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7

2006.03.21

“통합의학만이 성인병 잡습니다”

가톨릭대 의대 변광호 교수 “양방과 대체의학 혼용해야 몸과 마음 토털 케어”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팀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6-03-15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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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의학만이 성인병 잡습니다”
    30대 중반의 직장여성 L 씨는 통증으로 느낄 정도로 자주 손발이 저리고 최근 들어서는 어지럼증까지 찾아왔다. 얼마 전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아봤지만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일반 건강검진에서 자신의 병증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서울에서 유명한 종합병원 검진센터를 찾아 다시 정밀검진을 받았다. 담당의사의 결론은 수치상 건강한 편으로 나왔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 그러나 L 씨는 지금도 고통스러워한다.

    40대 후반의 주부 P 씨는 지금까지 살이 좀 찐 것 외에는 매우 건강하다고 자부해왔다. 특별히 신체부위 중 어느 곳이 아프다거나 약하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건강검진 결과 날벼락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고지혈증과 뇌경색이 있으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 겉으론 여전히 건강해 보이는 P 씨는 괜히 검사를 받아 우울증까지 생겼다며 병원 검진을 못 미더워하는 눈치다.

    가톨릭대 의대 강남성모병원의 변광호(64·CMC라이프스타일센터 소장) 교수는 L 씨와 P 씨는 각기 증상은 다르지만 둘 다 ‘미병(未病) 증후군’을 앓는 환자라고 진단했다. L 씨가 자각증상은 느끼되 검사상 정상치로 나오는 ‘주관적 미병 환자’라면, P 씨는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하되 검사상 이상이 발견되는 ‘객관적 미병 환자’라는 것. 변 교수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미병 상태에서 성인병 진행 … 질병 양상도 복합적

    “지금까지 서양의학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이원론으로 해석해왔습니다. 검사상 이상이 발견되면 ‘질병’이고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에서는 건강과 질병 사이에 미병, 즉 ‘반건강(半健康)’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삼원론으로 보고 있어요. 따라서 이에 대한 치료술 역시 약물 복용, 수술 같은 전통적 방법 외에 영양요법, 운동, 명상 같은 보완 대체의학적 방법을 혼용하는 통합의학적 처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성인병의 대부분이 미병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질병의 양상도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변 교수의 주장이다. 따라서 성인성 질환이 진행 중인 환자를 위해서는 한의학과 대체의학의 유용한 점을 도입해 치료하는 통합의학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

    국내 통합의학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변 교수는 현재 서울 서초동 CMC라이프스타일센터 소장을 맡아 통합의학 치료술을 펼치고 있다. 그는 성인성 질환이 대부분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고 8주간의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생활습관을 올바르게 고치고 질병에서 해방되도록 각종 처방을 내린다.

    이 프로그램을 거친 49세 여성 B 씨는 프로그램 참여 전과 후의 생활이 놀랄 만큼 변했다고 밝힌다. 키 160cm, 몸무게 89.5kg의 비만형인 B 씨는 원인을 모르는 허리통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왔고, 무리한 다이어트로 요요 증상까지 겪었던 환자다. 극심한 요통을 고치려 침과 물리치료를 숱하게 받았음에도 효험을 보지 못한 B 씨는 변 교수를 만난 이후 자신에게 맞는 명상과 운동·영양요법을 처방받고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한다.

    “통합의학만이 성인병 잡습니다”
    “제가 종교인이긴 하지만, 마음이 육체의 병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명상요법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복부지방을 해소했고, 음식을 먹을 때(영양요법)나 걸을 때(운동요법)도 명상을 했어요. 이를 테면 먹을거리인 건포도 몇 알을 손으로 만져보고, 귀에도 대어보고, 냄새도 맡아보면서 건포도와 마음의 대화를 나눈 뒤 감사한 자세로 건포도가 식도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먹는 명상’을 하거나, 걸을 때 주변 사람들이 잘 되기를 기도하는 ‘걷는 명상’ 등을 하면서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B 씨는 이런 삶을 실천하면서 허리통증의 원인을 스스로 찾아냈고, 어느 순간 감쪽같이 통증이 없어졌다고 한다. 몸무게도 20kg이나 빠져 온몸이 가벼워지자 생활에 활력이 넘쳤다고 한다. B 씨는 자신의 체험이 너무나 신기해 친구에게 알렸고, 그 친구 역시 놀라운 효과를 보았다고 귀띔한다.

    변 교수는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환자 개인에게 맞는 통합의학적 처치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이 프로그램에는 전문의의 건강위험도 평가와 함께 심리학자에 의한 심리분석과 정신건강 상태 평가, 영양학자의 식습관 및 영양 평가, 운동처방사의 체력요인 평가 등이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 맞춤형 처방이 이뤄진다고 한다. 명상요법만 하더라도 그렇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사람에게는 ‘앉는 명상’이 치료법이 될 수 없으므로 ‘움직이는 명상’ 요법이 제공된다.

    변 교수는 자신이 주창하는 통합의학은 서양의학과 한의학, 보완 대체의학 중에서 효과가 뛰어나면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에게 거부감이 적은 것들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침술, 허브(향기), 메디테이션, 카이로프랙틱(혹은 지압), 기전이 입증된 기능성 식품을 위주로 하는 영양요법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변 교수는 “현재 일부 병·의원에서 과학적 증명 과정이나 축적된 데이터가 없고 서양의학과도 완전히 분리돼 있는 보완 대체의학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진정한 통합의학이 아니다”고 거부감을 표한다. 그는 또 “통합의학이야말로 우리 의료계에서 이원화돼 있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일원화될 수 있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변 교수의 이런 취지에 호응해 의대와 한의대 교수들을 주축으로 3월21일 통합의학학회가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마음이 건강에 중요한 역할

    가톨릭대 의대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있던 변 교수가 통합의학론자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미국 의학계에 ‘면역학 바람’이 불던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정신신경면역 분야에 매료돼 연구에 몰두하면서 서양의학에서 놓치고 있는 ‘마음(Mind)’이 건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마음의 의학’ ‘스트레스 면역학(Stress-immunology)’이라 불리는 심신의학을 연구한 뒤 귀국한 그는 대덕 생명공학연구원장 등을 거치며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다 2000년경 미국에서 통합의학을 접하고는 모교인 가톨릭대 의대에서 통합의학을 펼쳐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변 교수가 국내에서 통합의학을 주창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돼가고 있는 것에 비례해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질병으로 이행되기 전인 미병, 즉 반건강 상태에서 효과적인 치료와 예방을 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환자들이 삶의 질에 눈뜨면서 더욱 고급스러운 치료를 원하고 있는 반면 우리 의료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기존 서양의학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보건의료 비용의 50% 이상이 비공식의료 분야로 들어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몸의 토털 케어를 주창하는 통합의학은 환자의 욕구와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어요.”

    말하자면 통합의학론은 사람의 건강과 나라의 건전한 발전을 기원하는 노(老)교수의 애국심의 다른 표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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