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용산기지 운명, 중앙정부 입맛대로 안 된다

  •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장

    입력2006-09-11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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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기지 운명, 중앙정부 입맛대로 안 된다
    용산기지 조성 특별법에 의거해 중앙정부가 기지의 상당 부분을 허물고 대규모 상업업무단지를 짓겠다고 한다. 근대화와 함께 암울한 역사의 질곡에 빠졌던 이 땅의 많은 몫이 고층빌딩군으로 바뀐다면 과연 어떨까?

    용산기지를 보면서 자연으로의 환원, 환경 회복이라는 화두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용산기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런 불화가 생긴 것은 중앙정부가 어느 날 느닷없이, 그것도 일방적으로 ‘용산공원 특별법’을 만들어 이를 시행하겠다고 여론화한 탓이다. 이는 정부가 갑자기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선포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전통제권을 가져오겠다고 하니 야당과 보수세력이 저항하고, 용산공원 특별법을 선포하니 서울시와 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정책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로 나라 전체를 요동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법까지 만드는 중앙정부의 명분은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건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산기지 이전 비용이라면 비용 염출을 위한 여러 정책 대안을 검토하면서 사전에 국민적 중지를 모았어야 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에 중앙정부가 쏟아 붓는 국고 예산은 수십조원을 넘어선다. 그런데 유독 서울 시내 용산기지의 일부 부지를 매각해 이전 비용을 조달하겠다니,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국의 미군기지 7329만 평 중 43개 기지 5383만 평이 반환될 예정인데, 이전 비용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땅을 팔아 조달하는 경우는 없다.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주택공사의 보고서는 용산기지를 개발할 경우 최대 4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법의 의도대로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용산기지 일부를 일반에게 매각해 고밀도로 개발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고밀도 개발계획안은 주택공사 보고서에서도 드러나 있다. 게다가 특별법 제14조는 용도 지역을 현재의 자연녹지 지역에서 상업 지역으로 쉽게 바꿀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 일방 통행식 추진 재고 마땅

    30만 평에 상업시설 위주의 고밀도 개발이 이뤄진다면 시민들이 원하는 센트럴파크형의 공원 조성은 물 건너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용산기지 조성 예정 부지와 그 주변에 난개발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정부의 부동산 세금폭탄으로 고개를 숙였던 부동산값도 용산기지 일부 부지의 개발 바람을 타고 폭등함으로써 투기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대신 81만 평이 고스란히 공원으로 만들어지면 최대 수혜자는 서울 시민을 비롯한 전 국민이다. 역사에 짓눌렸던 용산기지가 민족공원으로 다시 태어남에 따라 국민의 자긍심 회복, 생태도시 조성이라는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즉, 수요자가 원하는 정책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에 부합될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을 남겨주는 일이다.

    외국군 주둔으로 불구가 됐던 소중한 공간이 우리 품으로 되돌아오는 마당에, 중앙정부가 상당 면적의 부지를 함부로 재단하도록 허용해선 안 된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참여정부의 통치이념과 주요 국책사업을 청와대와 여당의 입맛과 잣대로만 입안하고 처리하려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용산공원 조성 같은 국민 프로젝트는 중앙정부 단독으로 이루려는 욕심보다 지방정부와 머리를 맞대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중앙정부가 상전의식을 버리고, 지방정부와 함께 현명한 방향을 모색하고 서로 머리를 빌리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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