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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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팝’ 안 하면 미술계에서 외계인?

최근 작가·전시 대부분 ‘팝’ 영향권 … 비판보다 유희가 더 자연스러운 ‘특징’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8-30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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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안 팝’ 안 하면 미술계에서 외계인?

    가장 ‘한국적인 팝’을 잘 보여주는 전시는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과 그 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다. 광화문이란 장소의 정치성, 올덴버그의 값비싼 설치미술과 한국에서 생산된 싸구려들로 작품을 만들어 세계적인 작가가 된 최정화, 이를 촬영하는 수많은 디카족 등. 최정화의 ‘연출전’ ‘믿거나 말거나’는 현재 한국의 시각 요소들을 총망라한 버라이어티쇼다. (왼쪽).<br>세오갤러리 2006 영 아티스트 선정작가 사성비의 ‘B 브랜드 5’(오른쪽).

    지금 한국 미술의 드레스코드는 ‘코리안 팝(Korean Pop)’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미술계의 유행이나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슈가 아니라, ‘팝’이 아니면 파티 내내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촌사람’ 대접을 받을 정도다.

    2005년 여름, 서울 평창동의 주요 3개 화랑에서 ‘팝팝팝’ ‘퍼니 퍼니4’ ‘팝 아이 콘’ 등 팝을 테마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마치 ‘팝’아트가 방학을 맞은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예술 장르처럼 보일 정도였다.

    ‘코리안 팝’ 안 하면 미술계에서 외계인?

    최정화가 캐스팅한 미술작품과 수집품, 기성품 등으로 이뤄지는 ‘믿거나 말거나’전 내부(왼쪽).<br>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재현한 작가 김상길의 ‘페덱스-Motion Picture-The Sign’. 9월30일까지 pkm갤러리(오른쪽).



    ‘코리안 팝’ 안 하면 미술계에서 외계인?

    ‘팝 파티’전(8월11~26일, 선 컨템포러리)에 참여한 이현진의 ‘Cirque de Croissant’(왼쪽).<br>삼성리움미술관 ‘2006 아트스펙트럼’전을 통해 주목받은 전경의 ‘Dead Circle’. 9월17일까지 금호미술관 ‘Who are you?’전에서 전시.

    올해 들어 ‘팝’은 일상적,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단적으로 8월 셋째 주에 인기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된 미술 작가 낸시 랭을 보라.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베니스에서 란제리를 입고 바이올린을 켰던 낸시 랭의 ‘팝 퍼포먼스 인 코리아’였다.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팝 파티’처럼 노골적인 제목을 달지 않더라도, 요즘 국내 미술계에서 ‘팝’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작가와 전시회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국적 팝이란 무엇인가’라고 정색하며 묻기도, 거기에 누가 대답하기도 참 어색하다.



    만화나 통조림 라벨, 팝스타 등 상업적인 소재를 끌어와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 예술품을 ‘생산’한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보다 40년쯤 늦었으니, 그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결과물을 ‘코리안 팝’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다지 나쁜 답안은 아니다. 미국의 팝아트에 대한 패러디나 찬사가 아니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 중 ‘어쩐지 앤디 워홀스러운’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비엔날레들이 증명하듯 미국의 ‘팝아트’를 기준으로 세계 어느 나라의 팝아트를 해석한다고 해도 오독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독창적 스타일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상한가를 치고 있는 중국의 현대미술도 미국의 ‘팝아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역시 ‘팝’적인 미술비평으로 인기 높은 반이정 씨는 우리 미술계에 처음 나타난 ‘팝’을 “90년대 말 이후 청년 작가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오브제 작업, 구경하는 재미에 불을 붙이는 작업 등 ‘미술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작업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70~80년대 추상 모더니즘에 반발하면서, 정치적 구호가 된 민중미술과도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 미국 팝 작가들이 귀족적인 유럽의 추상에 반발하고, 냉혹한 대량생산 자본주의 체제와 매스미디어를 조롱(혹은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면, 한국의 작가들은 다분히 저항적이고 정치적인 팝을 생산했다.

    지금은 ‘중견’이 된 최정화, 이동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정화는 이미 90년대 중반에 싸구려 소쿠리, 과속 단속용 경찰 마네킹, 전구 등을 전시장에 옮겨놓고 ‘미술’이라고 우김으로써 콜렉터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키치’는 이제 뮤즈이자 고전이 됐다. 이동기는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한 ‘아토마우스’로 코리안 팝의 DNA를 구성하는 일본 및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를 풍자했다. 지금 전시장에 얼마나 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있는지를 본다면, 그가 ‘원천 기술’의 보유자임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코리안 팝’ 안 하면 미술계에서 외계인?

    1.‘톰과 제리’ ‘도날드 덕’ 등 만화 캐릭터의 해부학적 뼈대를 만들어 실재하는 동물의 증거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유명한 이형구의 ‘레푸스 아니마투스’ . 9월2일~10월8일, 아라리오 천안.<br>2. 인기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된 낸시 랭의 ‘타부 요기니’ 연작 중 ‘아이비리그’. 낸시 랭은 작가이자디자이너, 연출자, 토크쇼 패널 등으로 전방위적 활동을 하는 ‘셀레브리티’다.<br>3.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팝 아티스트 중 하나인 손동현의 ‘요원수미수선생상 要員數美手先生像’. 영화 ‘맨 인 블랙’의 캐릭터를 한국화 초상화 기법으로 그렸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코리안 팝에 뚜렷하게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해외 유학파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돈이 많이 드는 아방가르드적 형식 실험과 소비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시기획자인 김선정 씨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관습과 역사의 무게를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은 태도를 유머와 놀이의 형식으로 과장되지 않게 풀어간 작가들” 15명을 선정했다.

    2006년 코리안 팝은 지금까지 등장한 거의 모든 팝을 망라해 혼성, 복제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팝’적 요소들을 흡수하고 있다. pkm갤러리의 박경미 대표는 “영화와 인터넷에 대한 친근함, 지극히 사적인 고백 등이 젊은 팝 작가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영화와 만화의 ‘미장센’을 옮겨온 화면 구성, 인터넷 ‘윈도’ 구조의 재현, 음악 및 패션·영화 등 장르 경계를 따지지 않는 전방위적 활동, 대중스타나 명품에 대한 욕망 등이 가장 최근의 코리안 팝 스타일로 손꼽힌다. ‘B 브랜드 런칭’이라는 독특한 개인전을 연 작가 사성비 씨는 “비판보다는 유희가 더 자연스럽고, 사회적 현상도 하나의 ‘이미지’로 보는 것이 요즘 젊은 팝 작가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탈정치적 경향에 비례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과 한숨은 깊어진다(9월17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팝 전시의 제목은 ‘Who are you?’다). 최근 한국화와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 코리안 팝에서 유행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처럼 코리안 팝의 과거와 현재, 어쩌면 미래를 보여줄 수도 있는 버라이어티한 스펙터클이 서울 광화문에서 펼쳐지고 있다. 9월1일~10월15일 ‘오리지널 코리안 팝의 제왕’ 최정화의 ‘연출전’(개인전이 아니다)이 열리는 일민미술관이다. 건물 앞에는 최정화의 그 유명한 유치찬란 소쿠리를 배경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져온 유관순, 이승복 동상과 거대한 놀이공원 ‘소녀’ 장식품 등이 놓여 있고, 종교집단의 폭력 시위에 맞서 전경들이 도열해 있으며, 맞은편 청계광장에는 한국 미술계가 쌍수를 들어 반대하던 미국 팝아트의 거장 올덴버그의 35억원짜리 거대한 ‘소라’가 한창 올라가고 있다. 어리둥절한 행인들이 디카나 폰카를 꺼내 촬영하는 모습도 볼 만한 ‘관객참여형 코리안 팝 퍼포먼스’다. 대단한 풍경이다. 최정화 연출전의 전시명이 무엇이냐고? ‘믿거나 말거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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