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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와 이동국은 서로 보완관계”

뒤스부르크 입단 안정환 “잦은 이적 인한 마음고생 훌훌 … 후배들 기량·프로의식 쑥쑥”

“나와 이동국은 서로 보완관계”

“나와 이동국은 서로 보완관계”

2월15일 만난 안정환 선수.

독일의 겨울 날씨는 우울하다. 안정환(30)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뒤스부르크도 그랬다. 2월15일 새벽 베를린에서 고속전철을 4시간여 타고 뒤스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독일로 출발하기 전날인 11일 밤 안정환의 출전을 기다리며 케이블 TV로 뒤스부르크-묀헨글라트바흐 전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끝까지 볼 수 없었다. 1월25일 뒤스부르크에 입단한 안정환은 바로 그 주 토요일인 28일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 후반 교체 출장해 6분 정도 뛰면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어 2월4일 카이저스라우테른 전에서는 후반 45여분을 소화했다. 그러나 8일 도르트문트 전과 11일 경기 연속 결장. 썩 좋은 출발은 아니다.

지난해 새로 지어졌다는 3만여 석 규모의 MSV뒤스부르크 경기장은 잘 정돈된 깔끔한 인상을 풍겼다. 경기장 안에는 유니폼과 기념품 등을 파는 팬존이 있고, 경기장 내부는 팀의 상징인 파란색으로 대부분 꾸며져 있다. 뒤스부르크의 마스코트는 파란 줄무늬 얼룩말.

“동료들과 말 안 통해도 축구로 통해요”

까만 항공 점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난 안정환은 피곤해 보였고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수염을 길러서인지 화장품 광고에서의 깔끔한 미소년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감기 몸살로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팀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경황이 없었거든요. 몸이 피곤한 데다가 신경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단지 몸만 아픈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약간 초췌하고 또 외로워 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전설 파올로 말디니보다 높이 뛰어 헤딩 골든골을 넣던 모습이, 그리고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 키스 세리머니를 펼쳤던 장면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는 골든골로 최고의 스타가 됐지만 그 후의 축구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당시 소속팀이던 이탈리아 페루자는 갑자기 ‘반이탈리아 분자’가 된 그를 내쫓았고, 일본과 프랑스에서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FC메스 입단 이후 6개월 만에 안정환은 쫓겨나듯 구단을 옮겨야 했다.

그가 독일행을 결심한 데에는 올 6월 열리는 2006독일월드컵이 크게 작용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은 제게 큰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독일엔 대학 시절부터 여러 번 와봐서 익숙해요. (차)두리도 좋은 팀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분데스리가에서도 아직 두 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독일 축구의 특징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TV로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요. 굉장히 콤팩트해요. 공수 간의 공간이 좁고 압박이 심하죠. 프랑스에서는 아기자기한 개인기가 중요했는데, 독일은 좀더 타이트하고 거칠어요. 시스템대로 착착 움직이는 조직력이 무척 강조되고요.”

“나와 이동국은 서로 보완관계”

독일 이적을 도운 에이전트 톰 샌더스 씨와 함께.

독일에 온 뒤 그는 2주간 뒤스부르크 시내 호텔에 묵다가 2월10일 구단에서 구해준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뒤셀도르프는 70년대 초 한국 광부와 간호사 파독 때부터 교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해온 곳이다. 부인 이혜원 씨와 딸 리원도 같은 날 프랑스 메스에서 이사를 왔다. 딸 얘기가 나오자 안정환의 눈이 갑자기 빛난다.

“딸애가 이제 22개월인데 말도 늘고 커가는 거 보는 게 너무 재밌어요. 아이랑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아빠가 되고 나서 인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책임감도 느껴지고, 생활도 애한테 많이 맞춰가고요.”

팀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은 어떨까.

“아무래도 불편하죠. 독일어를 하나도 못하니까. 훈련 중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영어로 합니다. 선수들 중에 이탈리아어를 하는 이들이 있어서 이탈리아어도 쓰고요. 감독의 말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니까 통역의 도움을 받죠. 하지만 ‘축구’로 서로 통하니까 훈련하는 데는 큰 어려움 없어요. 경기장 밖에서의 의사소통이 더 큰 문제죠.”

안정환은 FC메스에서 왼쪽 미드필더를 주로 맡았는데 그에게 썩 맞는 포지션은 아니었다.

“제 노력도 부족했지만 사실 팀 전체 시스템이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팀이 약하다 보니 수비 위주로 가게 되고, 제가 갖고 있는 기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죠. 제가 16경기에서 겨우 두 골 넣었는데도 팀 최다골이었을 정도니까요.”

“은퇴하면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

그에 비해 뒤스부르크는 분위기가 훨씬 좋다. 올 시즌 1부 리그로 올라와 사기가 올라 있고, 위르겐 콜러 감독 부임 이후에는 ‘다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훈련해요. 몸 사리지 않고 진지하죠. 다시 강등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무척 강해요.”

콜러 감독은 안정환을 투톱 중 약간 처진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쓰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팀 포메이션은 주로 3-5-2.

독일월드컵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안정환이라고 보장된 것은 없다. 40여일 전지훈련 동안 한국 대표팀의 국내파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렀고, 같은 포지션의 이동국은 한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안정환의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을 터. 포지션 경쟁에 대해 자신감이 있냐고 물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플레이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3의 스트라이커가 있다면 더 도움이 되고요. 2002년에도 (황)선홍 형, (최)용수 형, 저 세 명이 돌아가면서 스트라이커로 뛰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죠. 혼자서는 결코 경기를 다 소화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대표팀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동국이와 저도 서로 보완하는 관계고, (조)재진이도 잘하고 있다는데 좋은 거죠.”

그는 2002 한일월드컵에 관한 얘기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나와 이동국은 서로 보완관계”

‘테리우스, 민족의 영웅’이란 제목으로 실린 안정환의 입단 기사.

“2002년은 2002년이고 2006년은 완전히 새로운 무대죠. 너무 많은 게 달라졌어요. 후배들 기량도 좋아졌고 프로의식도 강하고요. 2002년에는 모든 것이 지금보다 어려웠고, 무조건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축구를 알고 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만큼 자신감 있게 경기하지도 못했고요. 지금은 대표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죠. 어린 선수들도 좀더 자신 있게 창의적으로 뛰고요.”

그래서 독일월드컵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높을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 중 약팀이 어디 있습니까. 일단 16강 진출이 관건이에요. 그러고 나면 좀더 부담 없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은퇴하면 한국의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유럽 축구를 경험하면서 이들의 철저하고 체계적인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며 “진정한 축구 강국이 되려면 유소년 시스템이 발전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안정환은 인터뷰 섭외 때부터 “이제는 에이전트 문제를 확실히 하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리그와 팀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는 이적 시장이 열릴 때마다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그동안 이적이 거론됐던 팀은 셀 수 없을 정도. 에이전트 관계로 잡음도 많았다.

안정환의 책임도 크다. 그는 전담 에이전트를 두고 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나라별로 여러 에이전트들 중 조건이 좋은 계약을 들고 오는 쪽과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에이전트들은 과도한 경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이적이 성사되기 전에 언론을 통해 부풀려지거나 오해로 협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1월 중순 독일 진출 직전 불거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이적설도 마찬가지였다. 안정환은 “제안은 받았지만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 거절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단 테스트에 대해서도 정확한 얘기가 없었고, 굳이 테스트까지 받으면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독일 이적은 네덜란드 출신 톰 샌더스 씨에 의해 이뤄졌다. 샌더스 씨는 안정환의 경기를 본 뒤 ‘안정환이 FC메스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팀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먼저 이적을 권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프로리그에서 활약한 축구선수 출신인 샌더스 씨는 이적 후에도 일일이 그의 경기를 보고 컨디션을 점검한다. 안정환은 “이제야 제대로 된 에이전트를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많이 써줘요. 저는 믿고 운동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죠. 또 구단 관계자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힘이 되고요.”

뒤스부르크와의 계약은 17개월.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거나, 독일월드컵 이후에는 재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는 “이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또 독일월드컵에서 잘 뛰면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 씨는 “안정환은 빠르고 경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며 “바이에른 뮌헨이나 잉글랜드, 스페인 리그 등 더 수준 높은 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자 구단의 홍보담당자 토비아스 귄터 씨가 기자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구단에서는 그를 ‘안’이라고 불렀다.

“한국 언론과는 처음 하는 인터뷰예요. 한국에서 안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아시아의 베컴’이라는데, 독일에서는 실감이 안 나요. 2002월드컵 때처럼 여전히 인기가 좋나요? 그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더 인기가 많겠죠?”

누가 기자인가 싶을 정도로 그는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이날 귄터 씨가 건넨 구단의 공식 잡지에는 안정환의 입단 기사가 두 면에 걸쳐 전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제목은 ‘Terius, der Volksheld(테리우스, 민족의 영웅)’이었다.

귀국해 지켜본 2월18일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안정환은 선발로 출전했다.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 후 첫 선발 출장해 도움을 올리고 득점을 이끈 반칙을 유도하면서 맹활약했다. 안정환은 이날 전반 42분 왼쪽에서 그림 같은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간판 골잡이 클레멘 라브리치가 본능적으로 골로 연결했다. 이어 후반 20분에는 공을 몰고 가다가 아크 정면에서 상대 수비수와 부딪친 뒤 절묘하게 빈 곳으로 넘어지며 반칙을 유도했다. 이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으로 뒤스부르크는 동점골을 만들었다. 23일자 구단 공식 잡지에는 라브리치가 골을 넣은 뒤 안정환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사진이 표지사진으로 실렸다.

불우한 성장기 때문일까. 그의 전성기가 더 불꽃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화려하게 타오르지만 꺼지면 재만 남는. 안정환은 “처음 이름이 알려지고는 언론과 팬의 반응에 많이 동요했는데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적 스타들도 골을 넣지 못할 때가 있듯이 누구나 좋을 때, 나쁠 때가 있는 것이고 지금은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구단에서건 대표팀에서건 그의 앞날이 늘 장밋빛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서른을 넘어선 자신의 나이가 때로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냄비처럼 달아올랐다가 조금만 부진해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팬과 언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민족의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2006년 분데스리가와 월드컵을 통해 그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멋진 축구선수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62~64)

  • 뒤스부르크=정재윤/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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