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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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리무진 타고 와 전용룸서 ‘나 홀로 쇼핑’

매출 상위 1% VVIP의 세계 … 재벌가 여성·중견 기업인·전문직 종사자가 주류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3-08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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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리무진 타고 와 전용룸서 ‘나 홀로 쇼핑’

    ① 갤러리아백화점 VVIP ‘퍼스널 쇼퍼 룸’ 김미정 실장이 손님이 옷 고르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② 애비뉴엘 문과 도어맨 서비스. ③ 신세계백화점의 패션쇼. ④ 애비뉴엘 ‘멤버스 클럽’. ⑤ 신세계백화점 ‘퍼스널 쇼퍼 룸’. ⑥ 개관 1주년을 맞는 애비뉴엘. ⑦ VVIP 신용카드인 현대 ‘블랙카드’ 회원들의 미술품 옥션 행사.

    강남에 사는 ‘A 사모님’이 강 건너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로 단골을 옮긴 결정적인 이유는 애비뉴엘에서 제공하는 ‘리무진 서비스’ 때문이었다. 전관을 패션 명품 부티크로만 구성한 애비뉴엘은 구매액 상위 5% 중에서도 1%에 해당하는 VVIP들에게 운전기사와 최고급 차량을 제공하는 리무진 서비스를 운영한다. A 사모님은 애비뉴엘에 쇼핑 갈 때도 리무진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동창회 등 ‘직접 운전하면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한’ 모임에 갈 때도 백화점 VVIP 매니저에게 전화를 건다.

    A 사모님처럼 애비뉴엘에서 리무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VVIP는 100명 정도다. 애비뉴엘에서 초청한 유명 인사들과 해외 명품 매출액이 연 5000만원 이상인 초우량 고객들이다. 3월24일 개관 1주년을 맞는 애비뉴엘은 일반인들에게 추상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던 VVIP 소비계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이 유효했음을 입증했다.

    백화점들 뺏고 뺏기는 VVIP 경쟁

    같은 기간 신세계와 갤러리아, 현대 등 4개 백화점 사이에 VVIP 빼앗기와 지키기 경쟁이 격화된 것은 물론이다. 특히 VVIP가 80% 겹치는 롯데와 신세계는 올해 신세계 명품관이 재개관하면 일대 격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VVIP들은 매출에도 기여하지만 입소문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얼마나 많은 VVIP들을 유치하느냐가 백화점과 기업 전체의 이미지를 바꿔놓는다.”



    애비뉴엘 해외명품팀의 한 관계자는 평소 언론을 극도로 기피하는 기업 오너들이 VVIP 유치를 위해 마케팅 전면에 나서고, 사적 인맥을 동원하는 것도 이런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부분 외국생활 경험을 가진 기업 오너들은 지금도 수시로 해외의 백화점들을 둘러보며 외국의 앞선 VVIP 관리 기법을 벤치마킹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VVIP 마케팅을 도입한 데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부부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VVIP는 업체가 엄선한 유명 인사들과 매출액 상위 고객들로 이뤄진다. 유명 인사급 VVIP들은 재벌기업 오너 및 그 가족, 대기업 CEO, 학원 재단이사급 인사, 스타마케팅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연예인들과 유명 예술가 등이다. 하지만 이들이 VVIP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얼굴이 알려지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매우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실질적으로 VVIP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출액 상위 1%를 기록하는 고객들이다. 여기에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재벌가 여성들과 중견 기업인,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그 가족이 포함되는데, 최근에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애비뉴엘 VVIP 멤버십을 관리하는 양유진 실장은 “지금까지 40대 중반 이상의 VVIP 관리에 힘을 기울여왔는데, 앞으로는 20, 30대 VVIP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매니저를 별도로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최근 젊은 VVIP들을 위해 청담동의 대형 바 전체를 세내 댄스파티를 주최했다.

    그러면 VVIP는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받을까. 아직까지 기사와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애비뉴엘뿐이지만, 2005년부터 모든 백화점이 VVIP 멤버만의 공간과 서비스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 ‘멤버스 클럽’이나 ‘퍼스널 쇼퍼 룸’ 등 이름은 다르지만 외국 백화점의 퍼스널 쇼퍼 룸과 호텔의 멤버스 클럽을 결합한 형태다. VVIP만 사용할 수 있는 이 방은 일반 손님들은 찾기도 힘들다. 애비뉴엘의 VVIP룸은 로코코 풍에 현대적인 요소를 더한 화려한 인테리어로 유명하고, 갤러리아는 세련된 동양적 분위기를 고수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신세계 본점의 VVIP룸은 상대적으로 모던하고 단순하다. 모든 백화점이 상업화랑과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해, VVIP룸에는 수천만~수억원대에 이르는 세계적 작가의 미술작품이 놓인다.

    VVIP룸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위한 쇼핑 공간이다. VVIP가 원하는 상품이나 스타일을 매니저에게 주문하면, 매니저는 VVIP의 취향과 용도 등을 고려해 원하는 시간에 보통 20개 이상의 아이템을 준비해놓는다. VVIP는 이곳에서 혼자 옷을 입어보거나 상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손님 한 사람이 1000만원 안팎 구입

    한 강남권 백화점의 VVIP 매니저는 “손님 한 사람이 1000만원 안팎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시계 등 보석류를 사는 고객은 1억원대를 넘겨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VVIP들은 매니저를 통해 어떤 물건이든 ‘스페셜 오더’를 할 수 있다.

    VVIP는 이 방에서 생일파티나 소규모의 사적 모임을 열 수도 있고, 백화점이 VVIP의 생일모임을 주최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최상급 음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VVIP는 또 소규모로 열리는 트렁크쇼와 다양한 강좌, 크고 작은 파티에 우선적으로 초청받는다. 트렁크쇼는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 쇼로 모델과 상품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직접 착용해볼 수도 있다. 백화점 영업이 끝난 뒤 VIP와 VVIP 등만 쇼핑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는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애비뉴엘은 아예 낮 2시에 문을 닫고 일반인들은 내보낸 뒤 초청장을 가진 VIP만 입장시키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VIP만 입장하는 날의 매출은 평일 매출의 3, 4배 이상이라는 것이 매니저들의 말이다.

    행사에 참석한 한 백화점 VIP는 “브랜드 매니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참석 권유 전화를 하고, 직접 에스코트를 하기 때문에 구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별하게 대접받는다는 기분 때문에 충동적으로 구매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한 VVIP 매니저는 “1년 동안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며 분석해본 결과 VVIP들은 관리의 유무에 따라 매출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VVIP 마케팅의 핵심은 쇼핑을 넘어서 고객의 사생활과 심리적인 영역에까지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VVIP 매니저들은 고객들과 가장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VVIP 마케팅이 그들만의 자발적인 사교 모임 같은 성격을 갖는 것도 가격할인보다는 심리적 서비스가 매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참석한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자신도 VVIP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VVIP 파티엔 복장을 규정하는 ‘드레스 코드’가 있고, ‘자선’과 ‘예술 지원’ 같은 공통의 명분이 제공된다. 상위 1% 고객을 위한 백화점의 프로모션이란 색깔은 사라지고, 대신 사교 모임이나 봉사단체에 참석한 기분이 들게 된다.

    한 VVIP 멤버십 담당자는 “한 기업 CEO에게 VVIP가 돼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비서가 이를 DM으로 분류해 처리했다. CEO가 뒤늦게 이를 알고 비서를 해고한 일이 있었다. VVIP 멤버십이 상류사회의 신분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시작된 VVIP 마케팅은 이제 전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블랙카드’라는 VVIP 신용카드에서 최고급 스파와 병원, 수입자동차, 해외 부동산 투자와 영어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VVIP의 목록이 있다. 그러나 VVIP가 아니라고 유감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VVIP 마케팅은 99%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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