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2006.06.20

‘신데렐라 서비스’를 아십니까?

일부 상류가정 어린이 24시간 경호는 기본 ... 등·하교 시키기 등 가정 도우미 역할까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6-14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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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 서비스’를 아십니까?

    퍼스트레이디의 여성 경호원들이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예은(가명·여)이는 요즘 ‘보디가드 언니’와 산다. 예은이의 아빠는 중소기업 사장이고 엄마는 변호사. 얼마 전 아빠가 3개월 일정으로 해외출장을 떠난 데다 가정부 아주머니까지 친정에 일이 생겨서 집을 비우게 되자 야근과 지방 출타가 잦은 엄마는 아예 경호업체에 예은이를 ‘의뢰’했다.

    보디가드 언니는 24시간 내내 예은이 곁에 머문다. 손수 차를 몰아 등·하교를 시키고 학원에도 데려다준다. 저녁식사를 차리고 간식과 준비물을 챙겨주는 것도 보디가드 언니의 몫. 밤에는 귀가가 늦는 엄마를 대신해 예은이가 잘 자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한다. 예은이가 잠들면 보디가드 언니는 옆방에서 잠을 청한다.

    여성 경호원 조미란(25) 씨는 지난 10개월 동안 초등학교 6학년인 민주(가명·여)네 집에서 지냈다. 서울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민주는 중학생 언니들에게 붙잡혀 돈을 뺏기는 일을 당했다. 이에 더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민주 부모가 경호업체에 자녀들의 경호 서비스를 부탁했던 것.

    “전체 서비스 30%가 어린이 경호”

    조 씨는 민주와 두 여동생을 학교와 학원, 유치원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경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식사를 차려주고 옷을 입히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주는 등, ‘보모’ 역할까지 맡았다. 조 씨는 엄마를 대신해서 민주 자매와 함께 박물관 등으로 현장학습을 가기도 했다. 유도 3단인 조 씨는 ‘위장경호’를 위해 검은색 정장바지 대신 치마나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조 씨는 “이웃이나 애들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밖에서는 친척 언니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 경호업체 주 고객의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학교폭력, 왕따 등에 시달리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성추행이나 유괴 등 아동범죄 피해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예방 차원에서 경호업체에 자녀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고 있는 것. 여성전문경호업체 퍼스트레이디의 고은옥 대표는 “2~3년 전부터 어린이 경호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해 요즘에는 어린이 경호서비스가 전체 서비스의 30%가량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어린이 경호서비스는 ‘경호’에만 그치지 않는다. 위의 두 사례처럼 하루 종일 아이 곁을 지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모 역할까지 떠맡게 된다. 경호업체 코세스코리아는 이러한 어린이 경호서비스를 ‘신데렐라 서비스’라고 부른다. 경호원이 신데렐라처럼 가사까지 맡아준다는 의미다. 보통 가정부를 두고 있는 상류층 가정이 신데렐라 서비스의 주 고객이기 때문에 경호원이 전적으로 살림살이를 맡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객의 자녀를 돌보다가 발생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챙겨주고 있다. 조미란 씨는 “아이들을 경호하다 보면 조카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엄마나 가정부가 집에 안 계실 때는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을 해주게 된다”며 “처음에는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어 자존심이 상했지만 경호 업무에도 세심한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데렐라 서비스의 비용은 중산층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경호원 1인당 인건비가 8시간에 15만원. 부모가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출장을 갈 때 주로 이용하는 24시간 서비스(아이와 한 집에서 자는 서비스)의 경우 인건비만 하루 45만원. 여기에 경호차량 사용비, 유류비, 식대 등은 별도 정산해야 한다. 한 달 이상 장기간 경호서비스를 이용하면 300만~400만원으로 가격이 낮아지지만, 이마저도 중산층에서는 버거운 비용이다.

    ‘신데렐라 서비스’를 아십니까?

    주로 아동범죄에 노출될까 걱정하는 상류가정 부모들이 어린이 경호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신데렐라 서비스의 주요 고객은 상류가정이다. 재벌가, 대기업, 중소기업 사장,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F경호업체 관계자는 “고객들은 대부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라며 “서울의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현직 국회의원의 초등학생 남매에게도 경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린이 경호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성추행이나 유괴 등 아동범죄가 사회문제로 부각됐을 때 폭증한다. S경호업체 관계자는 “지난 2~3월 용산의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이 큰 이슈로 떠오르자 한 달 동안 무려 200여 건의 어린이 경호서비스 문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C경호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상류가정이다 보니 자녀가 범죄 위험에 노출된 경우가 있다”면서 “수상쩍은 사람이 집과 학교 주변을 배회하자 유괴를 걱정해 경호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도 있다”고 전했다.

    ‘아동범죄’ 발생할 때마다 수요 폭증

    이밖에도 아동 경호서비스를 요청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이혼가정에 어린이 경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빈번하다. 양육권이 없는 부모가 학교나 집 앞으로 찾아와 아이를 무작정 데려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용역회사 직원을 고용해 아이를 납치(?)하는 일도 발생해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혼해서 함께 살지 않는 부모를 정기적으로 만나러 갈 때도 경호원이 동행한다. 이혼한 부부가 자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어색한 순간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으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잘 달래서 학교에 데려다달라고 요청합니다.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을 때리거나 돈을 뺏는 아이의 부모도 경호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해달라는 거죠.”(코세스코리아 백봉현 대표)

    아무리 ‘어린’ 고객이라도 고객에게 화를 내거나 무례하게 굴면 안 되는 것이 경호원의 원칙. 퍼스트레이디 박영인 실장은 “아동심리학 등이 경호원에게 필수 소양지식이 됐다”면서 “불쾌한 기분이 들더라도 웃으며 넘기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친해지라고 경호원들을 교육한다”고 말했다. 여성 경호원 윤모(24) 씨는 “가장 기분이 상할 때는 아이들이 ‘창피하니까 저만치 떨어져서 걸어오라’고 요구하거나 ‘야, 저것 좀 갖고 와’라면서 아랫사람 취급할 때”라고 말했다.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학원이나 개인과외를 두세 개씩 해 밤 11시가 돼서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는 사실을 어린이 경호서비스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을 볼 땐 안쓰러워져서 정말 내가 이모나 언니가 된 것처럼 자상하게 챙겨주게 되요.”

    아직까지는 일부 상류가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신데렐라 서비스는 변화된 사회상을 여실하게 반영하는 일종의 ‘코드’다. 맞벌이 부부나 이혼가정이 점차 늘어가고, 아동범죄 증가 등 사회가 흉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부모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자녀 보호’를 외부에 떠맡기는 것이다. 코세스코리아 백봉현 대표는 “어린이 경호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호원도 가정도우미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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