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채널 불문, 온통 축구 … 시청자 주권은 실종

  • 배국남 마이데일리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hanmail.net

    입력2006-06-26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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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 불문, 온통 축구 … 시청자 주권은 실종

    방송 3사의 월드컵 관련 특집 웹페이지 화면.

    6월, 텔레비전은 하나의 색깔로 물들었다. 그 외의 색깔은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다. 뉴스, 교양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 할 것 없이 모두 이 색으로 뒤덮였다. 심지어 프로그램 사이에 들어가는 광고마저 이 색이 점령했다. 이 색은 월드컵이 열리는 6월을 상징하고, 월드컵의 6월은 또한 이 색을 값지게 만들었다. 바로 ‘빨간색’이다.

    빨간색으로 대변되는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들이 KBS, MBC, SBS 방송 3사의 편성표를 점령해버렸다. 편성표의 칸을 빼곡히 채우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명칭만 다를 뿐 모두 ‘월드컵’을 다루고 있다. 2006 독일월드컵이 개막되기 전부터 지상파 방송 3사는 ‘월드컵이 우리의 살 길이다’는 지상 과제를 수행하기라도 하듯 월드컵 방송에 올인하고 있다. 길거리에 자사 월드컵 중계를 낯뜨거울 정도로 자화자찬하는 입간판을 세우는가 하면 책자 발행 등 막대한 물량공세를 펼친다. 또한 브라운관 안에선 전파 낭비라는 비판이 안중에도 없는 듯 월드컵 중계방송 해설자를 홍보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오락 프로그램, 심지어 광고 프로그램까지 제작해 내보내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월드컵이 개막된 6월9일 이후로는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전달자만 다를 뿐 화면 내용은 똑같은 월드컵 경기들로 인해, 방송사들이 시간 날 때마다 공영성과 공익성을 내세우며 자랑하던 MBC의 ‘W’ ‘100분 토론’, SBS의 ‘SBS 스페셜’ 등 교양 프로그램이 약속이나 한 듯 자취를 감추었다. 선정성과 폭력성 등 많은 문제로 비판받으면서도 시청률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송사들이 꿋꿋하게 내보내던 드라마조차 월드컵 프로그램 앞에선 추풍낙엽처럼 사라졌다.

    방송사들의 이러한 태도는‘축구 종가’를 외치는 유럽 국가들의 방송까지도 무색케 만든다. 월드컵에 관심이 많은 유럽 국가들도 뉴스 대부분을 월드컵으로 채우고 있지만, 우리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 3사가 모두 월드컵에 몰두해 있는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남북관계, 고유가, 부동산값 폭등 등 우리 앞에 놓인 국가적 현안들도 ‘일단 정지’상태다.

    현재 KBS ‘해피선데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SBS ‘일요일이 좋다’ 등 방송사들의 간판 오락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연예인만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형식과 내용으로 월드컵 특집을 꾸미고 있다. 방송사들은 월드컵 프로그램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겉으로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광고료 선점을 위한 과도한 경쟁과 시청률을 위한 ‘묻지마’ 월드컵 마케팅이 자리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가 보여준 맹목적 애국주의와 집단주의를 질타하던 방송사들은 어느새 태도를 바꿔 엄청난 광고료와 시청률이라는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로 애국주의와 집단주의에 전 국민을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의 ‘월드컵 올인’ 행태는 시청자 주권 차원에서 묵과하기 어려운 폭거”라며 방송을 규탄하는 시청자 및 문화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는 빨간색으로 대변되는 월드컵 방송 광풍에 철저히 묻히고 있다. 하지만 다양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외침은 월드컵 열기만큼이나 소중하다. 월드컵의 6월, 시청자들을 대신해 이렇게 외치고 싶다. “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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