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특집 | 미리 가본 ‘트럼프 월드’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 미·러 신데탕트 시대 여나

최신예 무기 개발 경쟁,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군사적 대치에 변화 가져올지 주목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11-21 13: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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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보다 일을 더 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유세 때 푸틴 대통령을 칭찬한 발언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는 그동안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극도로 악화됐다. 특히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이 때문에 양국이 ‘신냉전(New Cold War)’에 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보다 푸틴 대통령에게 동조하는 발언을 해왔다. 7월 트럼프는 “크림반도 주민은 차라리 러시아에 속해 있는 것을 선호한다”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옹호했다. 트럼프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시리아 반군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나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알아사드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하고 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하자 러시아 증시 급등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주장해온 트럼프를 좋게 평가해왔다. 트럼프를 “특출하고 재능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푸틴이 서방국가 지도자들에게 찬사를 보낸 것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러시아 국영언론은 그동안 미국 대통령선거(대선) 과정을 보도하면서 일방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크렘린궁의 지시에 따라 보도 기준을 정해왔다. 러시아 국민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러시아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4%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한 날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한 것과 달리 러시아 증시(MICEX)는 2.2%나 급등했다. 푸틴은 트럼프 당선 직후 전 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푸틴은 축전에서 “양국관계가 개선되고 국제 현안 등에서 상호 협력하길 희망한다”며 “양국의 건설적인 대화가 양국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트럼프와 푸틴은 ‘브로맨스(bromance)’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해왔다. 브로맨스는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한 신조어로, 남자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를 뜻한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이 서로를 치켜세우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행세하고 있다’면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푸틴에겐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푸틴과 러시아 당국이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는 이유는 트럼프가 추진할 외교·안보 정책이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EU의 경제제재로 국방예산을 대폭 줄이는 등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미국과 EU 측에 경제제재를 해제해달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구해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경제제재 조치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면 러시아로선 호박이 덩굴째 들어오는 셈이 된다.

    게다가 트럼프는 러시아와 대립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고 공언해왔다. 나토는 최근 러시아의 옛 소련 영토를 향한 팽창과 중·동유럽 지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 확대 등을 크게 우려해왔다. 이 때문에 나토는 내년 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를 비롯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4개국에 병력 4000명을 배치키로 했다. 미국은 이와 별도로 동유럽에 6000명 규모의 중무장 여단 병력을 파견할 계획이다.

    트럼프는 이런 계획과 반대로 ‘나토무용론’을 제기하며, 나토의 한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회원국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나토협약 제5항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IS 격퇴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축출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이런 트럼프의 친러시아적인 발언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트럼프와 푸틴이 외교정책에서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 경탄할 정도”라고 밝혔다.



    개인적 성향과 스타일 비슷

    트럼프는 2013년 러시아 부동산 재벌 아라즈 아갈라로프와 손잡고 모스크바에서 미스유니버스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푸틴은 트럼프로부터 초청을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푸틴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했다.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서로 친밀감을 보이는 이유는 개인적 성향과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퉁명스럽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며 ‘마초(macho)’ 이미지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초는 스페인어로 남자를 뜻하지만, 남성적 기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남성우월주의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3번이나 결혼한 트럼프는 그동안 여성 비하 발언과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았다. 2014년 이혼한 푸틴은 여성 편력으로 악명이 높다. 알렉산드르 바우노프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분석가는 “푸틴은 개인적으로 트럼프를 알지 못하지만 일반 서방 정치인과는 다른 트럼프의 행동과 말에 호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가 세금 명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대부분 푸틴 후원자로, 정경유착을 통해 돈을 벌어왔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트럼프와 푸틴이 앞으로 밀월관계를 맺을 경우 국제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최근 들어 핵무기를 비롯해 최신예 무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은 또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첫 번째 시험대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러시아 국경 인근에 배치한 나토군 철수 여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비판적인 데다, 나토와 관계를 중시한다. EU와 나토 회원국도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신의 탁월한 협상력으로 푸틴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푸틴도 만만치 않다. 푸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그루지야(현 조지아)를 침공했고, 크림반도를 집어삼킴으로써 관계 개선을 기대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뒤통수를 쳤다. 국익만 추구하겠다고 공언해온 두 지도자가 양국의 ‘신(新)데탕트’(de′tente·화해) 시대 개막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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