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2006.04.11

“재건축 막는다고 집값 잡히겠니”

부동산 전문가들 3·30 대책 효과에 회의적 … “기존 강남권 아파트 희소성 커질 수밖에”

  • 이승헌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dr@donga.com

    입력2006-04-05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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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축 막는다고 집값 잡히겠니”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습니다. 헌법처럼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만에 “8·31 대책이 미진했다”며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정조준한 3·3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위헌 논란까지 감수하며 재건축 개발이익의 최대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고, 시가 6억원이 넘는 주택 구입 시 대출한도를 확 줄이는 게 골자다.

    한마디로 최근 부동산 시장 불안의 진앙(震央)인 강남권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재건축 단지에서도 “좀더 기다려 보자”는 게 대세다.

    재건축이 당분간 어려워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에 사는 심모(37) 씨는 “2, 3개월 뒤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좀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강도의 부동산 대책을 마련했는데, 시장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널뛰기’ 아파트 값의 역사



    노무현 정부는 2003년 2월 출범 이후 30여 가지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규제 일변도였다. 그러나 이 기간 아파트 값은 대책 발표 뒤에는 주춤했다가 수개월 뒤 다시 고개를 들며 상승하는 전형적인 ‘상승형 W’ 곡선을 그려왔다.

    강남구를 보자. 국민은행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강남구의 전월 대비 아파트 값 상승률은 4.4%였다. 전월 대비 평균 4.4% 올랐다는 것으로 2% 이상이면 평균 이상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이에 정부는 그해 5월23일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투기과열지구 내 주상복합아파트의 분양권 전매 금지와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기준 강화가 요지였다. 이후에도 재건축 시 전체 가구의 60% 이상을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로 짓도록 하고(9월5일), 재건축 조합설립인가 후 조합원 명의변경을 금지(12월31일)하는 조치들이 잇따라 나왔다.

    이로 인해 강남구 아파트 값은 떨어졌다. 그해 11월 전월 대비 아파트 값 상승률은 -2.8%로 떨어졌고, ‘마이너스 상승률’ 기조는 2004년 중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4년 11월10일 정부는 대표적인 재건축 지역인 강남구·송파구·강동구를 주택거래신고지역에서 해제했고, 2005년 1월26일에는 서울시가 재건축 안전진단 간소화를 발표했다.

    그러자 잠자던 집값이 다시 꿈틀거렸고 2005년 2월에는 전월 대비 상승률이 2.8%로 치솟았다. 정부는 부랴부랴 그해 4월 부실안전진단에 대한 정부의 직권조사를 가능토록 했지만 집값은 그해 6월 6.0%까지 올랐다. 그래서 나온 게 8·31 부동산 대책이다.

    이후 치솟던 강남 아파트 값도 2, 3개월 동안 떨어졌다. 그해 9월에는 -1.1%, 10월에는 -1.3%의 전월 대비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11월 서울시 안팎에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총 건물 면적)과 층수를 높이려 한다는 말이 나오고, 정부가 “허용할 수 없다”면서도 별다른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자 집값은 또 올랐다. 올해 초에는 평균 2.0%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이에 3·30 대책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부(김대중 정부 포함)의 부동산 정책 중 가장 아이로니컬한 면 중 하나는 규제와 동시에 엄청난 공급 및 개발 정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 주자 격은 판교신도시다. 정부는 2001년 6월 경기 성남시 판교동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키로 결정했다. 당시 명분은 ‘강남권 대체 주거지역 개발’이었다. 판교 개발이 본격화되자 주변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판교발(發) 부동산 광풍’이 몰아친 것이다.

    2004년 시작해 2005년부터 본격화된 판교 광풍은 인근 용인시를 정점으로 분당·과천·평촌·의왕 등 수도권 일대 집값을 올렸고, 그 여파는 서울 강남권에까지 미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래전부터 ‘택지개발 지구 0순위’로 꼽힌 판교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분당·용인과 함께 백화점, 종합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강남권까지 ‘신도시 벨트’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판교 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두 차례나 판교 분양 일정을 미루는 등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해 더 이상의 판교발 집값 상승을 막는 대책도 내놨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부동산 규제 vs 판교’의 대결은 판교의 압승으로 기운 지 오래다.

    집값 잡을 방법은 있나

    최근 강남권 집값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는 아파트가 도곡동 도곡렉슬아파트. 이 아파트 단지에는 한 그루에 3000만원을 호가하는 소나무 등 고목 20그루가 심어져 있다. “주민들이 최고를 원하는데 나무도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게 시공사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쌍용건설 측의 설명이다.

    수많은 규제와 세금 직격탄에도 강남권 아파트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높아진 소득 수준과 병행하는 주거 수준 상향에 대한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거주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정책연구실장은 “분명한 흐름은 강남권 사람들은 ‘명품 아파트’ ‘금딱지 아파트’를 갈수록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세금 폭탄으로 옥죄고 재건축을 어렵게 하면 할수록 강남권 아파트의 희소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일부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8·31 대책으로 내놓은 송파신도시로 강남권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장 실장의 설명이다.

    “송파신도시가 지어지면 5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생기는데 이 중 52%는 임대아파트이다. 이 중 상당수는 또 국민임대아파트다. 단지 안에 한 그루에 3000만원짜리 소나무를 심는 주민들이 송파구 언저리에 있는 임대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왜 옮겨가겠나. 결국 상향 조정된 주거 욕구를 따라가려면 강남권 재건축을 활성화해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하고 이를 통해 집값을 낮출 수 있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재건축이 강남권의 실질적인 아파트 공급원이라는 데에는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정부 일각에서도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다. 경제부처의 K 이사관은 최근 기자에게 “재건축을 무작정 묶어두면 강남에 아파트가 모자란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하지만 정부가 어떻게 재건축을 그냥 둘 수 있나. 이는 정책적 판단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쯤 되면 해결책에 근접한 대안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벌써 “3·30 대책의 후속탄은 뭐냐”는 수군거림이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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