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분위기 반전시킨 쾰른의 ‘심야 회동’

첫 승 거둔 대표팀 평가전 내내 고전 … 최상의 코칭스태프 선진국형 훈련 시스템 정착

  • 쾰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입력2006-06-2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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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속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그라운드 쪽으로 달려나가 선수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때론 주심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6월13일 토고와의 독일월드컵 첫 경기 전반 때처럼.

    6월4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벤치 한쪽에 어깨를 기대고 여유 있게 경기를 지켜보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만큼 가나와의 평가전은 중요했다

    1대 3. 완패였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경기 내내 침울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위험할 만큼 가라앉았다. 그날 밤 아드보카트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독일 쾰른 입성 첫날(6월6일) 밤 11시. 가라앉은 분위기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자 홍명보 코치는 주장 이운재를 불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힘들지?”



    홍 코치가 말문을 텄다. 이운재는 머리를 긁적이며 “후~” 하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노르웨이,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 다소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현재 대표팀 분위기가 너무 침체돼 있다는 것이다.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빠른 시간 내에 팀을 재정비해서 다시 뛰자. 주장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FIFA 룰에 입각해 실시되고 있는 대표팀 훈련

    홍 코치와 이운재의 심야 대화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홍 코치를 이용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뜻이었다.

    한국은 6월13일 아프리카의 복병 토고에 2대 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16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중요한 승리였다. 하지만 이날의 값진 승리는 쉽게 나온 게 아니다. 홍 코치와 이운재의 대화에서 나타나듯 네덜란드 출신 ‘연금술사’의 치밀한 계산과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한국 축구는 4강 신화 이후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대표팀과 프로리그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에 따라 대표팀의 훈련이 국제축구연맹(FIFA) 룰에 입각해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이라면 언제든 소집해 훈련이 가능했던 한국만의 특수 상황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때 1년 6개월간 태극전사를 지도한 것을 끝으로 영원히 과거가 됐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과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중도 하차한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본프레레 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아드보카트 감독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06 독일월드컵에 대비한 훈련은 1월에 실시된 40여 일간의 해외 전지훈련과 월드컵 직전인 지난달 14일 소집돼 약 한 달간 이루어진 훈련이 전부였다.

    “릴리(이천수) 압박!”

    6월15일 독일 레버쿠젠 바이아레나의 한국 축구대표팀 훈련장. 아드보카트 감독은 “압박”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도 서너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꼼짝 못하게 한 게 4강 신화의 원동력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수들을 쫓아다니며 외치는 “압박”이란 말에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선수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는 감독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이다. 홍 코치는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도 뭔가 다른 게 있다. 사람을 믿게 만든다. 그를 믿으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말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5월26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을 마친 다음 날, 대표팀을 이끌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날아왔다. 그리고 글래스고 머리파크의 미끄러운 잔디 위에서 연일 강훈련을 하는 한편 노르웨이 오슬로(6월2일)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6월4일)를 오가며 각각 평가전을 벌였다.

    지옥의 스케줄 실행 … 개별훈련 프로그램도 진행

    빡빡한 일정에 강도 높은 훈련. 부작용이 터져나왔다. 5월29일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연습경기를 하다 부상을 당했다. 오른쪽 발목 골절. 31일엔 박지성이 훈련 중 이영표의 발에 걸려 넘어져 발목을 다쳤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쳐 대표팀에 소집된 뒤에도 재활에 매달렸는데 또다시 발목을 겹질린 것이다. 대표팀에는 한때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진철, 송종국, 이을용도 잔부상에 시달렸다. 부상자가 속출하다 보니 대표팀 훈련장에선 선수들이 3~4개 그룹으로 나뉘어 훈련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일부 기자들은 “왜 독일로 바로 가지 않고 스코틀랜드로 왔느냐”며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따지듯 물었다. 선수 부상이 무리한 일정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축구를 하다 보면 부상도 입을 수 있는 법”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부상자들을 재활시키며 훈련에 매진했다.

    가나전에서 패한 뒤 태극전사들의 자신감은 앞서 언급했듯 하락세로 돌아섰다. 2002년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4대 1 승)와 잉글랜드(1대 1 무), 프랑스(2대 3 패) 등 강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계속 자신감을 키웠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당연히 비판적인 분위기도 형성됐다.

    기자들도 “도대체 언제 컨디션이 100%가 되느냐”고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평가전은 우리의 부족한 점을 찾아낸 뒤 보완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6월6일 베이스캠프 장소인 독일 쾰른에 입성한 뒤엔 골 결정력을 높이는 전술훈련과 체력을 끌어올리는 컨디셔닝 훈련에만 매진했다. 의기소침했던 선수들은 차츰 자신감을 찾아갔고 이에 따라 플레이에 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은 토고를 잡고 귀중한 1승을 챙겼다.

    2002 한일월드컵 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한 이용수(세종대 교수) KBS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에 대해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조합”이라고 말한다.

    카리스마를 갖춘 아드보카트 감독,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축구문화와 선수들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한 핌 베르베크 수석코치, 역시 2002년 기술분석관으로 4강 신화에 일조한 아프신 고트비 코치, 후배들의 영원한 맏형 홍명보 코치, 그리고 라이몬트 페르헤이연 체력담당 트레이너.

    짧은 기간이지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들은 글래스고부터 쾰른까지 이어지는 지옥 스케줄을 함께 고민하며 짰고 실행했다. 코칭스태프는 유럽파, 국내파, 일본파 선수들의 컨디션을 각각 파악해 개별훈련 프로그램을 짤 정도로 치밀했다.

    아직까지는 2002 영광 재현이란 말을 꺼낼 순 없다.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흔들려온 한국 축구에, 프로에 전념한 뒤 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진국형 훈련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 때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독일월드컵 직전 “우리가 유럽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 ‘훈련시간’을 뺏긴 상황에서 월드컵에 나와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바뀐 현실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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