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7

2006.03.21

내가 500원에 복제되었어요

  • 이광형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 khlee@biosoft.kaist.ac.kr

    입력2006-03-20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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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500원에 복제되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인 조카가 전화를 해왔다. 자신이 복제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리니지’ 게임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곳에 들어가 보니 자기 이름이 등록돼 있고 심지어 게임 고수로 이름나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자기를 복제했고, 그 복제된 자기가 게임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 실험 논문 관련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더니 초등학생 입에서도 어렵지 않게 인간복제라는 말이 나온다. 조카 녀석이 말하는 사이버 세계에서의 인간복제는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현존하는 사람임을 규정하는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있으면 계정을 만들 수 있는데, 이로써 바로 사이버 세상에서는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인터넷에서의 명의도용 사건도 이런 종류의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자주 써내는 개인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은행이나 인터넷회사에 보관된 정보를 유출시켜 거래하는데, 중국에서 1건당 500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한편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을 잘하면 상품으로 도끼, 칼 등의 무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무기를 가지면 더 높은 수준의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무기를 갖고 싶어한다. 심지어는 몇십만 원씩 주고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중국의 게임 고수들은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리니지 게임에 가입하고 게임을 해서 상품을 받는다. 이렇게 받은 상품을 물가가 비싼 한국에서 팔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중국 고수들이 자국에서 서비스되는 리니지를 이용하지 않고, 한국 리니지에 접속하기 위해 한국인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처럼 타인의 이름을 도용해 가입한 수가 14만명이라니 놀랍다.



    이번 대규모 명의도용 사건을 들여다보면 첨단기술이 만들어낸 미래 코드를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첫째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기술 수준이 과연 높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게임은 한국과 미국 제품이라고 한다. 우리 20, 30대 젊은이들이 만든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즐기는 것이다. 이는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게임을 구성하는 콘텐츠도 탄탄하고 글로벌화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는 게임 속에서 무기를 거래한다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 현실 세계의 돈으로 거래된다니 놀랍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개인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해 사고판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게임의 흥미를 더해 게임산업의 발달을 위한 촉매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 개인 정보 인증수단 개발 필요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것은 그동안 개인정보 관리에 무신경하고 너무 소홀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개인정보의 제공을 요구받는다.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할 때나 홈쇼핑에서 물건을 살 때도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제공된 정보가 팔린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카 표현대로 하면 내가 500원에 복제된다는 말이다.

    이번 사건이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곳곳에서 본인임을 인증하거나 중복 사용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쓰지 않게 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정보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하는 제반 제도도 구축돼야 하겠다. 더욱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하는 대체 인증수단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특정 목적과 기간에만 유효한 대체 인증번호를 만든다면 개인정보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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