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부르주아층의 럭셔리 증후군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6-21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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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층의 럭셔리 증후군

    루이비통 클래식카 대회.

    파리 16구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강남구, 그중에서도 압구정동이나 청담동과 비슷한 곳이다. 물론 16구 내에도 빈부 차가 있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통상 파시(Passy)와 오퇴이(Auteuil), 16구 외곽에 자리 잡은 느이(Neuilly)가 꼽힌다.

    16구에 사는 파리의 전통적인 부자 중 상당수는 프랑스혁명의 주도 세력이었으며 신흥 부호 세력을 대표했던 부르주아 출신이다. 이들은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부를 유지하면서 다분히 귀족적이고 배타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주아를 가려내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먼저 성에 ‘드(de)’가 들어가는 경우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에서부터 내 이웃인 드 후제 여사까지 이름에 ‘드’가 들어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럭셔리 업계 간부들의 이름에도 ‘드’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계급은 존재 ... 명품 브랜드 단골손님

    장-피에르처럼 두 개의 이름이 결합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진골 중에서도 진골인 부르주아 계층으로 꼽힌다. 물론 우리나라 조선시대처럼 프랑스에도 귀족이나 명문가의 이름이 거래되던 시절이 있어 이름만으로 혈통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전제로 해두자.



    내 친구 플로랑스는 프랑스 내 부르주아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부르주아라고 해서 우러러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이들 가운데 부자나 권력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일부는 이들이 여전히 배타적인 사교모임을 이어오는 데 삐딱한 시선을 보인다.”

    부르주아들은 유럽 왕실의 전통에 따라 20대가 된 자녀를 사교파티에 ‘공식 데뷔’시키기도 한다. 부르주아이며 가톨릭 신자인 젊은이들의 사교파티인 ‘랠리(Rally)’나 이들이 여는 무도회 등은 여전히 현지 언론의 ‘사교가 사람들’ 면을 장식한다.

    파리에 본사를 둔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다.

    매년 바가텔 공원에서 열리는 루이비통의 클래식카 대회나 에르메스가 후원하는 경마 경기 등에서 드레스나 창의적인 모자 등을 모임의 드레스코드에 맞춰 입고 나오는 여성들의 상당수가 부르주아다. 부르주아들은 대체로 드레스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전통적인 프랑스 브랜드를 선호한다.

    파리에선 큰 파티를 앞두고 어머니와 딸이 나란히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아비뉴 몽테뉴나 생제르망 데프레의 유명 의상실에 드나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 브랜드들이 부르주아 가족의 데이터베이스를 별도로 관리하며 매장 VIP룸에서 이들을 맞는다.

    아비뉴 몽테뉴의 한 유명 럭셔리 브랜드에 근무하는 세실리아 뮈통은 “토요일은 이런 단골 고객의 날로 비워놓는다. 전화로 예약을 받고 원하는 의상을 골라놓은 뒤 맞춤 상담을 해주는데 보통 어머니와 딸, 며느리 등 2대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 달 여행 경비로 1인당 4000만원에서 1억원을 받는 이탈리아의 한 럭셔리 크루즈 회사의 의뢰를 받고 VIP 고객들의 만족도를 조사해준 적이 있는데, 이 회사에 VIP로 등록된 고객 중 절반가량이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문의 성을 쓰고 있었다. 일대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접한 그들의 여행에 대한 바람은 한결같았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지금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여행이다. 그 대가로 돈이 얼마가 드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계급사회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계급은 엄존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부르주아가 여전히 경제적 계급의 꼭대기층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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