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6

2006.03.14

단체전 불패 신화 ‘빈축’에 무너지다

이창호 9단(백) : 요다 9단(흑)

  • 정용진/ 바둑평론가

    입력2006-03-13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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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전 불패 신화 ‘빈축’에 무너지다
    무너진 단체전 불패 신화! ‘철(鐵)의 수문장’ 이창호 9단이 농심신라면배 최종 결승전에서 실점하면서 한국의 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농심신라면배의 전신인 91년 SBS세계바둑 최강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1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내주지 않고 독주해왔다. 농심신라면배에서 14연승 무실점을 자랑하며 골문을 지켰던 ‘주장’ 이창호 9단이기는 했지만 근래 후배들의 공세에 부쩍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불안감을 안기더니, 자신의 ‘천적’으로 불리던 요다 노리모토 9단을 맞은 부담 탓이었는지 때 이른 패착으로 일본에 우승컵을 내줬다.

    한-일 바둑계의 황태자 시절부터 라이벌로 각축을 벌였던 두 기사답게 초반부터 팽팽한 기세 대결을 펼치고 있다. 흑1로 빠지고 3에 끊으면서 반상이 아연 험악해졌다. 누군가는 부러질 판이다. 백4로 단수 치자 흑도 5 이하로 한껏 버텼다. 는 이어진 수순. 백16까지의 진행을 보고 다들 요다가 수렁에 빠졌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놀랍게도 흑은 17이라는 기막힌 ‘빈축’의 묘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은 A의 공배가 한 수 있어서 축이 안 된다고 본 자리였다. 이어 백B의 양단수에는 흑C로 이어 그만…. 백C로 단수치는 것도 흑A에 이어 이 수상전은 백이 안 된다. 여기서 바둑이 끝났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거슬러 올라가 흑 로 끊었을 때, 백은 1의 빈삼각으로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면 백11 때 흑이 A에 젖히는 수가 없어 B의 약점이 단박에 드러난다. ‘빈삼각’은 우형 중의 우형이라 프로들은 본능적으로 피한다.



    하지만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천하의 이창호 9단이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일진으로 봐야 할까 세월 탓으로 봐야 할까. 173수 끝, 흑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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