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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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과 자아 형성

  • 입력2006-08-14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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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현명한 사람 또는 보편타당한 사람은 마치 짧게 그리고 오래 사는 것처럼 자기 인생을 배분할 줄 안다. 인생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면 집 없는 긴 여정과 같을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눈앞에 전개된 자연은 단 한 해의 기간에도 사계절로 나뉜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시기와 계절의 다양성은 지성적인 인간의 정신적 분야에서 조화롭게 모방돼야 할 것이다.

    [나] 지각 있는 시절의 첫 번째 부분은 이를테면 죽은 자들과의 대화에 써야 하며, 둘째 부분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써야 하며, 마지막 부분은 자신과의 대화에 써야 한다.

    [다] 즉, 현명한 사람은 생애의 첫째 부분을 독서를 위해 마련해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 본격적인 단계는 아니고 학문에 대한 준비를 하는 단계다.

    우리를 다른 사람 위로 높이는 장점이 지식에 있다고 한다면 정신의 가장 고귀한 기능은 배우는 데 있다. 그러나 책이 정신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최고의 양서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국의 제일급의 천재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생각한 것을 배우고 비교하며 필요 시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라] 다음으로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가르쳐주는 역사에 몰두해야 하는데, 오래되었기 때문에 덜 흥미를 준다고 해서 고대사를 포기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위태로운 일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기쁨을 얻고 아름다운 문구를 숙달하기 위해서 시의 감미로운 정원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시에 덧붙여서 인문학의 다른 분야와 문학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는 가장 추상적인 지식에도 즐거움과 광채를 주는 지식의 보고다.



    문학으로부터 철학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연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거기에서 각 사물의 원리를 배우고 우주의 구조와 인체의 구조, 동물의 특성과 식물의 효능, 그리고 금속의 성질을 탐구한다. 그러나 윤리학에 보다 더 머물러야 하는데, 이는 영혼의 진정한 양식이자 신사의 모든 미덕 속에서 영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지구와 천체에 대한 지식도 습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공부는 경전에 대한 지속적인 독서에 의해서 끝나게 되는데, 숭고한 사상과 다양한 내용에 대한 이해는 가장 유익하고 위안이 되며 즐겁기까지 할 것이다.

    [마] 현명한 사람 또는 보편타당한 인간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대가를 치르고서다. 윤리학은 신사를 만들고, 자연철학은 유능한 인간을 만들고, 역사는 노련한 사람을 만들고, 시는 기지에 찬 사람을 만들며, 수사학은 웅변가를 만든다.

    인문학은 모든 종류의 박식에 대해서 은혜를 베푼다. 지구학은 지성적 인간을 만들며 경전에 대한 공부는 선한 사람을 만든다.

    [바] 생애의 두 번째 부분은 생자와의 대화에 할당하고 이를 위해 그들이 사는 여러 나라를 여행해야 한다. 여행의 취미는 스스로 배울 목적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훌륭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을 알 수 없으며 반만 음미할 따름이다. 여기에서 상상력에 대한 안목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그래서 훌륭한 여행자는 외국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다른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향유한다.

    경이롭고 희귀한 것조차도 매일 보는 사람에게는 진부한 것이 되지만, 그것을 한 번만 보는 사람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매력을 지닌다. 화려한 궁전이 마침내 세워질 적에 그 궁전은 우선 거장에게 기쁨의 원천이지만,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지고 외국인을 위해 남아 있게 된다.

    [사] 여행의 유용성은 명백하다. 우선 우리는 여행에서 현자(賢者)들이 항시 높이 평가하는 지식을 가지고 돌아온다.

    여행을 할 때는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것들을 보면서 모든 분야에서 위대했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나라 정부의 지혜와 주민들의 지성과 귀족과 문인들의 탁월한 정신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교양을 위해 올바르게 검토된 이 모든 것은 깎아내리거나 치켜세움이 없이 진가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가치관과 자아 형성
    [아]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길고도 가장 좋은 부분일 터인데 이 시기는 자신과의 대화에, 즉 읽고 본 것을 여건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 명상하는 데 쓰여야 한다. 감각에 의해 우리에게 들어온 모든 것은 우리의 방식대로 사용되기 위하여 정신 속에 머문다. 바로 정신 속에서 각각의 감각적 소재가 정신적인 것으로 변해서 이성의 권위에 의해 숙고되고 검토되고 비평받고 결정된다.

    우리가 읽는 책의 내용도 똑같은 시련, 즉 비판을 거쳐야 한다. 그 내용들을 숙고하고 전개하고 명확하게 하여, 참과 거짓, 견실한 것과 시시한 것을 분리할 줄 아는 것이 긴요하다. 이러한 현명한 명상의 시기는 성숙한 시기다. 교양을 쌓는 데에 적합한 사물을 보고 배우는 일은 지성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숙고하고 명상하는 것은 현자의 일이다.

    - 발타사르 그라시안, ‘보편타당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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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을 토대로 하여 여행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200자 내외로 밝히시오.

    2. 다음 의 윤편의 주장에 대해 (다)의 주장을 바탕으로 반박하시오.(400자 내외)

    제나라 환공(桓公)이 어느 날 당(堂)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輪扁)이 당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 위를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내용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중략)

    윤편이 말하였다.

    “신(臣)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깨우쳐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손수 수레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각 단락의 소주제문

    [가] 현명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배분할 줄 안다.

    [나] 지각 있는 시절의 첫째 부분은 독서에, 둘째 부분은 여행에, 마지막 부분은 자신과의 대화에 써야 한다.

    [다] 학문에 대한 준비를 하는 단계로, 독서를 통해 정신의 고귀한 기능을 배워야 한다.

    [라] 우리는 역사, 시, 문학, 인문학, 철학, 윤리학, 지구학, 천문학, 경전 등에 대한 독서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마] 독서를 통해 여러 학문을 배움으로써 보편타당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바] 생애의 두 번째 부분은 여행을 통한 생자와의 대화에 할당해야 한다.

    [사] 여행을 통해 자연과 예술의 경이를 배우고 위대한 인물과 대화하며 여행지 사람들의 지성과 정신 등을 보고 옳게 평가해야 한다.

    [아]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읽고 본 것을 여건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 명상, 즉 자신과 대화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 글에 대하여

    ‘보편타당한 인간’은 ‘스페인의 세네카’라 불리는 문필가이자 모럴리스트인 발타사르 그라시안(1601∼1658)의 저서로, 17∼18세기 유럽사회에서 교양인의 바람직한 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기술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문제와 개인과 사회의 문제는 여전히 보편적인 문제로 남아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지혜의 서(書)다. 발췌된 부분에서는 인생을 어떻게 배분해야 현명한 인간(보편타당한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글이 씌어진 시대와 오늘의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며 현명한 삶을 위한 방향, 즉 독서와 여행, 자아 성찰의 방법 등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시 답안

    가치관과 자아 형성
    1. 여행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게 해준다. 여행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식과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특히 여행지의 문화와 그곳의 위대한 인물들과 대화를 하고, 폭넓은 교양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즉, 여행은 일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함께 위대한 인물들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2. 양서는 인류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지혜의 보고다. 그러므로 양서는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즉, 우리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의 윤편은 환공이 읽고 있는 책을 옛사람의 찌꺼기라고 하면서 책을 통한 지혜의 습득보다 스스로의 깨달음을 중시하고 있다. 물론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보다 스스로의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학문의 세계로 들어서는 사람에게 책은 훌륭한 안내자가 되며, 또한 책을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윤편의 주장은 책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고,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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