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2006.09.05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아름다운 세상 기금’ 저소득 모자 가정 창업 지원 … 상권 분석 등 전문가 지원 성공 주춧돌 제공

  • 윤영호 기자 yyounghgo@donga.com

    입력2006-08-30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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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서울 마포구 용강동 ‘느루’를 공동 운영하는 김귀숙(왼쪽), 박정신 씨.

    서울 마포구 지하철 5호선 마포역 인근 일명 먹자골목에서 음식점 ‘느루’를 운영하고 있는 박정신 씨.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만난 김귀숙 씨와 동업하는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꿈을 키우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나와 열 살 난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릴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는 뇌종양 치료를 위해 매일 병원에 다니면서도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딸에게 뭐든 해주고 싶다.

    박 씨가 이런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은 5월16일에 개업한 ‘느루’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골도 제법 생겼고, 점심때는 하루 30만원 안팎의 매상을 올린다. 때론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있을 정도다. 주변 음식점에서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목도 좋지 않은 곳에서 잘도 버텨나간다”며 놀라는 눈치다.

    “가난 대물림 끊는다”

    ‘느루’ 개업 때까지 세세하게 컨설팅해주던 창업 컨설팅 업체 ㈜비즈니스유엔 한수영 실장은 현재까지의 성공 요인을 “무엇보다 중요한 상권 분석을 통해 부대찌개를 중심 메뉴로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변에 부대찌개 전문점이 없는 데다 주방장을 맡은 김 씨의 음식 솜씨가 좋아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는 그만이라는 것.

    원래 김 씨와 박 씨는 죽 전문점을 낼 생각이었다. 김 씨가 한때 죽 전문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그 업소가 상당한 매상을 올리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설팅을 맡은 한 실장은 단호히 반대했다. 죽 전문점은 주변 직장인들을 끌어들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김 씨는 “지금도 죽 전문점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외로 빨리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느루’를 개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재단(이하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세상 기금’에서 각각 3000만원씩 무담보로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 물론 6000만원은 음식점을 임차하고 인테리어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두 사람은 “그러나 한 실장을 비롯해 주위에서 도와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서울 동작구 사당동 피자명 사당점을 운영하는 한미경 씨.

    역시 아름다운 세상 기금에서 3000만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10월 서울 사당동에 피자명 사당점을 개업한 한미경 씨는 가족 해체 직전까지 갔던 친정까지 일으켜세웠다. 그는 남동생과 함께 운영하면서 한 달에 4000만원 안팎의 매상을 올린다. 개업 첫 달 목표가 900만원이었는데, 이를 훨씬 초과한 2900만원을 올려 피자명 본점을 놀라게 했다.

    한 씨의 이런 성공에는 한 씨가 2004년 말 남편과 이혼하기 전까지 3년 넘게 피자점을 운영한 경험도 한몫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씨는 사당동의 지역적 특성을 면밀히 조사한 끝에 이 지역에 피자점을 개업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 씨는 “한 피자 브랜드의 사당동점이 그 브랜드 체인점 중 전국 1위를 할 정도로 사당동 주민들이 패스트푸드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지금도 홍보 전단을 한 달에 10만 장 이상 돌린다. 어느 정도 손님이 확보됐다고 해서 안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께 한 씨의 가게를 방문한 재단 관계자가 “한 씨의 열정은 재단 내에서도 유명하다”고 하자 한 씨는 “한때 신용불량자였는데도 재단에서 지원을 해줬다. 여기서 실패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서울 용산구 도원동 임마누엘헤어샵을 운영하는 김복임 씨.

    그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것은 카드 빚 때문이었다. 친정을 돕기 위해 카드사에서 급전을 끌어 썼다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원금은 줄지 않고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벅차게 되자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급기야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씨의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친정 식구들도 한 씨 가게 인근으로 이사 와 힘을 보태고 있다. 친정에선 다시 웃음꽃이 피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 기금’은 ㈜태평양 설립자인 고 서성환 회장 유족이 2003년 6월30일 저소득 모자가정의 생활 자립 지원을 위해 재단에 전달한 기금. 고인이 남긴 유산인 태평양 주식 7만4000주와 해당 주식에 대한 2002년 이익배당금 전액 등 총 50억원 규모였다(지금은 주가 상승으로 13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재단이 운영하는 60여 개의 공익기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상·하반기 한 번씩 대상자 선정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창업 컨설팅을 해주는 ㈜비즈니스유엔 한수영 실장(왼쪽)과 미용실 창업 지원을 담당하는 이철헤어커커 장준혁 이사.

    재단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저소득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물고기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물고기 잡는 법의 일환으로 소규모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재단은 창업자금 3000만원뿐 아니라 창업에 필요한 상권 분석 전문가, 인테리어 업체 등을 연결해주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능력을 기부한다는 자세로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재단이 창업자금 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도 이들 전문가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먼저 매년 상·하반기에 한 번씩 선정하는 창업자금 지원 대상자 모집에 응모한 40~50명을 일일이 면접한다. 미용실 운영을 희망하는 지원자를 심사하는 이철헤어커커 장준혁 이사는 “일에 대한 열정은 기본이고 면접을 통해 호감을 주는 포인트가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관찰한다”고 말했다.

    희망가게 현황
    호점 희망가게 점포명 업종 창업 일 소재지
    1 미재연 한식 2004년 7월 종로구 가회동
    2 왕접시해물찜 해물찜 전문점 2004년 11월 노원구 중계동
    3 임마누엘헤어샵 미용 2005년 4월 용산구 도원동
    4 아가마지 산후조리사 파견 2005년 5월 광진구 구의동
    5 상가 구내매점 매점 2005년 3월 동대문 신발상가 내
    6 이은주 헤어갤러리 미용 2005년 10월 영등포구 영등포동
    7 피자명 사당점 피자 2005년 11월 동작구 사당동
    8 개인택시 택시 2006년 3월  
    9 드림피아 폐자원 재활용 2006년 4월 경기도 화성시
    10 느루 부대찌개, 삼겹살 전문점 2006년 5월 마포구 용강동
    11 어울림 분식점 2006년 5월 중랑구 면목동


    이들 전문가의 역할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교육을 알선하거나 창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실제 창업까지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한 실장은 “자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검대상은 입지 선정과 상권 분석인데, 지원 대상자들은 이에 대한 개념도 없이 무턱대고 자영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희망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외환위기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에 곳곳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재단 관계자는 “신청자 중 30% 정도는 신용불량자인데, 그나마도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대 이상의 경영 실적 올려

    안타까운 사실은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여성 가장은 거의 대부분 이혼에 의해 생겨났다는 점. 과거엔 남편과의 사별이 주원인이었다. 재단 관계자는 “희망가게 운영자 가운데 일부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서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아무런 대책 없이 자녀 양육까지 책임지며 이혼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개업 중인 희망가게는 모두 11개점. 현재까지 이들의 경영 상태는 기대 이상이다. 재단 관계자는 “내년 초에는 이들이 상환하는 기금만으로도 또 한 곳의 창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재단은 지원 대상자들에게 창업 3개월 뒤부터 능력껏 창업 지원금을 상환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서성환 회장 유족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유산 사회 환원 … 故人 뜻 받들어 자원봉사 실천


    “무담보 3000만원으로 새 희망 가꿔요”

    2003년 6월30일 고 서성환 회장 부인 변금주 여사(왼쪽)가 아름다운재단 박상증 이사장에게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재단을 통해 서성환 같은 큰 느티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래도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히 쉬어가겠지요. 저도 언젠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할 생각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기금에서 창업자금을 지원받아 지난해 4월16일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임마누엘헤어샵을 개업한 김복임 씨는 “단순히 화장품 회사로만 알던 태평양도 다시 보인다”고 말했다.

    고 서성환 회장 유족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아름다운재단에 거금을 기부한 것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이라는 점에서, 또한 유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단 측은 “고인의 뜻도 훌륭하지만, 유산 상속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빈번한 현실에서 유가족이 흔쾌히 기부를 결정한 것이 더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1945년 9월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업한 이래 화장품과 차 산업을 선도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공헌한 사업가였다.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도 큰 관심을 가져 63년 중앙대에 성환장학금을 기부하고, 73년엔 사재를 출연해 태평양장학문화재단을, 76년엔 태평양학원을 설립하는 등 저소득층 복지 향상에 적극 참여했다.

    서 회장의 유족도 고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서경배 ㈜태평양 사장은 재단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데, 희망가게 개업식 때는 바쁜 일정을 쪼개서 참석하고, 틈틈이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자원봉사한다. 또 막내딸 서미숙 씨는 재단에 16억원 규모의 ‘하라 기금’을 만들어 저소득 가정 자녀들의 특기적성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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