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 인생 여러 우물 파죠”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05-10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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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 인생 여러 우물 파죠”
    그가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국내 최초의 ‘출판 원고 경매’. 시인 송현(59)은 4월 초 인터넷 다음 카페에 자신을 대표로 한 ‘한국출판물경매회사’를 개설했다. 출판 원고 경매란 집필 원고들을 인터넷상에서 공개 모집한 뒤 경매에 부쳐 최고가를 써낸 출판사와 연결해주는 것. 경매에 부친 첫 원고는 ‘전국민 행복교과서’(가제). 3년 전 월간 ‘샘이 깊은 물’에 공개 구혼장을 실어 이에 응답한 650명의 청혼자 중 한 명을 지금의 아내로 선택하는 과정이 여성지와 방송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바로 그 스토리를 담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다. 1만 부 선인세로 1000만원을 불렀다. 그답다.

    “제가 가진 여러 분야의 콘텐츠를 외적으로 발산하고 싶은데, 사실 제가 사교적으로 보이긴 해도 고지식해서 남한테 ‘쪽팔리는’ 부탁을 못해요. 그래서 경매를 하는 ‘열린 공간’을 만든 겁니다. 저처럼 학맥이나 인맥이 취약한 신인·기성 작가들에게도 자기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 싶었고요.”

    그의 원고는 아직 낙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4명의 출판사 사장들과 출간을 위해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모르는 송현 시인. 그는 명함에서 ‘시인·칼럼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한다. 더불어 개인 홈페이지(www.songhyun.com) 주소도 적어놓았다.

    국내 최초 인터넷 ‘출판 원고 경매’회사 개설



    그의 현재 공식 직함은 경기대 사회교육원 결혼정보관리사 과정 주임교수. 매주 화·목요일에 강의하는 결혼정보관리사 강좌(6개월 과정)는 국내에선 경기대가 처음으로 개설했다. 2005년 3월 개설 이후 2기생까지 35명의 수강생을 배출한 이 과정은 체계화된 교육을 통해 ‘전문 중매쟁이’를 양성하는 강좌다. 주부, 부동산중개인, 간호사, 퇴직 교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강의를 듣는다.

    그렇다고 현 직함만으로 송 씨를 재단하기는 어렵다.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못해 현란할 정도다. 부산 동아대 국문과 출신인 그는 원래 ‘문학청년’이었다. 한때 서울 서라벌고에서 2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1976년 타자기를 발명한 고 공병우 박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글기계화 연구에 뛰어들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 결과 ‘공병우 한글기계화연구소’ 부소장을 거쳐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 대표를 지내는 등 잘못된 한글 표준글자판을 바로 고치는 데 10여 년을 보냈다. 그 덕에 송 씨는 한글학회에 의해 ‘한글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그 기간에 정대철 전 의원과도 교분을 쌓아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현실문제연구소’에서 1985년부터 3년간 소장직도 맡았다. 지금은 ‘사법정의국민연대’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송 씨의 ‘유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월간 ‘디자인’과 월간 ‘굴렁쇠’의 편집주간을 지낸 그는 아동문학가로도 변신했다. 그가 쓴 11권짜리 그림동화책 ‘도깨비학교 문고’(디자인하우스)는 300만 권도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책을 구입하거나 선물받는 어린이의 이름으로 인쇄해주는 희한한 아이디어가 ‘대박’의 비결이었다.

    송 씨가 지금껏 낸 저서는 무려 60여 권. 평생 책 한 권 쓰기도 녹록지 않은 판에 그 많은 책을 냈다? 다작의 변(辯)이 궁금하다.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 인생 여러 우물 파죠”

    송현결혼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송현 씨.

    “다작이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데… 워낙 여러 가지 일을 벌이다 보니 많이 쓸 수밖에 없지요.” 앞으로도 50권쯤 더 쓸 계획이다. 제목도 정해놓았다. ‘프로가 되는 법’ ‘커플매니저론’ ‘이혼예방론’….

    송 씨는 2003년 5월, 11살 연하의 최정원 씨와 ‘새혼’(그는 재혼을 이렇게 부른다)한 이후 줄곧 ‘나따사함’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생활해왔다. ‘나흘은 따로 지내고 사흘은 함께 지내는’ 것. 월·화요일은 각자 서울과 수원(부인 최 씨는 수원에서 미용업에 종사한다)에서 지내고, 수요일엔 수원의 부인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목·금요일은 다시 따로 지내고, 토·일요일엔 붙어 지낸다. 둘 다 재혼이라 아이들이 있지만, 괘념치 않는다.

    “재혼 커플들이 참고해볼 만한 삶의 방식이에요.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할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주말 부부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위험한 데 비해 나흘 정도만 떨어져 있으면 더 보고 싶어지거든요. 어쨌든 우리 부부는 아직도 신혼입니다, 허허.”

    송 씨는 이혼도 ‘예방’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혼에 대해 미리 공부하지 않은 채 섣불리 결혼하는 것은 운전면허를 따지 않고 차를 모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지론. “잘못된 결혼은 이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어요. 그걸 피하려면 처음부터 결혼을 아주 잘 하든지, 아니면 이미 잘못한 결혼의 주된 원인인 금전 혹은 섹스 문제를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는 ‘잘못된 결혼문화’를 바꾸기 위한 목적에서 2004년부터 ‘송현결혼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 학교에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다. 교장인 송 씨가 지원자들을 3차례의 면접(차 마시기, 밥 먹기, 술 마시기)을 통해 걸러낸 뒤 남은 사람들에게만 입학을 허락한다. 이력서만 보고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송 씨는 이혼의 주원인 중 하나로 섹스 트러블을 든다. 이 때문에 그는 이른바 ‘SS이론’을 창안했다. 그의 성을 따서 명명한 ‘SONG’S SEX 이론’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남성 위주에서 벗어나 여성 위주의 섹스를 하면 한 번의 섹스 행위로도 열 번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사랑법’이다. SS이론이 얼만큼의 실효성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 이론에 공감하는 ‘광신도’가 10만 명을 헤아린다. 그중 상당수는 송 씨가 운영하는 한국SS이론연구소의 회원이다.

    숨이 찰 정도로 수많은 분야를 ‘섭렵’한 송 씨는 무엇으로 불리길 바랄까. “시인이죠. 1975년 월간 ‘시문학’에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니. 세 권의 시집만 내고 20여 년간 ‘개점휴업’하는 바람에 지금은 ‘시단의 미아(迷兒)가 돼버렸지만, 아마 시작(詩作)을 계속했더라면 일류는 못 돼도 B급 시인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올해 중 네 번째 시집을 낼 예정입니다.”

    교사·회사 대표·아동문학가 … “올 네 번째 시집 발간”

    그는 1년에 네 번 하루씩 단식을 한다.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네 사람의 기일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정신적 스승인 함석헌 선생, 영적 스승인 라즈니쉬, 20여 년을 함께했던 공병우 박사, 자신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발표할 지면을 내준 ‘뿌리깊은 나무’의 한창기 사장이 그들이다.

    송 씨는 2003년 4월 이라크전쟁 당시 미국에 맞서 싸울 이라크 파견 민병단 모집 신문광고를 낸 적도 있다. 바로 다음 날 바그다드가 함락되는 바람에 무산되긴 했지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저는 친미주의자도 반미주의자도 아녜요. 하지만 힘센 놈이 누명을 씌워 약한 놈을 때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죠. 정의감에서 그랬어요.”

    송 씨는 2007년 3월 공병우 박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의 기념관을 열 준비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가 사비를 들여 기념관으로 꾸밀 공간은 서울 장안동 황금오피스텔 지하공간. 55평의 이 공간은 현재 송 씨의 연구실(한글문화원) 겸 송현결혼학교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그는 공 박사의 위인전 출간 계약도 맺어둔 상태다.

    송 씨의 인생을 담기에 원고지 열 몇 매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적는 건 진지하면서도 때론 엉뚱하기까지 한 그의 행적에 깃든 삶의 철학을 엿보고 싶어서다. 그가 자신의 인생관을 까놓고 얘기한 적은 거의 없다. 한 우물만 파지 않은 데 대한 후회는 없을까.

    “전혀.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니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요. 다만 그 드라마의 내용은 다큐멘터리로 채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처음 만날 때처럼’ 사람을 대하려고 해요. 그게 다예요.”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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