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7

2006.03.21

전시작전권 환수하면 철통 자주국방?

참여정부, 대미 자주파 입김으로 조기 환수 집착 … 전문가들 “한-미 동맹 변화 대비책 세워야”

  • 윤상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sh1005@donga.com

    입력2006-03-15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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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작전권 환수하면 철통 자주국방?

    노무현 대통령이 3월3일 육군사관학교 화랑대 연병장에서 열린 제62기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의 경례에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올해 안에 한-미 양국 간 협의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계획에 합의하겠다.”

    3월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치사를 통해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거론하자 군 안팎에선 예상대로라는 반응이 나왔다. 취임 이후 군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강조한 전례를 볼 때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임기 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는 군 통수권자의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돼 더욱 관심을 모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안보 분야의 최대 ‘화두’였다.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의 첫 불씨를 당긴 것은 물론 노 대통령. 2003년 2월 취임 직후 노 대통령은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한 지 44년 만인 1994년 평시작전권은 한국군, 즉 합참의장에게 넘어왔지만 전시작전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 현실을 비판한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한미연합사령관도 한-미 양국 통수권자의 지휘를 받아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므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노 대통령은 이후에도 “전시작전권 환수는 자주국방의 핵심 요소이며, 한국군은 10년 내에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 군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노 대통령 “올 안에 환수 계획 합의”



    군 통수권자의 뜻을 받들어 국방부도 일련의 후속조치들을 착착 추진했다. 유사시 북한군 장사정포를 제거하는 대(對)화력전을 비롯한 주한미군 10대 임무를 올해 말까지 한국군이 넘겨받기로 2003년 미국 측과 합의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주한미군의 다른 임무도 추가로 이양받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총 62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병력 감축과 군 구조개편, 첨단전력 확보를 뼈대로 한 국방개혁을 2020년까지 끝내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같은 시기 미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미국 측에 전시작전권 이양 협의를 공식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한 달 뒤 열린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은 전시작전권 환수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appropriately accelerate)’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분명한 것은 전시작전권 환수가 2015년보다는 앞당겨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환수 시기까지 언급해 그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한-미 간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질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며 “하지만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이토록 전시작전권 환수에 집착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참여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한 축인 ‘대미(對美) 자주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탓으로 보고 있다. 대미 자주파는 전시작전권을 한미연합사령관, 즉 주한미군이 계속 행사한다면 한반도 유사시 모든 군사적 조치가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고, 이는 곧 한국의 ‘운명’이 미국의 뜻대로 결정되는 위기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전시작전권 환수는 자주국방의 차원을 넘어 유사시 한국의 주권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인 만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지난해 4월 한-미 군 당국이 북한 급변 사태 시 군사적 대응책을 담은 작전계획(OPLAN) 5029의 수립을 추진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반대로 무산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NSC는 작계 5029가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국방부에 작계 수립 중단을 지시했고, 이후 한-미 군 당국은 작계 5029를 개념계획(CONPLAN) 차원에서 유지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자주국방의 명분에만 집착해 전시작전권 환수를 주장하는 데 대해 군 안팎에서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전시작전권 환수로 초래될 한반도 방위태세와 작전지휘체계 등 한미동맹 전반의 엄청난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연합사 해체 등 연쇄반응 예상

    전시작전권 환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주한미군의 대규모 철군, 정전협정의 폐기 등 ‘연쇄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각각의 사안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3월7일(현지 시각) 미 상원군사위원회 국방예산 심의청문회 자리에서 “전시작전권이 한국에 이양되면 미군은 해·공군 중심으로 한국군의 지원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며 지상군의 대규모 철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한미연합사가 완전 해체되거나 ‘한미 전쟁기획단’ 같은 상설 군사협조기구로 대폭 축소될 경우 지금과 같은 한미 연합지휘체계는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전시작전권까지 한국군에 반환할 경우 미국이 지금처럼 한국 방위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군 내에선 전시작전권 환수의 전제조건으로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과 미 증원군의 신속한 지원체제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이 필요한데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겨준 상황에서 ‘자동개입’을 문서로 보장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가 전시작전권을 마치 미국이 ‘강제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도록 유도한 측면이 커 동맹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따라서 앞으로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더라도 상당 기간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통해 대등한 연합작전 지휘체계를 유지하는 게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시작전권 환수는 언제쯤 가시화될까. 한-미 양국은 관련 협상을 통해 올해 제38차 SCM에 환수를 위한 로드맵을 보고할 계획이어서 늦어도 연말에는 구체적인 환수 시기와 절차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개략적인 환수 시기를 2015년 전후로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군의 능력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주변국 정세 등 관련 변수에 따라 환수 시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게 많은 군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특히 지난해 제37차 SCM 때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는 한-미 모두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될 때 할 것”이라며 신중론을 편 것은 한국의 입장과 상당한 괴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의 한 관계자는 “전시작전권 환수는 반세기 한미동맹의 틀과 성격을 바꾸는 중대 사안인 만큼 능력과 여건을 철저히 고려해 추진돼야 하는데, 한국은 지나치게 의욕과 명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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