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모나리자와 휴대전화의 만남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9-11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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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와 휴대전화의 만남

    8월29일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신제품 런칭 행사.

    프랑스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인 루브르박물관. 이곳에서 특정 기업 주최로 열린 이벤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모두 문을 닫는 화요일을 이용해 빈 전시공간과 카페, 그리고 유리로 만든 피라미드 아래의 널찍한 광장 등 박물관 곳곳에서 행사가 펼쳐졌다.

    과연 프랑스의 어떤 명품 브랜드가 이런 ‘특혜’를 누렸을까.

    삼성전자 루브르박물관서 신제품 런칭 행사

    8월29일 저녁 열린 이 행사를 주최한 것은 놀랍게도 삼성전자였다. 행사의 목적은 유럽 지역 딜러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신제품 런칭. 유물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을 빌려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300여 명의 참석자들이 가이드 동행 아래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등 주요 유물들을 둘러보는 그룹 투어도 했다.

    나 역시 지금껏 다섯 차례나 루브르박물관을 찾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모나리자 그림 바로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많은 외신기자들 역시 어떻게 루브르박물관을 대관하고, 게다가 이렇게 큰 행사까지 감행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특히 프랑스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곳에서 행사를 연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날 행사 초대장에도 모나리자의 윤곽을 이용한 이미지가 사용됐다. 휴대전화와 모나리자라…. 과거와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상반된 이미지만 떠오르니 아무리 봐도 묘한 조합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가격 경쟁보다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주력하는 이 회사의 글로벌 전략과 말 그대로 ‘명품’들이 머리를 맞댄 채 모여 있는 루브르박물관은 딱 맞아떨어진다. 모나리자의 작가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임을 상기해볼 때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라는 이미지도 연결할 수 있다.

    모나리자와 휴대전화의 만남
    기획 의도가 어쨌든 간에 결과적으로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휴대전화와 모나리자를 비롯한 수천 점의 명품들이 자리잡은 루브르박물관의 궁합을 맞춰보려 한 시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로 느껴졌다. 첨단 전자기기도 명품이 되려면 결국 이미지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종 첨단 전자기기들의 성공적인 브랜딩과 수요 증가로 인해 이 영역에서도 패션, 주류, 향수 등 전통적인 ‘럭셔리군(群)’에서와 마찬가지로 고급화, 명품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참여한 한정판 휴대전화 모델을 내놓은 사례도 많다. 최근 패션잡지에 실린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광고에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의 두 디자이너가 나란히 등장해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에르메스의 베스트셀러이자 브랜드 아이콘인 켈리백이 매장 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듯, 한국산 휴대전화는 파리의 휴대전화 매장에서 가장 시선을 많이 끄는 곳에 놓인다.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선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한국산 신제품 휴대전화를 갖는 것이 유행이다. 이것이 일종의 패션 코드로 여겨지기도 한다니, 파리엔 명품 휴대전화만 찾는 색다른 버전의 ‘된장녀’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국가별로 순위를 따진다면 여전히 프랑스는 패션, 화장품 등 대부분의 럭셔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각종 인터넷 서비스며 전자제품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런 기술이 가능하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한국산 IT(정보기술) 제품이 패션의 명품들처럼 이미지를 팔면서 ‘기술의 럭셔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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