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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시집온 ‘발 색시’ 유교 철학에 빠지다

한국에 시집온 ‘발 색시’ 유교 철학에 빠지다

한국에 시집온 ‘발 색시’ 유교 철학에 빠지다
“솔직히 한글은 한자만큼 신기하지는 않아요.(웃음) 하지만 한글은 쓰기에 편리한 문자 같아요. 단어를 이해하기 쉽고 빨리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말은 좀 어렵지만, 특히 ‘청첩장’이 어려워요.(웃음) ‘ㅊ’하고 ‘ㅈ’ 같은 자음 발음을 구분하기 힘들어요.”

벽안의 신부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발음하기 힘들어도 ‘청첩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지 4년째에 접어든 바바라 발(28) 씨. 그에겐 올해 들어 겹경사가 생겼다. 2월24일 성균관대 유학과 석사모를 쓰고, 바로 다음 날인 25일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혼 상대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동명(32) 씨.

놀라운 사실은 발 씨가 웬만한 유학자들에게도 어렵다는 ‘맹자’를 전공했다는 것. 그의 석사 학위논문 주제는 ‘근대 개인주의에 대한 맹자사상의 의미’다. 사서오경 정도는 이제 술술 읽을 만큼 한자 실력을 갖췄다. 발 씨를 한국으로 이끈 것도 다름 아닌 한자다.

“어렸을 적부터 한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꼭 읽어보고 싶었어요. 한자는 깊이가 있어요. 독일어로는 길게 말해야 하는 것을 한자는 몇 단어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보내주는 1년 해외연수를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들과 달리 그가 일본으로 향하게 한 이유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다. 독일에서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고작해야 중국 역사책이나 일본 역사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발 씨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다. 대학에서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일본으로 문화와 학문을 전파한 ‘조선통신사’에 대한 내용을 접하면서부터였던 것.

중국 베이징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받던 99년 겨울 일주일 정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인상도 그를 한국으로 향하게 했다. “추웠지만 하늘이 너무 맑고 날씨도 좋았어요. 사람들도 정말 친절했고요.”

발 씨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기회를 잡았다. 국제교육진흥원 장학생으로 경희대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그를 더욱 강하게 잡아끈 곳은 성균관이었다.

“유교철학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모두 공유하는 사상적 기반이에요.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에는 성균관만큼 사서오경의 원전을 직접 연구하는 곳이 없어요. 대부분 2차 자료로 연구하고 있거든요. 원전은 한자를 배우고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한자 실력이 느는 만큼 그의 철학적 깊이도 더해갔다. 이제 서양철학과 유교철학의 차이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을 정도의 단계에 이르렀다.

“서양철학은 이성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요.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쉽게 포기해버리죠.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 고민하지,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것이 서양철학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유교철학은 수양을 중시하죠. 서양철학이 몸을 중시하는 데 비해 유교철학은 마음을 중시하는 것이죠. 처음엔 저도 수양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예전에는 개인이 사회에 불만이 있어도 사회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유교철학을 공부하면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발 씨는 유교가 보수적인 학문으로 평가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명쾌한 반대논리를 제시한다.

“유교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사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인 상황과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해석했을 수는 있지만. 유교의 본질은 마음의 수양을 통해 마음을 바꾸고 나를 바꾸는 겁니다. 민주주의라고 문제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유교가 사회 속에서 보수적인 측면을 보인다고 유교의 본질이 보수적인 것은 아닌 것이죠.”

지난해 10월 한국인 이 씨와 결혼을 결정하고 내심 양가의 반대를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는 발 씨는 신혼생활과 함께 박사과정도 준비 중이다.

그는 “아직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유교를 전파하는 과정과 그 이후 정착된 일본 유교를 한국 유교와 비교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90~90)

  • 엄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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