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김초롱이 모자를 쓰지 않는 이유

  • 입력2006-09-11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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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롱이 모자를 쓰지 않는 이유

    2006년 8월 CN캐나다오픈대회에서 경기 중인 김초롱.

    타이거 우즈가 쪼그리고 앉아 퍼팅라인을 읽을 때, TV 카메라가 두 손바닥으로 모자창을 오므려 라인를 쏘아보는 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 새까만 모자의 날렵한 흰색 나이키 로고가 휘감아 돌아 하늘로 솟구칠 듯 역동적이다.

    투어 프로들은 걸어다니는 광고판이다. 여제(女帝) 아니카 소렌스탐을 한번 보자.

    모자와 왼쪽 소매에 캘러웨이(callaway) 로고를, 왼쪽 가슴엔 골프 웨어 커터·벅(Cutter·Buck)을, 오른쪽 가슴엔 도요타 렉서스(Lexus)를 달고 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셔츠 목과 등엔 식품회사 크래프트 로고까지 붙였다. 그뿐인가, 골프화에도 우산에도 골프클럽 백에도 로고는 빠지지 않는다.

    투어 프로가 광고판 대가로 거둬들이는 스폰서 금액은 양쪽 다 입을 다물어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투어에서 벌어들이는 상금의 3배로 본다. 유명세에 가속도가 붙으면 스폰서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박세리 모자에 붙은 CJ 로고는 매년 30억원씩 챙기는 미다스의 손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모자를 안 쓰고, 또는 모자를 썼다 해도 아무 로고가 없는 투어 프로를 보게 된다.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선수는 JLPGA(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뛰던 이오순 프로였다.



    한때 우리나라 여자 골프계를 평정했던 이오순 프로가 일본으로 진출했을 때 구옥희의 대를 이어 일본 여자 골프계도 휩쓰리라 기대했는데 일본에서는 맥을 못 춰 시드권 확보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 리더보드에 이름을 올렸을 때 TV 카메라에 스치듯 잡힌 이오순 프로를 보면 가슴이 아팠다.

    LPGA 2승 경력 불구 아직 스폰서 못 잡아

    이 프로는 아예 모자를 쓰지 않았다. 스폰서가 붙지 않았으니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나오기 민망했을 것이다. 성적이 나쁘면 TV 카메라가 안 잡아주고, TV가 외면하니 스폰서가 안 붙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오순 프로는 몇 년 전 한 많은 일본 프로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버렸다.

    모자를 쓰지 않는 두 번째 선수는 이름도 예쁜 김초롱(크리스티나 김)이다. 그러나 김초롱은 이오순과 경우가 다르다. 성적이 나빠서 스폰서가 안 붙는다면 그것은 제 탓이다. 하지만 10년 넘도록 투어에 뛰면서도 우승 한 번 못하고 사라지는 프로가 수두룩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불과 3년 만에 2승이나 올린 김초롱이 아닌가!

    만난 사람을 단번에 십년지기로 만들고,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샴페인을 들고 기다리다 누가 우승하든 화끈하게 축하해주는 친화력에, 고함을 지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펄쩍 뛰며 요란한 쇼맨십으로 LPGA 흥행에 큰 몫을 하는 우리의 김초롱이 로고 없는 붉은 손수건만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라운드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 골퍼들이 따뜻한 나라로 전지훈련 가는 지난겨울 김초롱은 동토의 조국에서 몸을 만들었다지만, 스폰서를 찾기 위해 다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만약 김초롱이 예쁘지 않아서, 날씬하지 않아서 스폰서가 붙지 않는다면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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