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9

2006.06.13

규칙적인 세계, 그곳에 싹튼 불안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06-12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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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칙적인 세계, 그곳에 싹튼 불안
    사진 속에 복잡한 도시가 있다. 초고층 빌딩들, 멀티플렉스나 쇼핑몰과 같은 거대 건물, 도심 주차장, 그 사이를 복잡하게 이어가는 도로들. 이 모든 것들이 갑갑할 정도로 집적된 구조를 이루는데, 이는 단지 문구용품인 스테이플러(stapler)용 철침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구조물이다.

    김정주는 스테이플러용 철침을 재료로 가상의 도시 공간을 만든 뒤 그 사진을 전시한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이플러용 철침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철 제품의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반듯하고 규칙적인 것, 질서와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기준 등을 연상시킨다.

    마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 현실에서 무너지기 쉬운 구조나 부조리, 무질서와 같은 것에 저항이라도 하듯, 만들어진 건물과 공간은 반듯하고 규칙적으로 보인다. 김정주는 금속성의 스테이플러용 철침을 반복, 집적해 질서 있고 균형이 잡힌 가상의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상의 신도시, 그리고 그것의 사진. 우리는 이 사진을 보면서 집적된 구조물들의 신기함보다는 그 이미지에서 느낄 수 있는 환상적 효과에 매료된다. 그 환상 속에서 우리는 그 공간이 더욱 반듯하고 규칙적이며, 더 높아지고 복잡해지며 거대해지길 원한다. 작가 자신이 우리 현실과 다른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을 때의 느낌처럼, 우리도 그 공간에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질서 잡힌 구조 속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집적으로 이루어진 그 구조 속에서 어떤 불안을 느낀다. 우리가 규칙적인 세계를 꿈꿀수록, 그 환상 속에서 그 공간이 더 거대해지길 원할수록, 불안은 더욱 커진다. 우리의 환상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은 바로 그 욕망의 대상이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인 불안을 불러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만나는 강박적 외침들, 그 속에서도 가끔 우리는 불안을 만난다. 우리는 과학과 의학과 정치와 자본이 무한히 발전하고, 더욱 질서가 잡히고, 그 속에서 더 안정된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강박적으로 원한다. 그러한 욕망 속에서 만나는 우리의 불안, 그것은 과연 주관적인 상상일 뿐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어떤 불안의 대상에 가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객관적 증상인가. 6월10일까지, 갤러리 정미소, 02-743-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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