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괴물에서 평화주의자까지 천태만상

  • 이서원 영화평론가

    입력2006-05-10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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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에서 평화주의자까지 천태만상

    TV 시리즈 ‘X파일’.

    원래부터 SF의 외계인들이 그렇게 험상궂지는 않았다. 볼테르의 풍자소설 ‘미크로메가’와 같은 작품을 보면 시리우스나 토성에서 온 외계인들은 미천한 지구인보다 거대하고 현명한 존재들이다. 물론 그들은 지구인들이 그 ‘쪼그만’ 땅에서 벌이는 유치한 전쟁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그러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우주전쟁’이라는 소설을 쓰자 사정이 확 바뀌었다. 한마디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사랑 아니면 갈등인데, 외계인들과는 연애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외계인이 1950년대 냉전 분위기에 대한 공포와 결합하자 할리우드는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들의 천국이 됐다. 50년대 버전 우주전쟁에 나오는 징그러운 괴물에서부터 ‘신체 약탈자의 습격’의 콩깍지처럼 생겨서 주변 사람들을 복제하는 외계인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이런 외계인들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동안 할리우드 특수분장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면 천편일률적이었던 외계인들의 이미지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클로스 인카운터’였다. UFO 광이고 지금도 SETI 계획의 지지자인 스필버그는 호전적인 악당 외계인 대신 배불뚝이에 평화주의자인 식물학자를 등장시킨 ‘E.T.’로 평화로운 외계인의 전통을 이어갔다. 덕분에 한동안 호전적인 외계인들을 등장시키는 건 유행에 뒤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의 히트 텔레비전 시리즈 ‘X파일’이 이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정부의 음모론과 고전적인 UFO 가설들을 결합한 이 시리즈는 지구가 외계인들의 정복 대상이며 서서히 침략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불길한 말을 늘어놓아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외계인들의 이미지는 다시 부정적이 됐다. 이게 먹혔던 건 ‘X파일’이 단순히 외계인 침략을 내세우는 대신 더 은밀한 음모를 꾸미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같지만 스타일이 더 쿨해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까지 할리우드에서는 호전적인 외계인들이 인기인 듯하다. 심지어 평화로운 외계인의 유행을 불러왔던 스필버그도 요즘은 컴컴한 외계인물들을 만들고 있다. 그가 제작, 총지휘한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 ‘테이큰’에서 외계인들은 아주 사악한 존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E.T.처럼 순진하고 믿을 만한 친구도 아니다. 그들은 인간을 납치해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스필버그의 최신작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침략한 사악한 외계인이라는 공식은 50년대 스타일 그대로 되풀이된다. 그 때문에 스필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사실 외계인들은 저렇지 않을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진짜 외계인들은 어떨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태도는 외계인 영화의 핵심을 찌른다. 이 영화들은 실제 외계인들과는 상관이 없다. 외계인들은 그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반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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