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불안, 공포,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05-10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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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 공포,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강물’ 위에 한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떠간다. 주검, 혹은 주검의 이미지. 아니면 영원한 휴식의 상태. 거의 정지된 것 같은 영상은 끊임없이 흐르는 잔잔한 강물로 가득 찼다.

    ‘초원’을 빠르게, 그리고 가끔은 매우 느리게 가는 어떤 존재가 있다. 손엔 칼을 쥐고,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낮은 포복으로 ‘덩굴’, ‘밀림-늪’ 속에서 긴장된 몸짓으로 숨는 듯, 공격하는 듯, 뭔가를 뒤쫓는 듯,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는 듯도 하다. 그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짐승 같기도 하다. 낙오된 군인일 수도 있고, 도망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문명으로부터 소외된 원시인이나 야만인일지도 모른다. 덩굴과 늪에서 나는 바람소리, 가쁜 숨소리, 총성, 박격포, 비행기, 사이렌 소리가 공간을 울리면서 그 가운데에 서 있는 관람객의 긴장과 공포를 증폭시킨다.

    서울 홍대 앞의 쌈지스페이스에서는 캐나다에서 활동해온 작가 윤진미의 비디오 작품 4편을 전시하고 있다. 윤진미의 영상과 사운드는 우리의 신경 속에서, 그리고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작용해 공포와 불안, 기억과 트라우마, 폭력과 야만을 일깨우고, 우리를 죽음과 휴식으로까지 이르게 한다.

    우리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정체 모를 이곳에서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를 본다. 죽은 듯 떠가거나 기어다니고, 어느 정도 위협적으로 뭔가를 쫓거나 쫓기거나, 숨기를 반복하는 존재다.

    우리는 그것의 움직임을 보면서 지속적인 긴장감에 시달린다. 우리의 긴장과 공포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대상들로부터, 그리고 무엇인가를 상상하게 하는 큰 소리로부터 발생한다. 그 긴장과 공포는 동시에 우리 존재 자체를 압도하는 근본적인 불안을 환기시킨다. 불안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정체가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즉 우리가 무(無)로 환원돼버리고 만 것을 목도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모든 것-문명-이 파괴돼버린 뒤의 폐허, 혹은 생겨나기 이전의 야만을 보고 말았다는 충격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를 공포로 몰고 간 원인은 전쟁이나 테러, 아니면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어떤 재앙으로 상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공포의 진정한 원인은 우리 안에서 환기되는 본래적 불안, 그것으로 비로소 증폭되는 것이다. 5월31일까지, 쌈지스페이스, 02-314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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