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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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대표 꽃미남 킬러로 ‘연기 본색’

  • 입력2006-03-20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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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 대표 꽃미남 킬러로 ‘연기 본색’
    우리는 거울 앞에서 수십 분을 허비하며 이 옷 저 옷을 입어봐도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데, 그는 아무 옷이나 걸쳐도 그대로 ‘그림’이 된다. 우리가 이발하고 면도하고 무스 바르며 이른바 ‘때 빼고 광내는’ 동안 그는 무심히 세수만 하고 맨 얼굴로 등장한다.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모두들 황홀해하며 눈이 부신 듯한 표정이다. 이거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를 보고 있으면 “오, 신이시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영화 ‘비트’를 찍으면서 유오성은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처음 봤다”고 했고, 그를 처음 본 순간 남희석은 “그에게서 광채가 났다”고 했다. 신동엽은 “심장이 멎을 뻔”했다고 말했고, 조인성·권상우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인가? 바로 정우성. 그는 한국 꽃미남의 대명사다. 186cm, 73kg 같은 수치로는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광채가 그에게 존재한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94년 ‘구미호’로 데뷔 … 97년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 부상

    정우성은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다. 데뷔작에서는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호된 지적을 받았지만 드라마 ‘아스팔트의 사나이’(1995년), ‘1.5’(1996년), ‘곰탕’(1996년) 등을 통해 인기를 얻어 ‘본 투 킬’(1996년)로 스크린에 되돌아왔다. 정우성이 우리 시대 청춘의 아이콘이 된 것은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년)에서 민 역을 맡으면서였다. 충무로 길 시사실에서 그 영화 시사회를 본 뒤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비트’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임창정·유오성 등과 함께 차를 마셨는데, 정우성은 고독한 청년의 이미지보다는 수줍고 장난꾸러기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와 공연하며 ‘비트’에서 쌓은 이미지를 연장시킨다. 그가 맡은 도철 역은 이정재가 맡은 역에 비해 훨씬 착하고 순진하다. 전직 권투선수로서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는 착한 남자를 연기하는 정우성을 보며 그의 실제 모습과 가장 흡사한 캐릭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령’은 그의 강인한 남성적 캐릭터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심해의 잠수함 속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생명인 그 영화에서 정우성은 마초 이미지의 대명사 최민수와 부딪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다. 자신이 맡은 역의 감정을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세상을 잘 몰라 내가 맡은 인물들을 딱딱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풍부해지니까 내가 맡은 역을 표현하는 데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유령’ 이후 정우성은 스스로 침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무사’(2001년), ‘똥개’(2003년)가 있었지만 2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은 것이다. 각각 김성수, 곽경택 감독의 작품으로 나름대로 가치는 있었지만, 정우성의 필모그래피 맨 앞자리에 등장할 영화는 아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진입하는 시기. 어쩌면 꽃미남 남자배우로서는 최전성기에 놓여 있을 그 시기, 정우성은 오히려 영화와 멀어졌다. 그가 다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가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면서였다.

    충무로 대표 꽃미남 킬러로 ‘연기 본색’

    ‘데이지’

    올해 들어 정우성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우성과 절친한 관계이며 현재 그가 소속되어 있는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HQ의 아이필름이 제작한 ‘새드무비’(2005년)에 이어 ‘데이지’가 개봉하며, 하반기에는 ‘중천’이라는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온 정우성은 “올해 말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겠다”고 말했다.영화감독 정우성. 이미 그렇게 낯선 단어는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러브 비 플랫’이라는 단편을 찍은 바 있다. ‘천장지구’ ‘열혈남아’ 같은 홍콩 누아르의 영향을 받아 고독한 킬러의 이미지에 스스로 몰입한 이후 그의 꿈은 킬러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에서 그가 맡은 킬러 박의는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배역이었다. “‘비트’ 이후 내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박의라는 이름이 한국 이름 같지 않게 조금 낯설다고 말하자, “쉽게 굴하지 않는 어떤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 의외로 멜로가 드물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꽃미남이며 청춘의 아이콘인 그가 왜 그동안 멜로 영화를 기피했을까? 빛나는 얼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후 멜로 영화만 찍고 있다. “멜로 영화를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다. 늘 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무비’에 이어 연달아 멜로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각 영화마다 맡은 역이 다르고 표현되는 방식 또한 다르다. ‘데이지’를 찍으면서 한 인간으로서 사랑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데 대해 깊이 생각했다.”

    CF 커플 전지현과 연기 호흡 …‘고독한 킬러’는 가장 하고 싶었던 역할

    CF 속에서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지만, 정우성-전지현 커플이 영화를 찍은 것은 처음이다. 순간적인 임팩트가 강한 CF와 달리 영화는 서사구조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반 촬영 때는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곧 편해졌다고 했다. 부담감이 컸으나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게서 그 이미지를 기대하기 때문에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깰 수 없는 것을 깨기 위해 일부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다”는 그의 말은 그가 무척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 사람의 위대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가 형성한 청춘의 아이콘은 이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로 무장한 후배들이 등장하고 있고, 청춘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대로 빛나기 어려운 법이다. 고독의 수사학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 사람의 배우로서 기억될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정우성의 문제는 그의 캐릭터가 처음부터 유통기한을 가진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 시간을 연장해야 하는 것이 배우의 운명이라면,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작품 선택을 보면 그런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확대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심화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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