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6

2006.03.14

“숙취인가요? 보이차 한잔 드시죠”

중국 茶 전도사 박현 씨 “오행 기운과 쓰임새 다른 茶는 현대인 건강 지킴이”

  •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입력2006-03-08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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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취인가요? 보이차 한잔 드시죠”
    “제갈공명이 남방을 정복하기 위해 남나산을 넘을 때, 병사들이 오랜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데다 눈병까지 퍼져 더 이상 행군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러자 제갈공명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위에 꽂았고, 그 지팡이는 금세 차나무로 변했죠. 제갈공명이 병사들에게 찻잎을 따서 물에 끓여 마시게 했더니 신기하게도 병사들이 모두 기력을 회복하고 눈병도 나았답니다.”

    한국학연구소 박현(48) 소장은 옛 만주어, 몽골어, 중국어를 읽고 쓰는 데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소문난 중국 차 애호가다. 2월7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칠금맹획(七擒孟獲)의 고사로 유명한 제갈공명의 남방 정복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차의 효용을 설명했다.

    2002년부터 중국과의 학술·문화·경제 교류에 천착해온 그는 차를 비롯한 중국의 의식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중국 차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중국 차에 대한 그의 열정은 중국의 차 전문가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부친의 영향으로 갓난아이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그가 하루에 마시는 차는 2ℓ에 달한다.

    “국민들이 차를 즐겨 마시면 나라가 흥하고, 술을 즐겨 마시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차에 매료되면 하루도 차를 거를 수 없어요. 차를 마시면 사람이 바뀝니다. 차는 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힘도 있지요.”

    중국인들은 신접살림을 차릴 때 ‘개문칠대사(開門七大事)’라고 해서 쌀, 땔감, 소금, 기름, 간장, 식초, 차를 필수품으로 챙긴다고 한다. 이 가운데 차는 쌀 다음으로 중요한 품목.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차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기호식품 이상의 ‘특별한 무엇’이었다.



    중국 신화의 3황 가운데 하나인 신농씨는 백성들에게 농사와 목축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의 모든 풀을 직접 먹어보며 독풀을 가려내다가 그만 독에 중독이 됐는데, 우연히 찻잎을 씹게 돼 해독 효과를 보고 생명을 구했다고 전한다. 이렇듯 찻잎의 최초 모습은 ‘약초’였다.

    “중국 사람들은 3600~3700개에 달하는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수만큼 차가 있다고 보면 돼요. 중국인들이 밥 다음으로 차를 중요하게 생각해온 이유는 차가 ‘약’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차의 성질이 냉하다고 해서 ‘미냉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환자가 고열에 시달릴 때 차를 마시게 하면 열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어요. 이밖에도 차는 종류에 따라 소화제, 이뇨제, 혈액순환제, 거습제, 거냉제의 기능도 합니다.”

    중국의 차 재배 면적은 세계 1위다. 차 생산량도 인도 다음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명차는 700종 남짓하며 명차의 이름에는 은(銀), 봉(峰), 호(毫), 춘(春), 첨(尖), 녹(錄), 취(翠), 설(雪), 운(雲), 엽(葉) 등 10가지 글자가 사용된다.

    “숙취인가요? 보이차 한잔 드시죠”
    “중국 차는 종류가 너무나 많고 그것을 분류하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해요. 우려낸 차의 탕색으로 나누기도 하고, 발효나 살청(殺靑) 정도에 따른 제다법으로 갈래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오행(五行)’에 따른 분류법이 차의 바탕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합니다. 오행분류법은 차가 사람과 어떻게 만나 하나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 마음 열어주는 힘을 가진 차”

    ‘동양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氣)의 작용’을 살피는 것이 차를 말할 때 우선시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행에 따라 차의 기운과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질을 이루는 다섯 가지 성질, 즉 물(水)·불(火)·풀(木)·쇠(金)·흙(土)을 오행이라고 하는데 물은 ‘내림’의 성질을 가리키며, 불은 ‘올림’의 성질을, 풀·쇠·흙은 각각 ‘오르내림’ ‘움츠림’ ‘풀림’의 성질을 갖는다. 또 그 성질은 빛깔과 이어지는데 물은 검은빛, 불은 붉은빛, 풀은 풀빛, 쇠는 흰빛, 흙은 누른빛을 띠게 된다.

    따라서 오행분류법에 따른 차의 종류는 ‘내림’을 주된 성질로 하는 흑차, ‘올림’을 주된 성질로 하는 홍차, ‘자라남’을 주된 성질로 하는 녹차, ‘풀림’을 주된 성질로 하는 황차, ‘움츠림’을 주된 성질로 하는 백차로 나뉜다. 그렇다고 이들 차가 한 가지 성질만 갖는 것은 아니다.

    “오행에서 색은 구체적인 사물의 빛이 아니라 그 사물이 운동을 통해 드러내는 운동 에너지의 표현이에요. 하지만 이런 것은 사물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 물질의 성질일 따름이고, 실재하는 모든 사물은 오행의 성질을 두루 갖추고 있어요. 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풀의 근본 성질이 ‘오르내림’이긴 하지만 이런 성질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풀의 성질이 아닌 다른 네 가지 성질을 차에 적절하게 담아내는 것이죠. 좋은 차를 마시려면 최종적으로 ‘오행의 조화’를 얻어야 합니다.”

    먼저 흑차를 살펴보자. 오래 묵혀 발효시킨 흑차는 자라남의 성질을 최대한 누그러뜨리고 내림의 성질을 극대화한 차다. 대개 여러 모양으로 단단하게 뭉쳐놓음으로써 차에 내재된 자람의 성질이 그 반발작용을 통해 풀림의 성질로 바뀐 차라고 한다. 그래서 좋은 흑차에서는 내림을 상징하는 검은빛과 풀림을 상징하는 누른빛이 함께 우러나는 특징을 보인다.

    “사람의 몸에서 화기를 내려주어 ‘상성하허(上盛下虛)’를 막아주는 것은 검은빛의 효능이고, 독기가 한곳에 모이지 않고 잘 풀려서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은 누른빛의 효능이에요.”

    중국 차의 대표선수라 할 만한 보이차도 흑차의 한 갈래다. 절에 갔을 때 운이 좋으면 스님에게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차가 바로 보이차인데, 이 차의 누른빛(풀림)은 사람의 몸에 열기를 일게 해 추위를 이기게 하고, 검은빛(내림)은 머리에서 술기운을 거두고 생각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빈속에 벌컥벌컥 마실 경우 속 쓰림을 피할 수 없다.

    평소 성질이 급해 소화 장애가 잦은 사람이라면 황차를 주목해보자. 황차는 충분히 자라난 넓은 찻잎을 이용해 만든 차로 살청을 해서 풀림의 기운을 극대화했다.

    “숙취인가요? 보이차 한잔 드시죠”
    “좋은 황차는 금빛에 가까운 누른빛을 띠는데, 사람의 몸에서 중단전 부위의 막힘을 열어 하단전과 상단전의 소통이 수월하도록 도와줘요. 즉 ‘상하불교(上下不交)를 막아주는 차죠. 누른빛이 가진 풀림의 효능 때문에 소화에 좋고, 숨길을 편하고 느리게 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국내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황차로는 철관음과 오룡차(우롱차)가 있다. 특히 지방 분해 작용이 탁월해 다이어트차로 알려진 오룡차는 주부 화병에도 좋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잠자기 전 황차와 흑차를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린 찻잎으로 만들어 약간의 발효와 살청을 통해 자라남의 기운을 극대화한 녹차가 있다. 녹차는 몸의 기운과 정신의 작용을 뚜렷하게 한다. 그래서 녹차를 자주 마시면 걱정과 욕심이 줄어들고 피의 흐름이 맑아진다. 이런 효능 때문에 많은 수행자들이 녹차를 즐겨 마시는 것이다.

    반면에 불을 통한 강한 살청을 통해 올림의 기운을 극대화한 홍차는 수행자보다는 예술가한테서 사랑받아온 차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황차가 제격

    “홍차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성질이 있어 지적인 작업이나 예술적인 흥을 돋우는 기능을 해요. 정신작용을 활발하게 하고, 피로감을 많이 덜어주는 차이긴 하지만 하단전의 기운을 허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어서 수행자들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어요.”

    욱하고 흥분을 잘해 주변 동료들에게 ‘싸움닭’이라고 불리는 사람, 정서적 불안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백차를 이용해보자. 백차는 움츠림의 기운을 극대화한 차로 사람의 생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며, 정서적 불안을 줄이고, 숨을 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백호은침, 백모란이 대표적인 백차로 흑차·황차·홍차와 비교하면 생산량이 극히 적다.

    “숙취인가요? 보이차 한잔 드시죠”

    지인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는 박현(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장.

    그가 들려주는 ‘중국 차 이야기’는 절로 차에 빠져들게 한다. 그는 자격증만 없을 뿐 ‘차 소믈리에’를 넘어서 중의학, 한의학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었다. 실제 그는 몇몇 한의사들과 ‘현대인에게 어떤 차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각종 실험을 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 혹사당한 ‘두뇌’에는 흑차가 이롭고, 스트레스 때문에 고생하는 위장에는 황차가, 하루 종일 앉아 있어 신장 및 방광 기능이 약해진 직장인들에게는 보이차·홍차가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차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차가 술 깨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버릇처럼 마셔대면 비장에 무리가 오고, 황차가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지나치면 폐에 무리가 올 수 있다. 녹차도 지나칠 경우 위장에 탈이 난다. 또 이름난 명차라고 해도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 섞어 마시기를 즐기면 간에 부작용이 생기거나, 두뇌 작용이 급작스럽게 나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

    “한국은 지금 ‘식중독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안심하고 먹을 음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현대인들이 차를 통해 스트레스와 질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내 몸에 좋은 차는 몸이 먼저 알아요. 차의 종류별로 성질을 이해한 후 여러 가지 차를 조금씩 골고루 마시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차 건강법’을 터득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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