상이나 동갑, 혹은 연하 남성을 원한다는 것. 그 결과는? 34세의 전문직 싱글 여성이 “미혼남자의 씨가 말랐다”고 한탄하는 사태다.

    결혼시장에서도 구직자들에게 말하듯 ‘눈높이를 낮추라’거나 ‘처음엔 낮은 데서 시작하라’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 ‘그렇다’는 게 전문 중매자들의 답이다.

    짝 잘 잡아 팔자 고치자! 청춘남녀 결혼고시 도전기

    한 결혼정보업체의 회원 파티.

    “저희는 ‘한 가지 목표’만 세우라고 조언해요. 경제력에 외모, 궁합까지 맞기를 바란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다들 그런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매칭’이 어려워지는 추세거든요.”(듀오 커플매니저 장현정)

    사법시험 합격자들 여전히 최상의 프리미엄

    ‘결혼고시’에서 가장 높은 프리미엄은 전문성과 안정성을 갖춘 사법시험 합격자들. 상류층 전문 중매자들과 결혼정보회사가 은밀히 별도로 관리하는 그룹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중매 제의를 받아 ‘법조계’ 집안의 사위로 들어간 한 변호사는 “중매료에서 혼사 비용, 강남 초고층 아파트의 신혼집까지 모두 처가에서 부담했다. 중매쟁이는 내가 데이트 한 번 할 때마다 신부 측에서 돈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계층 이동은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계산을 동기들도 내심 하고 있다. 학비가 비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 그야말로 상류사회 안에서만 혼맥이 형성될 것”이라는 게 그의 부연 설명이다.

    법조계 다음이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교사 등 공무원이다. 특히 사회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여가시간=돈’으로 보는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공무원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요즘 우스갯소리 중 신붓감 1등은 ‘예쁜 초등학교 교사’, 2등은 ‘안 예쁜 초등학교 교사’, 3위는 ‘이혼한 초등학교 교사’, 4위가 ‘애 있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 교수는 “제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얘기 속에서 그들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백만장자도, 일에서의 성취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누려온 안정된 삶을 연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결혼에 대한 전근대적 가치와 세계화한 사회의 충돌에서 오는 혼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최근 개봉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이르는 일련의 영화들은 결혼과 사랑이 분명 다른 차원임을 보여준다. 그녀/ 그는 양심의 가책 없이 배우자와 애인을 구분하고, 시간을 배당한다.

    울리히 벡 등 사회학자들은 “결혼이라는 전통적 개념과 현실을 연관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요즘 어떤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도 결혼의 해체까지를 장담하지는 않는다. 사회 전반에 퍼진 ‘보살핌의 위기’ 속에서 이혼율만큼 재혼율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혼이 모호한 개념과 냉철한 현실 사이를 떠도는 동안, 완벽한 결혼에 대한 ‘나’의 욕망과 환상은 점점 더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결혼고시’가 등장하고, 국제결혼이 급증하며, 결혼의 이미지는 화려해지고, 웨딩 산업은 번창한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당신에게 결혼은 사랑인가, 계약인가, 또 하나의 직장인가.

    결혼고시생들의 의식

    남성은 외모, 여성은 경제력 ‘중시’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1999년부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으로 남자는 1위 성격, 2위 외모로 순위 변동이 없는 가운데 가정환경과 경제력이 3, 4위를 번갈아 차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의 경우는 성격이 줄곧 1위를 고수하다가 2002년 경제력(직업)이 1위(31.2%)로 올라선 후 성격(31%)과 경제력이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번갈아 차지하고 있다. 또 2002년 처음으로 여성 배우자의 학력이 3위(19.5%)에 올라 4위 경제력(11.1%)보다 중요한 조건이 됐다.

    2005년 20세 이상 미혼남녀 2296명을 대상으로 이상적 배우자 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은 교사(52.8%), 공무원(33.4%), 일반 사무직(28%)을 선호했으며, 여성은 공무원(42.4%), 교사(22.4%), 금융직(20.5%)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교사의 높은 인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조사담당자의 분석이다.

    또 남성이 원하는 아내의 연소득은 2590만원이고, 여성이 원하는 남편의 연소득은 3720만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은 남자 2%, 여자 6.1%로 나타났다.

    한편 2004년 7월 전국의 20, 30대 남녀 1000명을 조사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2030 의식조사에 따르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5%를 차지했고, 그 이유로 남자는 ‘돈이 없어서’, 여자는 ‘자기계발의 장애’를 들었다. 결혼하면 가장 걱정되는 점으로는 남자 51.5%가 경제적 부담을, 여자 33.8%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꼽았다.

    결혼 비용은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대 도시 평균 2000년 7845만원에서 2004년 1억3498만원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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