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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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

교육학자 오인숙의 실전 가정교육법 “자녀 문제는 분명 부모 탓 … 부모가 우선 변해야”

  • 입력2006-03-08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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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다수 부모에게 자녀교육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 자녀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은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 하지만 가계가 휘청거릴 정도로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고,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녀교육일까? 또,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은 훗날 부모가 기대했던 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주간동아’는 교육학자이자 작가인 오인숙 씨(전 우촌초등학교 교장)의 글을 소개한다. “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라는 오 씨의 주장이 자식을 키우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모가 바른 생각과 처신을 할 때 자식도 그것을 따라 배운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정에서 실천하는 부모는 몇이나 되는가. 새 학기가 시작된 이때, 부모들이 이 글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편집자>
    “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

    심리학자들은 부모가 먼저 변해야 자녀가 변한다고 강조한다.

    매주 토요일 SBS TV에서 ‘내 아이가 변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조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는 아이,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는 아이 등 출연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다양하다. 시청자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심리학자들은 가정의 분위기와 부모를 먼저 변화시킨다. 부모가 변해야 자녀가 변하기 때문이다.

    부모 자녀 간 건강한 의사소통이 ‘선결 과제’

    가정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는 자녀 탓만 하고, 그런 자녀를 변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자녀를 그릇되게 키운 것은 부모 책임이다. 자녀양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자녀를 변화시키려면 먼저 부모가 부모로서의 정체감을 갖고 생활 태도를 바꿔야 한다. 특히 부모로서의 정체감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1995년 기독교 단체인 두란노서원은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표어 아래 ‘아버지학교’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학교의 프로그램 중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반복해 외치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참가자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되풀이할 때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와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단순한 행위 같지만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

    TV 교육 관련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오른쪽)이 엄마에게 야단맞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부모가 의외로 많다. 그런 부모들은 ‘부모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는 어느 자녀의 충격적인 고백이 곧 내 자녀의 고백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로서 성공할 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년 남성이 가장 외로울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자녀들이 모른 척할 때’라는 응답이 50%를 넘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높은 자리와 보수를 보장받는 프로페셔널이라도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밖에 되지 않는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

    학부모들이 자녀의 유치원 등록을 위해 길가에서 밤샘 채비를 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당신은 최고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 결과 ‘행복한 가정’이 29.7%로 가장 높게 나왔고 건강이 29%, ‘즐기는 삶’ 16.8% 순이었다. 행복한 가정이어야 가정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가정은 교육, 보호, 휴식, 오락, 종교의 기능을 갖는다. 이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때 ‘역기능 가정’이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 간에 건강한 의사소통이나 감정교류가 일어나지 않는 가정은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다.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인생을 사는 법과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감성지수가 낮은 ‘성인 아이’가 된다.

    다니엘 골먼의 ‘감성적 지능’이라는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감성지수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평가하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효율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성취하기 위해 그런 정서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감성 능력이다.

    부모는 최초의 교사 ‘불변의 진리’

    자녀들이 최초로 인간관계를 배우는 곳이 가정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부부관계를 통해 타인을 대하는 법과 사랑을 나누는 법, 감정을 적절히 다루는 법을 배운다. “부모는 가정의 분위기를 사랑과 보호와 피난처가 되게 할 책임이 있으며 아이들을 위해 즐거움을 창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루스 필의 말이다.

    자녀의 감성지수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싸움 횟수에 따라 자녀의 지능, 창의력, 병에 대한 저항력이 달라지고,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성장해서도 정신적인 이상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미국의 조너선과 사라의 가문은 가정교육의 모델이 된다. 5대에 걸쳐 많은 유명인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시장 3명, 대학총장 13명, 차관급 공무원 83명, 변호사 139명, 판사 33명, 교수 66명 등을 길러낸 그 가문의 교육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6명의 연구자들이 내린 공통된 결론은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할 때 자녀는 안정감을 얻고 감성지수나 창의력이 높아지며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면서 자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자녀의 힘을 북돋우는 부모의 일 10가지’

    한국청소년상담원 인터넷 사이트(www.kyci.or.kr)에는 자녀교육을 위한 유용한 자료가 많이 있다. 그중 ‘자녀의 힘을 북돋우는 부모의 일 10가지’를 소개한다.

    1. 자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부모도 변해야 합니다.
    2. 벌을 줄 때는 잘못된 행동 자체에만 국한해야 합니다.
    3. 부모의 따뜻한 말은 자녀를 든든히 받쳐주는 기반이 됩니다.
    4. 자녀는 부모가 믿는 만큼 하게 마련입니다.
    5. 한 마디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백 마디 말로 타이르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6. 말은 자녀가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7. 좌절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대화를 통해 길러주어야 합니다.
    8. 부모가 생활 속에서 모범을 보이는 대로 자녀는 배웁니다.
    9.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잘못을 하고 난 후 벌하기보다는 사전에 행동의 방향을 정해줍니다.
    10. 부모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고, 최초의 교사는 부모다. 자녀는 부모가 말하고 행동하고 관계를 맺고 일하는 모습을 모델로 하여 성장한다. 보고 배우는 것을 ‘관찰학습’ 또는 ‘모델링’이라고 한다. 아이의 관찰학습을 연구하기 위해 유치원 아이들에게 인형에 공격을 가하는 필름을 보여준 다음, 필름에서 본 것 같은 인형을 포함한 여러 가지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놀게 해 아동의 행동을 관찰했다. 공격적인 행동을 담은 필름을 본 아이는 같은 시간, 공격성이 없는 필름을 본 아이에 비해 공격적인 행동을 더 많이 했는데,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델이 보여준 행동 이상의 것을 창조해 모델보다 난폭한 행동을 했다. 인간의 모방 능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태어난 지 23일 된 유아가 모델이 입을 오므리거나 벌리고 혀를 내미는 것을 그대로 흉내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역할을 배우고, 딸은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역할을 배운다. 또한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여성을 배우고, 딸은 아버지에게서 남성을 배운다. 부모로서 건전한 모델이 되는 것은 자녀가 육체적, 정서적으로 바르게 성장해 좋은 배우자를 만나 훌륭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교과서다.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인간 행동을 학습으로 본다. 말하는 것, 싸우는 것, 인사하는 것, 텔레비전 켜는 것, 남을 사랑하는 것까지도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학습된 행동이라고 한다. 학습은 좋든 나쁘든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대로 보고 학습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고치려면 부모 자신의 말이나 행동부터 고쳐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누구에게서 가장 상처를 받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대부분이 부모라고 답했다. 부모가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자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중한 내 자녀이기 때문에 깨지기 쉬운 크리스털처럼 조심해서 대하고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로 자녀의 자아 개념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부모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들은 아이는 ‘나는 바보가 아니야’라고 거부하지만, 거듭해서 들으면 ‘나는 바보인지도 몰라’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고, 결국은 ‘그래, 나는 바보야. 바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낮은 자아 개념을 갖게 된다.

    자녀의 무기력한 행동이나 저항적 행동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면 부모는 자신에게 자녀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거나 대화의 기본인 아이에 대한 존경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자존심처럼 자녀의 자존심도 존중해야 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부모는 책망과 지시를, 아이는 변명과 부인만 하게 된다면 자녀는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게 된다. 자녀와 유익한 대화를 하려면 자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우리나라의 고아 수를 묻는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아이는 단지 자신이 고아가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좋은 부모가 좋은 자녀를 만든다”

    J. 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다섯 살 난 아들 제제가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라’를 노래했던 것은 아버지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직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녀의 마음을 읽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녀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먼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예비 중학생들이 학원에서 중학교 교과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정에 최고의 가치를 두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해도 가족 구성원의 변화는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바쁜 부모는 대체로 재산을 성공의 척도로 간주하고, 성공을 중요시하며,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하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자녀에게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 자녀가 원하는 것을 그냥 줘버림으로써 응석받이로 만든다. 아이의 욕구를 다스리도록 가르치기보다 아이의 변덕에 따라 그때그때 욕구를 만족시켜 줌으로써 쉽게 짜증내고 쉽게 좌절하는 아이를 만든다. 또 부모는 자녀에게 많은 것을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바쁜 부모는 바쁜 자녀를 만든다. 부모가 없어도 자녀는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자신이 가르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녀의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놓는다. 부모는 바쁘기 때문에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자녀 또한 바쁘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을 배우지 못한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 배워야 할 덕목으로 신뢰·자율성·주도성·근면성·자아 정체성·친밀감·생산성·자아 통합 등 8가지가 있고, 이것을 제대로 가르칠 때 희망·의지·목적·능력·충성·사랑·배려·지혜가 생긴다고 했다. 자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려면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녀를 바라볼 수 있다면 자녀에 대해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변화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녀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

    미국의 심리치료사인 리처드 칼슨은 “인내력을 갖는다는 것은 설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재 이 순간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을 의미한다. 또 진정한 인내란 상대방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부모만 자녀에 대해 오래 참는 것은 아니다. 자녀 역시 부모에 대해 참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아무도 완전무결한 부모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부모로 변화할 수는 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좋은 자녀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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