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3

2006.07.11

아드보카트 제 선수 키워주기?

“김동진·이호 스위스전 선발은 예상 밖” 전문가들 한목소리 … 포메이션 변경도 혼란 불러

  • 양종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yjongk@donga.com

    입력2006-07-06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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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보카트 제 선수 키워주기?

    대(對)스위스전(6월24일)에서 패한 다음 날 귀국한 축구 국가대표팀.

    ‘외화내빈’.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했던 한국 축구가 2006 독일월드컵에선 1승1무1패로 아쉽게 16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토고를 상대로 해외 원정 사상 첫 승을 거두고 세계 최강 프랑스와 비기는 등 표면상 드러난 성적에 대해 팬들은 “이 정도면 잘했다”는 평가다. 대표팀이 귀국하는 날 수많은 환영 인파가 인천공항을 찾은 것만 봐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한국 축구가 유럽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으며, 그 벽을 넘기 위해 영입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고 사적인 욕심만 채웠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후진성이 그대로 드러난 대회였다.

    패스를 받아 두 번 정도는 컨트롤해야 안정되는 볼 트래핑, 수시로 엇나가는 패스, 수십 번 슈팅하고도 골을 못 넣는 골 결정력.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 축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후진적 축구를 하고 있다. 팬들은 토고, 프랑스, 스위스와의 G조 예선에서 ‘한국이 압도했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대한축구협회 일부 기술위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은 “몰려다니며 열심히 뛰긴 했지만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우왕좌왕 축구의 전형이었다”고 평가했다. 확실히 압도했다면 3승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왕좌왕 열심히 … 헛심 쓰는 한국 축구

    아드보카트 감독도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세계의 벽은 높았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K리그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K리그 선수들 때문에 졌다는 얘기도 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표팀 가운데 22명이 유럽에서 뛰는 스위스와 단 5명만 유럽에서 뛰는 한국은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축구인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말도 안 된다. 그럼 우리가 왜 비싼 돈 주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겠느냐. 그런 벽을 넘기 위해서가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6월24일 열린 G조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에 0대 2로 완패한 뒤의 독일 하노버월드컵경기장 믹스트존. 수비형 미드필더 이을용(트라브존 스포르)과 공격수 설기현(울버햄프턴)은 “왜 선발로 뛰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표정만 짓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팀이 져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그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6월27일 고별 기자회견에서 수비수 김동진(FC 서울)과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울산 현대)를 자신이 사령탑으로 가는 러시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간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스위스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호를 투입했고, 공격수엔 그동안 한 번도 경기를 뛰지 않은 박주영(FC 서울)을 선발로 내세웠다. 깜짝 선발 라인업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 현장의 취재기자들은 “스위스에 져주려고 작정을 했나”라고 웅성거리기까지 했다. 최상의 멤버를 투입한다면 수비형 미드필더엔 이을용을, 공격수엔 박주영보다는 설기현을 내세웠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역예선에서의 경고 누적으로 토고전을 뛰지 못하는 데다 수비력까지 떨어지는 김동진을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킨 뒤 송종국(수원 삼성)을 대신해 프랑스 및 스위스 경기에 선발로 출전시켰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해 9월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은 뒤 각국 국가대표팀과 A매치(국가대표 간 경기)를 치르는, 이른바 경기 위주의 훈련(game base training)으로 선수들의 경험을 쌓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12일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6개의 ‘족집게 전술’을 내세워 2대 0 승리를 따내는 등 최고의 전략가라는 평가를 얻었다. 또 과감히 포백수비 라인을 가동해 공격적인 축구를 시도했다.

    하지만 6월4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복병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1대 3으로 대패한 뒤 갑자기 노선이 바뀌었다. 독일 훈련캠프인 쾰른으로 넘어와 8일 열린 비공개 훈련에서 스리백을 다시 시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대표 출신 한 축구인은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난하며 “한국 선수들은 새로운 포메이션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갑자기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꾼 것은 월드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라고 분개했다.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가나전을 마치고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갑자기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꾼 것은 일단 지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형 훈련 시스템 정착은 성과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전에서 스리백 수비에 좌우 미드필더로 수비수 이영표와 송종국을 투입하고도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을용과 이호를 또 투입, 11명의 스타팅 라인업 중 7명을 수비에 치중했다. 프랑스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스위스전에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조재진(시미즈 S펄스)-박주영 스리톱에 이천수(울산)를 처진 스트라이커로 투입해 4명의 공격수를 두긴 했지만 역시 공격 지향적인 전술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기려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선진국형 축구대표팀 훈련 시스템이 자리잡았다는 것은 이번 월드컵의 성과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때 1년 6개월이란 장기간 동안 선수를 조련한 거스 히딩크 감독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태극전사들을 이끌었다. 그는 프로와 대표팀이 공생해야 한다는 명제 아래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바뀐 첫 월드컵에서 40여 일간의 해외전지 훈련과 월드컵 직전 한 달간의 훈련만으로 본선에 올라 역대 해외 최고 성적을 거뒀다. 비록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어느 감독도 “훈련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게 됐다.

    한국 축구가 유럽과 남미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체득한 점도 이번 월드컵의 성과다. 주장 이운재(수원 삼성)는 “열심히 싸웠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K리그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영표와 박지성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기자들에게 ‘현재 실력으론 유럽을 상대하기 버겁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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