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양극화 해소’ 정권의 아이러니

  •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입력2006-08-07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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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극화 해소’ 정권의 아이러니
    “어디 한쪽 편만을 들어주는 경제학자는 없나요?”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다”고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을 향해 쏘아붙인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최근 경제 관련 뉴스 두 가지를 접하고 ‘한결같이’ 우울해졌을 것이다.

    첫째, 평균 연봉이 5500만원이라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20여 일간 파업을 벌였다는 소식은 한국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게 만든다. 노조의 파업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조는 회사가 3000억원을 들여 직원 주차장 3000평에 기존 공장과 연계한 혁신적 고급차종 생산 공장을 지으려는 일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곧 제 밥그릇을 스스로 차버리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둘째, 삼성전자는 4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웨이퍼공장을 싱가포르에 짓기로 결정했다. 약 800명을 고용할 이 공장은 당초 한국에 세워질 계획이었으나 합작 파트너인 독일 질트로니크사(社)가 반대해 싱가포르로 바뀌었다. 질트로니크사 측은 한국에서 자녀교육이 쉽지 않다는 점과 한국의 반(反)기업정서, 외국기업 홀대 정책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싱가포르는 15년간 법인세 면제, 연구 개발을 위한 정부보조금 2700만 달러 지원, 10년간 4억 달러의 자금 지원(연 2%), 60년간 평당 연 30달러로 공장 부지 임대 등 파격 조건을 약속했다. 더욱이 싱가포르에서는 경제개발청장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을 처리해 질트로니크사 관계자가 감동받았다고 한다.

    위의 두 사건은 한국 경제의 운명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를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와 노동자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선 노조는 어떤가. 이른바 한국의 대표 기업에 몸담고 있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일자리가 걸린 투자를 주차장이 멀어진다는 이유로 보이콧하고 있다. 또 경북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조합원들이 자신들을 고용하지도 않은 회사를 무단 점령해 쇠파이프와 사제 화염 방사장치를 휘둘렀음에도 일주일간 방치됐다.

    서민경제 활성화 부르짖는데 서민 고통 왜 늘어날까

    한심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노조의 불법에 대해서는 온정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며 구속 수사하고 있다. 또 현 정부가 파격적으로 늘린 정부기구 가운데 기업활동 지원을 위한 조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늘어나는 공무원 때문에 국민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사회적으로는 반미, 반시장, 반기업인 정서를 부추기는 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의 고통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이들 입에서 “정부를 고소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런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원인은 자명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시장과 기업을 무시한 데 있다. 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투자와 고용은 일어날 수 없고, 그럼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게 되며, 이는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당연히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의 현실은 우리 정부나 노동자에게 딴청을 부릴 틈을 주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성장이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2000년대 초가 가장 잘 살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노동자, 그리고 국민 모두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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