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9

2006.06.13

코너에 바짝 몰린 盧, 앞이 깜깜…

우리당 내부 ‘선거 책임론’ 거센 목소리 … 民心 반전 회심의 카드 뽑을 수 있나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6-06-07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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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에 바짝 몰린 盧, 앞이 깜깜…
    5·31지방선거에서 ‘여당 참패’라는 비보가 날아든 선거 당일 오후 청와대는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오후 6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들이 정태호 대통령 대변인에게 선거 결과에 대한 논평을 요구했지만 “최종 선거 결과를 보고 내일쯤 입장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관저에 머물면서 TV로 개표 상황을 지켜봤지만, 선거 와 관련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튿날인 6월1일 여당의 패배가 ‘사상 최악’인 것으로 확인되자 아침부터 청와대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사퇴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고, 정 대변인은 오전 10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노 대통령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민심 받아들이며 정책과제 추진 ‘모순’

    하지만 노 대통령의 언급 수위를 통해 향후 청와대의 대응 방향을 가늠해보려던 기자들은 정 대변인의 발표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과제들을 최선을 다해 이행해나가겠다”고 밝힌, 서로 모순되는 내용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또 열린우리당에 대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의 참모습이 나오는 법이고 국민은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이라며 “멀리 보고 준비하며 인내할 줄 아는 지혜와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솔선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여당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자성의 뜻을 피력하리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원론적인 언급에만 그치는 모습이었다.

    당장 비판이 제기됐다. 5·31 선거에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부여되고, 심지어 한나라당은 ‘노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까지 규정한 마당에 너무 안일한 상황 인식이 아니냐는 것.

    노 대통령의 이런 자세는 여권에 불어닥친 선거 후폭풍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스스로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내모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여당조차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2002년 대선 당시 노 후보의 정무특보를 지낸 장영달 의원이 ‘당·청 연대책임론’을 제기하며 총대를 멨다. 장 의원은 “(이번 선거는) 노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며 “연대책임론을 물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빠르면 7월, 늦어도 9월 정치적 선택 할 듯

    범여권 내에서도 소리 없는 다수는 이번 선거의 최대 패인을 ‘노무현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선 당시 노 후보를 지지했던 진보학자들은 “참여정부는 충분히 개혁적이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추진해온 개혁의 성과마저 올리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선거에서 대선 승리의 밑바탕이었던 젊은층과 호남 민심이 돌아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나아가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여당 참패의 원인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리한 추진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책, 대미관계 등 외교정책 등에 대한 유권자의 ‘총체적 부정’에서 찾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정책기조 유지’를 천명했다. 왜일까.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누구보다 여론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고 남보다 한발 앞서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원론적 언급은 일단 ‘숨 고르기’ 차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코너에 바짝 몰린 盧, 앞이 깜깜…

    정태호 대통령 대변인이 6월1일 오전 춘추관에서 5·3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섣부른 선택으로 다음 수를 둘 경우 자칫하면 여권의 핵분열을 부채질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지금은 5·31 이전부터 지방선거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온 기조를 유지하면서 사태 추이를 관망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법하다.

    물론 노 대통령에겐 ‘숨 고르기’로 긴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여권을 비롯한 정치권 전체가 요동을 치고 있는 만큼 노 대통령도 곧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을 맞게 될 수 있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앞으로의 선택 방향을 심사숙고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설 시점은 빠르면 7월, 늦어도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이 될 전망이다. 7월이면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이 임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이달 16일 대표직을 사퇴한 뒤 어떤 형태로든 ‘캠프’를 차릴 예정이다.

    다른 정치세력도 7월을 정치적 전환기로 보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7월 중 사회 각 분야의 국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운동 성격의 연대모임(국민연대)을 결성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은 7월 중이나 늦어도 정치 하한기(夏閑期) 직후인 9월쯤에는 어떤 방향으로든 선택을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여당 당적을 버림으로써 열린우리당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줘 민주당과의 통합이 수월하도록 할 것이란 관측에서부터 청와대발(發) 정계개편 추진설까지 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노 대통령이 앞장선 개헌추진론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시나리오일 뿐이다. 현재로선 청와대에서 확인되거나 최소한 참모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조차 전혀 없다. 어쩌면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 참패 직후 백지상태에서 이제 막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기본 방향은 예상할 수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그랬듯,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의 초점은 레임덕 방지와 정권재창출에 맞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국정에 반영하려 하기보다는 청와대가 앞장서 민심 반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최종 승부는 결국 차기 대선에서 판가름 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노 대통령 특유의 정공법이 마지막 빛을 발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내놓았던 ‘대연정’과 같은 방식은 정치적 힘이 크게 떨어진 현 상황에선 다시 꺼내들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상황반전 카드가 나올 소지마저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정면돌파 카드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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